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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초반 조선 최고의 대중가요 가수로 인기를 누렸던 백년설(白年雪)(1915-1980)의 목소리가 CD에 담겨 새롭게 되살아났다.

가요제 개최, 전기(傳記) 간행 등 백년설 관련 사업을 진행해온 백년설추모사업추진위원회(회장 이상희)에서는 최근 CD 네 장과 가사집으로 구성된 <백년설 전집>을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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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용 비매품으로 만들어진 <백년설 전집>에는 백년설의 작품 예순네 곡과 백년설의 부인이자, 1950년대에 세미클래식 분위기의 목소리로 인기를 얻었던 가수 심연옥(沈蓮玉)의 작품 두 곡이 수록되어 있다.

수록곡 전체를 최초 취입판인 유성기 음반 음원을 사용해 녹음했다. 현재 백년설의 작품으로 확인되는 노래 일흔 다섯 곡 가운데 예순네 곡이 전집에 수록된 것이므로, 정리된 비율이 거의 90%에 육박하는 셈이다.

<백년설 전집> 표지
<백년설 전집> 표지 ⓒ 이준희
모두 유성기 음반 음원을 사용한 것이다 보니 음질이 썩 좋지 않은 경우도 많이 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자료적 가치만큼은 더욱 높다.

백년설의 노래는 기왕에 발매된 복각음반에도 상당수 실려 있기는 하나, <백년설 전집>에 수록된 작품의 절반 정도인 30곡 가량은 아직 공식적인 복각이 이루어지지 않아 이번에 처음으로 공개되는 것이다.

가곡 <선구자>의 작사자 윤해영의 작품으로 친일 여부로 논란이 있어 온 <아리랑 만주>, 3절 가사가 일본어로 되어 있어 일제 말기의 암울한 상황을 짐작해 볼 수 있는 <조선해협>, 군국가요가 넘쳐나는 상황 속에서 발표되었지만 반전(反戰)적 분위기마저 느낄 수 있는 <내 고향> 등, 귀중한 작품 하나하나의 가치는 금전적으로 따져 볼 수 없을 정도이다.

특정 가수의 전집이 비(非)상업적인 의도로 제작되기는 지난 2001년에 남인수(南仁樹) 팬클럽에서 제작한 <남인수 전집> 이후 이번 <백년설 전집>이 두 번째가 된다.

전집이라는 이름에 충분히 어울릴 만큼 많은 작품을 수록한 <백년설 전집>이기는 하지만,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들의 혈서> <위문편지> <이 몸이 죽고 죽어> <혈서지원> 등 일제 말기에 백년설이 부른 대표적인 군국가요 네 곡이 확보된 음원이 있음에도 빠져 버린 것은 아무래도 옥에 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일제 말기에 가장 인기를 누린 가수이기는 했지만, 바로 그러했기 때문에 또 많은 군국가요를 부를 수밖에 없었던 백년설. 영욕이 극명하게 교차한 그의 노래 인생은 비극적 아이러니가 가득한 우리 근현대사의 일면을 가감없이 보여 준다.

뛰어난 가수였지만 불운했던 그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고 친일 논란에 관한 시비를 가리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귀중한 자료들을 모아 전집까지 나왔으니 백년설이라는 가수와 그 노래를 차분하게 감상해 보는 작업도 이제 필요하지 싶다. 제대로 알고 따지는 것과 모르고 따지는 것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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