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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작가 우동진
도자작가 우동진 ⓒ 전영준
'도천 천한봉' 선생을 사사

옷깃에 스며드는 바람결이 서늘해진 늦가을 토요일 한낮. 경남 양산시 웅상읍 매곡리 천불사 극락원을 끼고 도는 길 들머리의 야트막한 언덕바지에 있는 매곡요(梅谷窯)를 찾았다.

그곳 주인장 우동진(禹東振)씨를 만나기 위해서다. 우동진씨는 '다완'과 '다기'를 빚어내는 사기장이요, 도자작가다.

다완이 무엇인가? 다완(茶碗)의 완(碗)자가 '주발 완'자라는 데서 알 수 있듯 '다완'은 흔히 '막사발'로 불리는 '차 사발'이다.

예로부터 다완을 '다기(茶器)의 꽃'이라 하여 숭상해 마지않았으나 매사 간단하고 편리한 것만을 좇는 오늘에 이르러서는 잘못 다루면 쉽게 깨지기나 할 따름인 한낱 사기그릇에 무슨 큰 의미를 부여하랴.

그래도 최근 몇 년 사이에 차를 즐기는 이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다완으로 불리는 차 사발들이 새삼 다인(茶人)들의 눈길을 끌게 되었다. 그래도 차 마시는 일이 친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여전히 이 차 사발은 별 볼 일 없는 기물에 지나지 않는다.

이라보차사발
이라보차사발 ⓒ 전영준
58년생. 이미 불혹을 훌쩍 넘기고 지천명을 바라보고 있는 사기장 우동진씨의 도자기 역사는 20년이 조금 넘는다. 수천 년 우리 도자기 역사의 발자취에서 20년이라는 세월은 작은 점 하나에 미칠까 말까 하는 짧은 세월이겠지만, 그래도 한 개인이 한 분야에 혼신의 힘을 기울인 세월의 나이테가 20년이라면 결코 짧다할 수만은 없으려니….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그런 그가 전자공학과는 생판 딴 길인 도자인의 길로 들어선 것은 좀 엉뚱하다 싶다.

"스무 여섯 살 무렵이었던 것 같아요. 아주 우연한 기회에 도자를 알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산업도자에 관심을 가졌죠. 즉 타일이나 전기애자를 생산하는 일을 해 보고 싶었는데 알고 보니 이 분야는 기술과 자본이 너무 큰 비중을 차지하더군요. 곧 생각을 접고 생활도자기 쪽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흙을 만지게 되었습니다."

한동안 먹고 사는 생활 수단으로 생활도자기에 공력을 기울이는 한편 우리 고유의 그릇 공부에 천착하던 그는 차츰 '차 그릇'에 눈을 뜨게 되고 그만 다완에 홀딱 빠지고 만다.

그 무렵(1987년) 그는 경북 문경의 '문경요'에 입문해 도예명장 '도천 천한봉' 선생을 사사한다. 그가 조선의 막사발을 지키는 한국 도예의 거장으로 불리는 천한봉 선생을 만난 것은 그의 도자인생에 일대 전기가 되었으니, 그로부터 그는 비로소 한 사람의 도자인으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현재 그의 매곡요 장작 가마도 스승 천한봉 선생이 터를 잡고 지어준 것이라니 그에게는 날마다 바라보는 가마가 곧 이녁의 스승인 셈이다.

매곡요 장작가마
매곡요 장작가마 ⓒ 전영준
공부 욕심이 남다른 사기장

그런 그는 도자 입문 초기부터 사기장으로서의 기능과 기량을 닦는 일 못잖게 도자와 관련된 공부와 연구에 남다른 열정을 기울이는 학구파였다.

천한봉 선생을 사사하기 이전에 이미 <경상남도 지성토를 이용한 작품연구>(1984), <석유가마 개발 및 제작>(1985), <매화껍질 유약변화에 관한 작품연구>(1986)로 주목을 끈 그는 문경요 입문 이후에도 <자연유약에 관한 작품연구>(1988)를 출간하며 최근까지 줄곧 연구와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그의 공부 욕심은 자신의 나이 마흔에 경성대 대학원 '도예디자인과'에 입학한 것과 현재 부산대 대학원에서 '지질학'과 '광물학'을 연구하고 있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그런데 그는 지질학과 광물학에서 흙을 공부하면서 그 이전 17년의 공부가 다 헛것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자신의 17년을 송두리째 버렸다.

"그것이 30년이나 40년이라 한들 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2년 반을 죽어라 공부했습니다. 지금 탄생되는 그릇들은 지난 2년 반 공부의 소산이지요."

우리의 5천년 도자기역사를 되찾아야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그로 하여금 17년의 공력을 버리게 한 것일까?

"흙을 알고 보니 지금 우리의 도자가 일제의 잔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본시 일본에 도자기 기술과 문화를 심어준 것은 우리지만, 지금은 오히려 일본에서 역수입된 그릇된 도자문화와 기술이 판을 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방법론 자체가 일본화 되어 있어요.

그래서 저는 감히 도자기에 있어서는 우리가 아직도 해방을 맞이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일본의 도자기 역사라는 것은 고작 500년밖에 안 되지만, 우리의 도자기 역사는 그 열 배가 넘는 5천년입니다. 빨리 우리의 5천년 도자기역사를 되찾아야 합니다."


우선 고대 우리의 선조들이 썼던 흙과 오늘날의 작가들이 쓰고 있는 흙은 천양지차라는 것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그에게 이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이들이 공격의 화살을 쏘아대기도 하지만, 그는 백 명 중 아흔 아홉이 공격할지라도 자신의 외로운 외침에 귀기울여줄 단 한 사람을 위해 자신의 주장을 결코 굽히지 않을 작정이란다.

<다음 기사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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