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창후리 배터에서 배를 타고 교동 월선포 배터까지 건너는 데 보통 15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바닷물이 빠지면 사정이 달라진다. 수심이 깊은 골을 따라 배가 우회(右回)를 한다. 바다 한복판은 갯벌이 드러나 기다란 섬을 이룬다. 배가 황청리를 지나 석모도를 마주하고 180도 방향전환을 한다. 창후리에서 떠난 배가 망월리와 황청리를 지날 때 해안가에 수직으로 쌓아놓은 여러 돌무더기가 보인다. 큰 돌을 90도 각도, 15~20미터 길이로 쌓은 것으로,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 있다. 처음에 나는 그것을 보고 옛날 어부들이 배를 대는 나루쯤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일명 '수제공(水制工)'이라는 것이었다. 만조(滿潮) 때는 바닷물이 해안 저편 육지의 저지대를 덮치기 일쑤여서, 둑을 쌓고 일정한 간격으로 중간중간 수제공을 쌓았다고 한다. 수제공이 거친 바닷물의 흐름을 분산시켜, 방파제 역할을 하는 둑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제방에서부터 토사가 유실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처음 그 이야기를 듣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정확한 문헌이 없어 수제공이 쌓아 세워진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오래 된 것은 수백 년이 지났을 것으로 추측된다. 옛날 수제공을 처음 쌓았을 때 일일이 사람이 돌을 날랐을 것이다. 그 당시 변변한 장비가 있었겠는가. 그들의 수고가 수백 년 동안 강화 저지대 사람들의 생명과 논밭을 지켜준 셈이다.
바닷물이 빠져 창후리에서 배가 우회할 때면, 나는 수제공을 보기 위해 뱃머리에 올라서곤 했다. 뿌연 안개 속에 제 모습을 드러낸 수제공을 물끄러미 보고 있으면 처연한 마음이 든다. 세월은 많이 지났지만 여전히 수제공은 건재하며 자기 사명을 다하고 있다. 온갖 풍파를 겪고도 달다 쓰다 말 한마디가 없다. 나는 수제공을 바라볼 적마다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이 가뭇한 세상, 수제공 같은 사람이 그립다.
내가 쓴 글들로 엮은 두번째 산문집이 책으로 출간됐다. <행복한 나무는 천천히 자란다>. 이 책의 원고를 출판사에 넘겼을 때만 해도 나는 강화에 위치한, 서해안 최북단의 섬 교동도에 살고 있었다. 나는 교동도에 살면서 섬이 가져다주는 영감에 깊이 빠져들곤 했다. 섬은 다양한 그림을 담고 있다. 하나님이 자연을 통해 허락한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갖고 사물을 대하면 모든 사물은 나름대로 의미를 가져다준다.
| | | 박철 목사에 대하여 | | | | 박철 목사 그를 일러 열이 많은 사람이라고 한다.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 탓이다. 반면 그의 삶은 과격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아침을 사랑한다. 작고 소중한 것들이 눈뜨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천천히 걸으며 산에 자신을 맡기는 연습을 한다. 산책길에 만난 풀잎의 이슬, 교회 종탑을 찾은 딱따구리는 모두 그의 스승이다. (한겨레신문 이유진 기자)
그가 20여 년간 농촌과 산골 교회를 섬기며 농민에게서 배운 것은 "삶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화려하고 거창한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라고 한다. 이 마음은 선택받은 자만 누리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내면에 가지고 있는 보배지만 가슴속에 꽁꽁 파묻어 두고 꺼내 쓰지 않아 잠시 녹이 슬어있는 것일 뿐이다.(작가 공지영)
박철 목사의 글을 담백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그냥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소박하게 담아낼 뿐이다. 직접적으로 신앙을 얘기하지 않지만 그의 글을 통해 다시 교회로 돌아오는 사람들도 있다. 박 목사는 자신의 글이 이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던 건 단순히 자신이 80년대 정서를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은 아니라 다른 그 무엇이 있다고 생각한다.(CBS 이재상 PD)
그는 말한다. "시간과 공간과 인간이 마주하는 삼간(三間)의 접점에 왜 내가 존재하는가를 끊임없이 묻지 않고서는 나는 확인되지 않는다." 라고. '느릿느릿'은 바로 그 삼간의 접점에 지천명의 나이에 이른 그가 세운 표지판인 것이다. 그 표지판은 그 자신의 말로는 아직 ‘발광체’가 아니라 '반사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겸손이다. 각박한 이 시대의 어둠 속에서 그 표지판은 환하게 빛을 발하고 있다. (수필가. 정철용) | | | | |
이 책에 담긴 이야기는 최근 1~2년 사이에 교동도에서 쓴 이야기이다. 내 주변의 소소한 일상을 일기를 쓰는 심정으로 적어 인터넷 신문인 <오마이뉴스>나 <뉴스앤조이>에 연재해 왔다. 내가 자연을 통해 느낀 단상들, 교동에 8년째 살면서 겪은 섬사람들의 고단하지만 평화로운 일상, 너무나 사랑하는 나의 두 아들과 딸, 아내의 이야기, 20년 가까이 시골목회를 하면서 겪은 일들과 삶의 스승 같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요즘도 내가 운영하는 홈페이지 '느릿느릿 함께하는 이야기'(이하 '느릿느릿')나 인터넷신문에 글을 올리면서 한 꼭지의 글을 쓰기 위해 더 많은 묵상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여행을 한다.
그동안 '느릿느릿' 홈페이지나 인터넷 신문에 글을 올리면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사람을 대하든지 자연을 대하든지 좀더 깊이 있는 사유(思惟)와 관찰을 하게 된 점이다. 내면의 깊은 성찰을 동반하지 않고는 어떤 형태의 글이든 붓장난으로 끝날 위험이 있다. 나는 그 점을 늘 조심하고 있다. 가급적 담백하고 진솔한 이야기를 담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것이 새롭고 어느 순간엔 그런 느낌이 강렬하게 다가온다. 또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나 자연에서 전과는 확연히 다른 좀더 심화되고 밀착된 느낌을 받는다. 사람과 자연과의 일체감이 아닌가. 그것이 가장 소중한 열매이다.
나는 그동안 교회를 세 번 옮겼는데, 세 교회 다 농사 외에는 부업거리가 전혀 없는 전형적인 농촌 지역이었다. 목사가 농민의 마음을 이해해 보려고 농사를 지어보기도 했다. 텃밭에 마늘, 상추, 강낭콩, 파, 감자, 가지, 토마토, 땅콩 등을 심었는데 제초제를 안 주어 풀이 엄청났다. 장마철 비 온다고 잠시만 내버려 두어도 완전 풀밭이었다. 김매는 일은 거의 아내 몫이었다. 내가 농사꾼이라면 완전 낙제 농사꾼이다. 그래도 나는 농촌이 좋다. 흙이 좋고, 들이 좋고, 산도 좋고, 나무도 좋고, 풍경이 좋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사람이 제일 좋다.
지난 10월 중순 나는 내 인생의 두 번째 고향 같은 교동을 떠나 부산으로 왔다. 무슨 특별한 동기가 있어서 오게 된 것은 아니다. 지금 내가 교동에 있는가 부산에 있는가 하는 것은 내겐 아무 의미가 없다.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한 삶의 귀퉁이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바로 지금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노자(老子)의 <도덕경>에 나오는 '상선약수(上善若水)', 즉 "가장 훌륭한 것은 물처럼 되는 것이다"라는 경구가 내가 걸어온 길이요 앞으로의 길이 될 것이다.
| | | (서평)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 | | | | 나에겐 달팽이를 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하나 있다. 그 사람은 느릿느릿, 천천히 삶을 살아가는 것 같은데 어느새 저만치 앞서가고 있는 사람이다. 숨차지 않게 어떤 삶의 지름길을 걸어가는 법을 터득한 사람, 그 사람은 박철 목사다.
본문의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는 글 서두 부분이다.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 푸르디푸른 하늘에 한 점 구름 같은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운치 있다 하겠지만 외로운 하늘의 마음을 달래주는 한 점 구름 같은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 야트막한 언덕 위에 한 그루 늙은 소나무 같은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 쓰러질 듯 서 있는 소나무가 무엇이 아름다울까마는 길 떠나는 나그네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는 한 그루 늙은 소나무 같은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
박철 목사가 만나고 싶은 사람은 동시에 자신이 그 누군가에게 되고 싶은 사람이기도 하다. 외로운 하늘의 마음을 달래주는 한 점 구름 같은 사람, 나그네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는 늙은 소나무 같은 사람을 추구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그이다.
박철 목사를 제주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첫 대면인데도 아주 오래된 친구처럼, 형님 같은 느낌이어서 사람을 만나 속내까지 털어놓으려면 오래 걸리던 나였는데 그만 한 시간도 안 되어 내 속내에 있는 이야기들을 주절주절 이야기하는 나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통한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그의 글은 미사여구로 꾸미지 않아서 화사하지 않으며 다소 직설적이다. 그런데 그 직설법 속에 다시 곰씹어보지 않으면 안 될 복선들이 깔려있다. 어쩌면 내가 추구하는 글쓰기와 비슷해서 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래서 천천히 읽어도 무슨 말인지 확 들어오지 않는 그런 글들보다 박철 목사의 글을 좋아한다.
그의 글은 상상 속에서 쓰여 진 글이 아니라 발로 쓴 글이며, 이마에 소금땀을 흘려가며 쓴 글이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슬며시 웃음이 나오는 것은 "나도 그런 적이 있었는데!"하는 기억들이 네 속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오기 때문이다.
"행복한 나무는 천천히 자란다"는 제목이 좋다. 매일매일 바라보아도 그 자리인 것만 같은데 어느 날 훌쩍 자란 나무들을 보면서 깜짝 놀랄 때가 있다. 나는 그렇게 바쁘게 살아왔건만 뒷걸음치며 살아온 것 같은데 나무는 아주 천천히 자라면서도 나보다 훌쩍 자라버렸으니 그 천천히, 느릿느릿의 힘을 보게 된다.
행복조각을 마음 한 구석에 담고 싶은 이들에게 소개해 주고 싶은 사람, 그 사람이 '절대로 혼자서는 살 수 없으니 함께 살자'고 한다.
한 번도 가지 않은 길을 간다는 것은
내 마음에 속내를 다 들어 내놓고
신에게 가장 솔직해지는 길이다.
아무런 준비 없이 무작정 길을 떠난다는 것은
사람이 절대로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배우는 길이다.
―박철. 길- / 김민수 목사(제주종달교회. 수필가)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