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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후 마을주민들이 법원의 강제집행에 항의하며 철거중단을 요구하자 철거용역반원들이 길을 막아서고 있다
29일 오후 마을주민들이 법원의 강제집행에 항의하며 철거중단을 요구하자 철거용역반원들이 길을 막아서고 있다 ⓒ 용산5가동 철대위
서울서부지방법원이 용산2지역 도심재개발 조합측에서 청구한 용산 5가동 19번지 일대 명도집행을 위해 이날 오후 1시45분께 현재 남아 있는 35가구 가운데 2가구를 허문 것.

만나자고 해놓고 강제철거... 구청과 재개발 조합이 짝짜꿍?

집안에 앉아 졸지에 한겨울 칼바람을 맞게 된 채화진씨는 "오후 2시에 주민들과 구청, 조합측이 만나 대책회의를 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어 외출 준비하고 있는데 갑자기 철거반원들이 들이닥쳤다"면서 "길바닥에서 잘 수도 없고 당장 갈 데도 없는데 어떻게 하느냐"며 울먹였다.

채씨는 "이틀 전에 동사무소에서 연탄 200장을 갖다 줘 안심하고 있었는데, 예고도 없이 강제집행을 당하는 바람에 당장 입을 옷가지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며 "아무리 법원 판결이라 해도 만나자고 약속해놓고 그 시간에 맞춰 철거를 하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항변했다.

실제로 이날 오후 2시에는 주민들과 용산구청 도시관리국, 재개발 조합측이 용산구민회관에서 만나 주민들의 이주대책에 대해 회의를 하기로 되어 있었다. 주민들이 대책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집을 비운 사이 조합측이 명도집행을 했고, 결국 이날 대책회의는 열리지 못했다.

서울 용산구 용산5가동 19번지 철거촌...지난해까지만 해도 600여 가구가 모여 살았으나 시도 때도 없이 휘둘러대는 대형 망치소리에 놀라 뿔뿔이 흩어지고 지금은 35가구만 남아 있다
서울 용산구 용산5가동 19번지 철거촌...지난해까지만 해도 600여 가구가 모여 살았으나 시도 때도 없이 휘둘러대는 대형 망치소리에 놀라 뿔뿔이 흩어지고 지금은 35가구만 남아 있다 ⓒ 석희열
주민들은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 강제집행이 들어와 집을 부수고 살림살이를 다 끌어내면 죽으라는 말이냐"면서 "대화하자고 해놓고 예고도 없이 집을 부수는 것은 또 어느 나라 법도냐"며 구청장의 해명을 요구했다.

빈민해방철거민연합 관계자는 "적어도 대화하고 있는 중에는 비양심적인 일을 해서는 안되는 것"이라며 "약점 잡힌 것이 없다면 용산구청은 더 이상 조합측에 끌려다니지 말고 주민들 편에 서서 근본적인 주거대책을 세우라"고 촉구했다.

용산구청 "법원의 명도집행은 우리도 어쩔 수 없다"

이에 대해 용산구청은 사적인 재산분쟁에 행정관청이 직접 개입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대화의 장을 마련해줄테니 당사자들끼리 해결하라는 것이다.

용산구청 김경옥 도시관리국장은 "주민들에게 재난이 발생했을 때는 긴급구호를 해야겠지만 개인 간 재산분쟁에 개입하여 어느 한쪽을 보호할 수는 없다"면서 "법원의 판결을 받아 명도집행을 하면 우리로서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김 국장은 "이 엄동설한에 명도하지 않아도 사업에 지장이 없을텐데 재개발 조합측이 왜 하필 오늘 집행을 하려고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내년 1월 중에 주민들과 조합측이 만나 대화할 수 있도록 다시 주선하겠다"고 덧붙였다.

재개발 조합측 "앞으로 겨울철 명도집행은 없을 것"

마을 주민 등 30여명은 이날 오후 4시30분께 용산구청으로 몰려가 구청장의 사과를 요구하며 1시간30분 동안 항의시위를 벌였다
마을 주민 등 30여명은 이날 오후 4시30분께 용산구청으로 몰려가 구청장의 사과를 요구하며 1시간30분 동안 항의시위를 벌였다 ⓒ 석희열
재개발 조합 이아무개 이사는 "한 세대당 300만원씩 웃돈을 주겠다고 해도 주민들은 계속 무리한 요구를 하며 버티고 있다"면서 "주민들이 원하면 언제든지 대화에 응할 준비는 되어 있다"고 말했다.

이 이사는 "법원으로부터 20일 전쯤에 명도집행 날짜를 받았다"며 "주민들과의 대책회의 날짜와 명도집행 날짜가 겹치게 것은 공교롭게 그렇게 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그는 "정초부터 명도집행을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용산구청 직원들과 충돌로 머리와 어깨 등을 다쳐 용산의 한 외과병원에 40일째 입원하고 있던 김옥순씨는 이날 퇴원하려다 집이 헐리는 바람에 다시 병원으로 돌아갔다. 두 손주와 일부 주민들도 이날 입원실 침대에서 밤을 지샜다.

꽁꽁 얼어붙은 경제 속에서도 서울광장 사랑의 체감온도탑의 수은주가 30일 현재 83도를 넘어섰다. 훈훈한 이웃의 온정이 세밑 한파를 녹이고 있는 이 시간에도 매서운 칼바람에 한뎃잠을 자야 하는 쪽방 철거민들이 있다. 낯설지만 우리의 세밑 두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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