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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자 산 속에 웅크리고 있던 화적떼들은 혹 땡추와 권훈의 뒤를 따라 청주병영으로 숨을 죽인 채 움직이기 시작했다. 옴 땡추는 만약을 대비해 몸이 빠르고 칼에 능한 자들을 앞장세워 마주치는 자는 가차없이 베어 없애버리도록 지시를 내려놓고 있었다. 아무리 병사들이 없다고 해도 병마절도사가 있는 곳이 그리 녹녹하지는 않을 것이기에 여겼기에 나름대로 주의를 기울이는 작전이었다.

"깨끗합니다. 이대로 병영으로 들이닥친다 해도 막을 자는 없습니다."

먼저 정탐을 나간 자가 재빨리 돌아와 보고하자 혹 땡추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화적 패들에게 일제히 횃불을 올리며 진격하라 일렀다.

"모두 쳐부숴라!"

권훈이 칼을 휘두르며 병영의 문을 박차며 기세 좋게 들어섰다.

"이놈들! 내 칼을 받아라!"

함성을 지르며 병영에 들어선 다음순간 화적떼들의 기세는 흩어져 버렸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대체 사람의 그림자 끝자락이라도 살펴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거 이상하지 않은가? 하다 못해 문을 지키는 병졸이라도 있어야 마땅한 것이거늘......"

뒤이어 들어온 혹 땡추가 머리를 긁적이며 미심쩍어 할 찰나 갑자기 주위에서 함성이 울리며 관군이 화적떼의 주위를 에워쌌다.

"속았구나!"

혹 땡추의 울부짖음과 함께 군관의 우렁찬 고함소리가 울려 퍼졌다.

"네 이놈들! 벌레 같은 것들이 감히 충청병마사를 습격하려 했다니 참으로 기가 막히구나! 당장 무기를 내려놓고 투항하라! 그렇지 않으면 모조리 어육이 되리라!"

먼저 이미 글렀다는 사실을 깨달은 권훈이 칼을 밑으로 떨구었고 화적떼들도 너나 할 것 없이 무기를 집어 던졌다. 병사들이 화적떼들을 포박하느라 정신 없을 때 혹 땡추는 교묘히 밖으로 빠져나갔다.

"저, 저...... 한 놈이 도망간다! 잡아라!"

그 말에 혹 땡추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기 시작했다. 한 무리의 병사들이 혹 땡추의 뒤를 쫓아갔으나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혹 땡추를 따라 잡을 수는 없었다.

"그 놈 참 재빠르구나! 허나 날이 밝으면 잡힐 놈이니 무리할 것 없다!"

산 속으로 도망친 혹 땡추는 숨을 고르며 개울가로 가 얼굴에 물을 축였다.

"허허! 이렇게 끝나는 것인가......"

혹 땡추는 탄식을 늘어놓으며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순간 그의 목덜미에 서늘한 칼날이 닿았고 소스라치게 놀란 혹 땡추는 고개를 돌리다가 가볍게 베여 목에 가늘디가는 한줄기 피를 흘렸다.

"네...... 네놈은!"

혹 땡추의 목덜미에 칼을 겨눈 이는 바로 우포청 종사관 심지일이었다.

"그래 날세. 네 놈들이 날 금강산으로 유인해 죽이려 했지만 붙여놓은 놈들이 돈만 밝히는 잡것들이라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네. 차마 포도청으로 그냥 돌아갈 면목이 없었는데 오늘 이런 공을 세우게 되는군."

혹 땡추는 목덜미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보게 심종사관...... 나야 모반을 꾀했으니 필시 무사하지 못할 것이네. 허나 그전에 자네와의 사이를 모두다 발설해 버린다면 어찌 되겠나? 좋은 게 좋은 것이니 여기서 날 놓아주고 서로 제 갈 길로 가세나."

심지일 역시 웃으며 대답했다.

"이보게. 난 포도청을 이탈했으니 살아도 산 것이 아니네. 애초 출세 따위에는 상관없었지만 종사관 자리를 잃는다는 것은 너무 억울한 일이네."

"허허허...... 이러면 곤란한데......"

혹 땡추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조용히 도리깨가 들어있는 품속을 더듬었다. 순간 심지일의 칼이 번뜩이더니 혹 땡추의 목이 툭 하고 땅 바닥에 떨어졌다.

"어차피 목이 잘렸으니 뭐라고 말 할텐가? 어리석게도 스스로 명을 재촉하는구나."

심지일은 쓴웃음을 지으며 혹 땡추의 목을 챙겨 병영 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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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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