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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평화·통일문제 전문기자를 겸직하고 있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4일부터 워싱턴을 방문해 한·미 동맹, 북핵 문제 등 한반도 문제에 대해 미국 정부의 고위 관리들과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취재를 벌이고 있다. 대표적인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박건영 교수 인터뷰와 이번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 인터뷰에 이어 국방부 고위 관리들과의 면담 내용이 이어질 예정이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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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작계 5029' 협상, 중단한다고 될 일 아니다


힐 차관보
힐 차관보 ⓒ 정욱식
핵문제를 둘러싼 북미간의 대결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6자회담의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동아태 담당 차관보가 "미국은 북한에 대해 좋은 의도"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북한이 핵문제 해법 원칙으로 제안해온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부시 행정부의 고위 관리가 북한에 대해 '좋은 의도'(good intention)를 갖고 있다고 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6자회담 재개를 위해서는 조건과 명분이 필요하다고 요구해온 북한의 반응이 주목되는 대목이다.

미국 시간으로 5월 6일 오후 국무부 차관보 집무실에서 약 40분 동안 이뤄진 단독 인터뷰에서, 힐 차관보는 시종일관 협상에 대한 자신감과 필요성을 역설했다. 아울러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지 않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도 강한 유감을 표했다. 북한이 과연 핵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인터뷰 내용 영어 전문은 평화네트워크 홈페이지 www.peacekorea.org 참조.)

"좋은 의도를 갖고 있다"

힐 차관보는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북한을 '주권국가'라고 칭한 것은 미국이 북한과 평화적으로 공존할 의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우리는 북한이 주권국가라는 점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지 않다"며, "북한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고 답했다.

"그 말은 북한과의 평화공존 의사를 갖고 있다는 뜻이냐"는 거듭된 질문에 대해, "우리는 의지를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지 않고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북한의 회담 복귀를 거듭 촉구했다.

특히 힐 차관보는 북한이 라이스 장관의 발언 가운데 '폭정의 전초기지'(outpost of tyranny)라는 세 단어에 집착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라이스 장관이 분명히 한 것은 (북한에 대한) 좋은 의도(good intention)"라고 말했다.

다만 미국이 북한에 대해 "적대적 의도가 없다"(no hostile intent)라고 표현하는 것은 북한이 원하는 것으로써, 미국은 자신이 판단에 따라 적당한 표현을 사용한다며, "좋은 의도"를 거듭 강조했다.

'평화협정' 체결 논의도 가능

힐 차관보는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법적 구속력이 있는 조약으로 체결할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6자회담의 맥락에서 다자간 합의(multilateral agreement)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것은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것이냐"는 거듭된 질문에 대해, "상원의 인준은 매우 길고도 복잡한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중요한 것은 부시 행정부의 의지가 아니겠느냐"는 필자의 지적에 대해, "우리는 모든 종류의 안전보장을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그것은 다자간 안전보장의 맥락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미국의 의사라고 밝혔다.

아울러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논의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또한 지난 3차 회담에서 미국이 제안한 안전보장 방안에 대해 북한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6자회담에서 북한이 원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발언들은 6자회담이 재개되면 대북한 안전보장 방안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가능하다는 점을 강력히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전까지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핵 폐기 준비에 돌입하면 잠정적이고 일시적인 다자간 안전보장을 제공할 수 있다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기존 제안도 수정 가능"

더욱 주목할 점은 힐 차관보가 기존 제안을 수정할 의사를 '확실히' 밝혔다는 점이다. 그는 회담이 열리면 "미국은 3차 회담에서 내놓은 제안 내용을 수정할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물론이다"고 답했다.

힐 차관보가 이러한 의사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4월 6일 서울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평화네트워크 초청 토론회에서도 이러한 의사를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당시 토론 내용 전문은 홈페이지 www.peacekorea.org 'Top issue' 참조.)

미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를 비롯해 고위 관리들이 기존 제안을 수정할 의사가 밝힌 것은 이례적인 일로써 분명 주목할 가치가 있다. 작년 6월 3차 6자회담 이후 콜린 파월과 콘돌리자 라이스 등 고위 관리들은 "우리는 지난 6자회담에서 매우 좋은 제안을 (북한에) 했다"며, "미국은 그 제안을 고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힐 차관보는 잇따라서 기존 제안을 수정할 수 있다(make some revision)고 밝혔다. 미국의 정책을 '불변'으로 여기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음미해볼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참고로 북한은 미국이 3차 회담에서 내놓은 제안은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일방적 주장이라고 반발하면서, 작년 7월 24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일고의 가치도 없는 제안"이라고 일축한 바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북한은 핵문제의 해법으로 동시 이행에 기초한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을 요구해왔다. 북한의 핵 포기와 안보적·경제적 우려가 단계적이고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북한은 사실상 '선(先) 핵포기'를 담고 있는 미국의 기존 제안이 바뀌지 않는 한 6자회담에 참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힐 차관보
힐 차관보 ⓒ 정욱식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도 할 수 있다"

힐 차관보는 또한 "미국의 제안에 북한이 반응하고 북한의 반응에 미국이 반응하는 것이 협상"이라고 강조하면서, 북한이 요구하는 동시 이행 원칙을 수용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강력히 시사했다.

그는 북한은 '행동'을 취했는데 상응조치로 '말'만 듣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것들을 북미간에 동시에 하는 것이 가능하냐"는 질문에 대해, "우리는 단계들의 연속적인 측면(sequencing of the steps)에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답했다.

힐은 여러 차례에 걸쳐 '연속적인 실행(sequencing)'을 강조했다는데, 이는 북한이 요구해온 '동시 이행'과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힐이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의 맥락에서 문제를 풀 수 있다고 강조한 것은 북한의 입장과도 상당한 유사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가 "협상에서 누군가가 상대방의 말에 상응해 행동을 취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는 점을 우리도 알고 있다"고 강조한 것은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한다.

1기 부시 행정부는 초기에 북한의 선핵폐기 입장을 고수했다가 국내외의 강력한 비판에 직면해 '상호조율된 조치'(coordinated steps)를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이 방안 역시 "악행을 보상할 수 없다"는 입장 하에 북한의 일방적인 핵포기를 관철하려는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힐 차관보는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을 연속적인 맥락에서 할 수 있다고 밝혀, 이전보다 진전된 입장을 드러냈다. 그가 이러한 방향을 강조하면서 "우리의 제안에 대해 북한의 반응을 주의 깊게 살펴볼 것이고 합의에 도달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한 것은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한다.

미묘하지만 중요한 변화

이번 인터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2기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미묘하지만 중요한 변화를 보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다. 물론 힐 차관보 발언이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부시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을 '폭군'이라고 부른 것이나, 딕 체니 부통령 등 네오콘의 영향력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힐 차관보가 전향적인 입장을 밝혔다고 하더라도, 이는 북한이 요구하는 수준과는 여전히 거리가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고위 관리가 처음으로 북한에 대해 '좋은 의도'를 갖고 있고 평화적인 공존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을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분명 주목할 가치가 있다.

더구나 대북정책에 있어서 네오콘의 영향력이 쇠퇴하고 국무부의 권한이 강화되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힐 차관보의 발언에는 어느 정도 무게가 실리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 곳 워싱턴에서는 전임자였던 제임스 켈리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크리스토퍼 힐의 위상이 높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메신저' 수준이 아니라 실질적인 협상 권한을 갖고 있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물론 힐 차관보가 내비친 협상 의지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협상다운 협상을 해보겠다는 의지의 이면에는 6자 회담이 끝내 무산될 경우 본격적인 대북 압박 및 제재에 나설 수 있다는 경고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부시의 대북적대정책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 하에 '핵 억제력' 확보에 몰두하고 있는 북한이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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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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