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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묵차사발
천묵차사발 ⓒ 전영준
부드러운 거품을 낸 가루차의 빛깔은 신록 그대로다. 그래서 가루차는 자연을 그대로 마시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고 했던가.

그는 찻솔로 차를 정성껏 저어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내게 건네주었다. 마치 무슨 경건한 의식을 치르듯이…. 가루가 얼마나 부드럽게 갈리었기에 목에 넘어가는 데 아무 걸림이 없다. 차의 멋은 우리 정신생활의 영역을 끝없이 넓혀 준다고 하는 다인들의 차 예찬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듯 하다.

다시금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 그는 흙을 공부하면서 흙이 인간사와 똑같다는 것을 배웠다고 한다.

"흙은 성질이 다른 여러 재료들의 집합체입니다. 물을 먹으면 팽창하는 놈이 있는가 하면, 물을 그냥 그대로 흡수해버리는 놈도 있어요. 성격이 조급한 흙도 있고, 부드럽기 이를 데 없는 흙도 있지요. 그것들의 각기 다른 성질이 조화를 이룸으로써 마침내 하나의 아름다운 도자기가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사 역시 그렇지 않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사람들을 쉽게 좋은 사람, 나쁜 사람으로 구분 짓지만, 따지고 보면 이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성격과 생각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어울려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평화로운 세상이 되는 것이지요."

오기다기세트
오기다기세트 ⓒ 전영준
흙의 본질은 버려두고 디자인 요소에만 매달리지 말자

오늘날 흙의 본질을 보는 작가들이 없음을 못내 안타까워하는 그는 "작가들이 제발 흙의 본질은 버려두고 디자인 요소에만 매달리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기에 도자작가인 그에게 있어 흙은 도자기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만드는 것은 한갓 기능일 뿐 흙이 갖는 비중에 비하면 별것 아니란 말이다.

그래서 그는 한사코 공장 흙을 마다한다. 최근에는 자신의 가마가 있는 웅상지역의 지역토 개발에도 공력을 들이고 있지만, 대개는 아주 먼 거리까지 달려가 흙을 실어오고 그것을 정성스레 수비(水飛ㆍ그릇 만들 흙을 물에 풀어 휘저어서 잡물을 없애는 일)해 그릇을 빚는다.

그 과정에 드는 비용은 공장 흙을 쓰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그에 드는 시간과 발품 또한 예사가 아니다. 무릇 모든 예술이 그렇듯 도자창작에서도 1등은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스스로 '내가 최고다'는 자만심에 젖어있는 도자작가들이 있지만, 그건 '내가 최고 바보다'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밖에 안 되지요. 최고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의 옛 사기장들은 아무도 자기가 최고라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그릇을 빚는 일에만 매달려 왔어요. 그것이 바로 오늘날 빛나는 문화유산으로 우리에게 남겨져 있지 않습니까."

'5천년 도자기 역사 속에 내가 어떤 점을 찍느냐?'

이것이 요 사이 도자작가 우동진을 붙들고 있는 화두다.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아니하든 애오라지 흙의 본질을 깨달아 알고 그것으로 제대로 된 그릇을 빚어내는 일에 이녁의 열정과 신명을 바침으로써 앞으로 면면히 이어져 나갈 우리의 도자역사에 작은 점 하나를 찍었으면 하는 소박하지만 절실한 꿈으로 그의 가슴은 마냥 달뜬다.

유적진사다기세트
유적진사다기세트 ⓒ 전영준
피타고라스. 쉼 없이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 속에 느닷없이 피타고라스가 등장한다. 일찍이 '수는 만물을 지배한다'고 주장했던 피타고라스는 '음정이 수의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피타고라스의 이론은 17세기 이후 유럽에서 5선기보법이 자리를 잡게 하는 단초가 되고 그를 바탕으로 비로소 서양음악의 체계가 잡혀 그 뒤로 모차르트, 쇼팽과 같은 서양음악사의 걸출한 인물들이 등장한 것이다.

우리 시대의 도자작가 우동진이 여기서 별안간 피타고라스며 모차르트와 쇼팽을 떠올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지금은 우리 도자기창작에 하나의 올바른 원칙을 세워야 할 때입니다. 누군가는 피타고라스가 되어 도자기창작의 이론을 정립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도자기창작의 바탕이 되는 오선을 그어야 합니다. 그래야 마침내 도자예술의 모차르트도 나오고 쇼팽도 탄생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그는 은근히 이제 겨우 초등학교 3학년인 이녁의 아들에게 기대를 건다.

"아이가 원한다면 우리 도자예술의 오선을 긋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어요. 그런 다음 한 백년이나 이백년 후쯤에 모차르트와 쇼팽이 나올 것을 기대합니다."

그렇다면 그는 피타고라스라는 말일까? 어쨌거나 그는 결코 조급해 하지 않는다. 우리의 도자역사가 아득히 먼 세월에서 비롯된 것처럼 앞으로 이어져 나갈 역사도 또 멀고 멀 터이니, 걸출한 도자작가 하나 나오는데 1, 2백년을 기다리는 것이 무슨 대수랴.

앞으로 기회가 닿으면 대학원에 다시 등록해 고고학을 공부해 보고 싶다는 한국도자계의 피타고라스 우동진. 차 사발 하나에 이녁의 온 생애를 걸고 있는 사람에게서 풍기는 향내가 더없이 맑고 그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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