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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종호 기자 = 명성황후 시해사건 발생 110년 만에 처음으로 시해범들의 후손이 한국 땅을 찾아와 사죄를 했다.

1895년 10월 8일 새벽 경복궁 내 명성황후 처소인 건청궁(乾淸宮) 옥호루(玉壺樓)에 난입, 황후를 시해했던 범인 48명 가운데 구니도모 시게아키(國友重章)의 손자 가와노 다쓰미(河野龍巳.84) 씨와 이에이리 가가치(家入嘉吉)의 손자며느리 이에이리 게이코(家入惠子 ) 씨, 그리고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 회원 10명 등 모두 12명이 9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이들은 서울 중구 필동 한국의 집에서 대화 모임을 갖고 "우리는 진정한 사죄를 하러 왔다. 이제 시작이다"라며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하겠다"고 말했다.

이제까지 일본은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대해 정부와 민간을 막론하고 사죄나 유감 등 어떤 반응도 보인 적이 없었다.

이들은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기록한 일본 역사교과서는 단 한 종뿐이나 이마저 최근의 우경화 분위기에 밀려 삭제될 위기에 처해 있다"면서 "앞으로 교과서들이 이 사건을 기술하도록 시민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말했다.

가와노 씨는 "오늘 아침 출국에 앞서 가족묘를 찾아 '할아버지가 지으신 죄를 대신 씻으러 한국에 갑니다'고 말씀 올렸다"면서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우리가 죽어서 좋은 곳에 가지 못하리라는 두려움을 느껴왔다"고 말했다.

다도 전문가인 이에이리 게이코 씨는 "제 방식대로 명성황후께 사죄하기 위해 묘소에서 극진한 정성으로 차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 함께한 최서면(崔書勉.77) 명지대 석좌교수(전 도쿄 한국문화원장)가 "일본은 이제까지 말로만 사과했을 뿐 진정한 행동을 보이지 않아 사과의 횟수만 늘어났다"면서 "당신들처럼 진심으로 사죄하는 일본인과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자"며 악수를 청하자 가와노 씨는 눈물을 흘리며 최 교수의 손을 잡았다.

최 교수는 "명성황후의 국장이 여러 차례 연기된 것은 시해범의 목을 베어 황후에게 바치기 전에는 장례를 치를 수 없다는 고종의 의지 때문이었다"며 많은 자객이 일본에 밀파됐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결국 친일파 우범선(우장춘 박사의 부친)을 암살하는 정도에 그쳤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한편 지난해 11월 양심적인 전직교사 20여 명이 모여 결성한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을 주도하고 있는 가이 도시오(甲斐利雄.76) 씨는 지금까지 자객들의 후손 14명을 확인하는 한편, 명성황후 시해에 사용된 칼을 두 집안에서 발견하는 등 각종 기록과 자료를 속속 발굴 중이라고 밝혔다.

또 후쿠오카(福岡)의 한 사찰에서는 한 시해범이 양심의 가책을 느껴 만들었다는 명성황후의 석조상도 발견됐다고 가이 씨는 전했다.

그는 이 모임이 구마모토(熊本)에서 결성된 데 대해 "시해범 48명 가운데 20여명이 한성신보 기자와 직원 등 구마모토 출신이다보니 자연스레 그렇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들의 방문은 근현대사 민족 문제에 관한 영상기록물을 다수 제작해온 정수웅 감독(다큐서울 대표)이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성사됐다. 정 감독이 작년 11월부터 제작 중인 다큐멘터리 '명성황후 시해사건, 그 후손들 110년 만의 사죄'는 조만간 52분짜리 2부작으로 완성돼 SBS와 일본의 한 TV 방송에서 방영될 예정이다.

이들은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 소재 고종-명성황후 합장묘인 홍릉과 여주에 있는 황후 생가, 시해사건 현장을 찾아 사죄의 예를 갖춘 뒤 12일 돌아갈 예정이다.

http://blog.yonhapnews.co.kr/star0201/
yesno@yna.co.kr

"명성황후께 할아버지 대신 진심으로 사죄하겠다"
<연합인터뷰> 명성황후 시해 자객의 손자 가와노씨

(서울=연합뉴스) 이봉석 기자 = "너무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기회가 닿질 않았습니다. 할아버지가 명성황후께 한 일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하러 왔습니다."

1895년 벌어진 명성황후(明成皇后) 시해사건에 가담했던 일본인 낭인 가운데 한명인 구니토모 시케아키(國友重章)의 친손자 가와노 다쯔미(河野龍巳ㆍ84) 씨가 일행과 함께 9일 한국을 찾았다.

사건이 일어난 지 110년 만에 명성황후의 무덤 앞에서 할아버지를 대신해 용서를 구하기 위해서다.

이번 방문은 정수웅 감독(다큐서울 대표)이 다큐멘터리 '명성황후 시해사건, 그 후손들 110년 만의 사죄'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이뤄진 것으로, 방문단에는 시해 가담자였던 이에이리 가가치(家入嘉吉)의 손자 며느리 이에이리 게이코(家入惠子) 씨와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 회원 등 약 10명이 포함됐다.

이날 서울 필동 한국의집에서 기자와 만난 가와노 씨는 '사과', '반성'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사용하면서 사죄의 뜻을 거듭 나타냈고, 할아버지에게서 들었다며 명성황후 시해 당시 모습을 전하기도 했다.

또 자리에 함께한 최서면 명지대 석좌교수가 대담 도중 "일본인들은 반성한다고 해놓고 진정한 반성이 아니었다. 진정한 반성을 하라"고 말하자 그는 눈물을 흘리며 "진정으로 반성한다"고 말하면서 최 교수가 뜨겁게 악수하기도 했다.

다음은 가와노 씨와 일문일답.

-- 이번 방한의 목적은.

▲할아버지가 명성황후께 한 일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하러 왔다. 내일(10일) 오전 명성황후가 묻힌 경기도 남양주시 홍릉을 참배하고 여주에 있는 명성황후 생가도 방문할 것이다. 홍릉에 가서는 '명성황후는 한국을 위해서 러시아 세력을 끌여들인 것인데 그 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라고 생각하며 내 할아버지를 대신해 사죄할 생각이다.

-- 사죄 방문이 좀 늦은 감이 있는데.

▲일찍 오고 싶었지만 기회가 닿질 않았다. 혼자 오기에는 용기가 없었다.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 회원들을 알게 돼 이렇게 올 기회가 생겼다.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은 일본 침략의 역사를 제대로 알자는 취지에서 모인 '평화헌법을 살리는 구마모토현민 모임'에서 출발한 것으로, 활동 도중 명성황후에 대해서도 알게됐다.

-- 할아버지에게서 시해 사건에 관해 들은 바가 있는지.

▲당시 자객들이 들이닥치자 깜짝 놀란 궁녀들이 명성황후를 감쌌다고 한다. 자객들은 궁녀들 가운데 있는 사람이 명성황후임을 직감으로 알고 칼로 찔렀다고 들었다. 이건 할아버지에게서 직접 들은 것은 아닌데, 자객들은 칼로 찌르기 직전 "당신이 명성황후 맞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또 직접적으로 칼로 찌른 사람은 데라자키라고 야마베라는 사람은 기록하고 있다. 어렸을 때는 할아버지가 시해 후 명성황후 허리춤에서 빼앗았다는 비단으로 된 열쇠주머니를 갖고 놀기도 했다. 자라면서 잃어버렸는데 최근에 똑같은 물건을 만들어 사진으로 찍어뒀다.

-- 할아버지의 전력이 성장하면서 부담이 되지는 않았는지.

▲어렸을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냥 할아버지가 애국심의 발로에서 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할아버지가 명성황후를 시해한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 최근 한ㆍ일 간에 독도를 놓고 영토 다툼이 벌어지고 있는데.

▲독도 문제는 극히 사소한 문제다. 독도에 현재 한국 사람들이 들어가 있는데 어떻게 일본땅이 될 수 있는가. 더 중요한 문제는 명성황후에 관한 문제다.

anfour@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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