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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저녁 8시경 학교에서 대학원 숙제를 하다가 잠깐 밖으로 쉬러 나왔는데 함박눈이 이미 쌓이고 있었습니다. 올 겨울 대전에서 보는 첫눈이었죠. 차를 몰고 집에까지 가는 눈길이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옛날 시골에서의 어린 시절 추억을 생각나게 해주는 함박눈이었습니다.

한 열흘 전인가요. 4살 된 큰 딸아이가 “아빠 겨울인데 왜 눈이가 안이와?” 하고 묻기에 그냥 단순히 “응 날씨가 추워야 와” 하고 대답했죠. 이어서 딸은 기다렸다는 듯이 “오늘은 추운데 왜 눈이가 안이와?”하고 꿔준 돈 달라는 듯이 따지며 물었습니다.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습니다. 요즘 들어 작은 몸짓 하나까지도 흉내 내는 큰 딸에게 대충 말하자니 아이의 인지구조에 나쁜 영향을 줄 것 같고, 그렇다고 논리적으로 설명하자니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얼른 화재를 돌려 “은서야, 우리 눈 오면 눈사람 만들까? 눈사람 눈도 만들고, 코도 만들고, 입도 만들고, 재밌겠다. 그지!” 하고 일부러 과장된 몸짓까지 하며 말을 하니, 큰딸도 “우와 신난다. 눈이 빨리 오면 좋겠다”라며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집에 빨리 가고 싶어졌습니다. 얼른 가방을 챙기고 나와 눈 쌓인 학교 길을 조심스럽게 차를 몰며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첫눈과 함께 또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진풍경들은 저를 그냥 집으로만 가게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 실내등과 라이트를 환하게 켜고 손님을 기다리는 버스가 포근하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 최장문
학교 정문을 나서니 시내버스가 줄지어 있었습니다. 실내등과 라이트를 환하게 켜고 손님들을 기다리는 버스가 오늘따라 포근하고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한 장 찰칵! 사진을 찍고 부랴부랴 내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함박눈을 맞으며 학교정문을 걸어 나오는 두 남학생이 너무 운치 있게 보였습니다. 다시 내려 이것도 찰칵!

▲ 한 밤중에 함박눈을 맞으며 두 남학생은 무슨 말을 하며 걸어가고 있을까?
ⓒ 최장문
이제는 곧장 집으로 가야지 하는 마음을 먹고 다시 차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하얀 눈꽃송이 속에서 빨간 장작불을 태우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장작불 만큼이나 따뜻한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눈이 있어 더욱 돋보이는 장작불입니다. 그 장작불 만큼이나 따뜻한 한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최장문
관저동을 지나 롯데마트 작은 언덕을 올라가자니 몇몇 차들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공회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겨우 빠져나와 대정동에 들어서니 밤 9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평소보다 3배는 더 걸린 셈이죠. 그러나 그리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벌써 큰 아이는 눈사람을 만들러 밖으로 나가자고 아우성입니다. 우리는 환호성을 하며 나갔죠. 눈 온 날 바둑이가 마당과 들판을 뛰어다니듯이 우리 집 큰 딸도 여기저기 뛰어다니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바로 눈사람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컵으로 눈을 모으고 다시 이것을 봉지에 담았습니다. 집에 있는 2살 된 동생과 함께 눈사람을 만들기 위해 봉지에 눈을 담는다는 큰 딸의 말이 눈보다도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 큰딸 은서(4)가 눈사람을 만들기 위해 컵에 눈을 담아 봉지에 넣고 있다.
ⓒ 최장문
첫눈은 우리 가족만 기다렸던 것이 아니었나 봅니다. 늦은 밤인데도 불구하고 아파트 여기저기에 많은 아이들과 가족들이 나와 눈 속에 묻혀 삶의 발자국들을 남기고 있었습니다.

▲ 우진석(33)씨 가족. 남후의 첫 생일날 첫눈이 와서 기쁘다며 찰칵 한 장.
ⓒ 최장문

▲ 윤석재(37)씨 가족. 아빠는 큰 딸과 작은 딸의 소망을 담은 눈사람을 만들고, 엄마는 감독하고. 벼리(5)는 아빠가 매일매일 일찍 오셔서 오늘처럼 놀아주시면 좋겠다며 즐거워한다. 왕관 모양을 한 눈사람의 모자에는 “윤벼리”라고 씌어져있다.
ⓒ 최장문
아파트 조그만 언덕에는 벌써 아이들이 만들어놓은 눈썰매장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달리고,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뒹굴고, 웃고의 연속이었다. 깔깔대고 웃는 그 웃음 속에서 눈에 대한 아이들의 동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신나게 뒹구는 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희망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신나게 달리고,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고, 그리고 웃고. 이런 아이들의 모습속에서 동심과 희망을 느낀다.
ⓒ 최장문
아파트 미끄럼 언덕엔 이제 아무도 없습니다. 날도 바뀌었습니다. 해가 뜨면 눈도 녹아 없어지겠죠. 하지만 첫눈과 함께 한 많은 사람들의 소망과 추억이 그들의 마음 한 구석에 오래오래 간직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피곤에 지쳐있을 때 향긋한 향수와 함께 힘이 되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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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세월속에서 문화의 무늬가 되고, 내 주변 어딘가에 저만치 있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보면 예쁘고 아름답다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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