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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한 모임에 나온 회원들 입에서 하나같이 대통령과 정부시책에 대한 칭찬이 늘어집니다.

"감사하지 뭐야. 올 들어만 2억이 올랐어."
"내가 뭐라 그랬어. 팔지 말라고 했잖아."
"박 여사도 많이 올랐지?"
"많이는 뭐… 한 3억 올랐나?"
"3억이 뭐야. 가장 많이 오른 동네에 집이 두 채나 있으면서. 오늘 밥값은 박여사가 내."
"와하하…."

▲ 엄청난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분당 일대 아파트
ⓒ 김혜원

점심 모임에 나온 주부들은 '복부인'들은 아닙니다. 다만 이들은 분당에 살면서 자신의 자산의 가치상승에 대한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 있는 평범한 주부들일 뿐입니다.

"지난번 공기업 이전 반대시위에 나갔어요?"
"그럼 나갔지. 우리 아파트 부녀회장님이랑 아주 열성이잖아요."
"꼭 나가야 되요. 공기업 나가면 집값 팍 떨어진단 말야. 우리가 나서서 막아야지 누가 막아줘."
"그래도 결정은 난 모양이던데요?"
"아직 몰라. 한두 번 속았수? 그리고 하는 데까지 해보는 거야. 집에서 놀면서 그것도 못해?"
"놀긴 누가 놀아? 운동도 해야 되고. 애들 학원에 보내야 되구. 얼마나 바쁜데?"

판교와 가까운 죽전이나 신봉지구 등에 아파트를 구매해 세를 놓고 있는 사람들 역시 들떠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30평대 아파트의 경우 2년 전 구입할 때 비해 2억 가까이 올랐다는 것입니다.

"정부에서 발표가 나올 때마다 조금씩 오르더니 올해 초부터는 겁나게 올라버리더라니까. 나 요즘 대통령이 좋아지기 시작했어. 처음엔 우리를 죽이려는 줄 알았는데…. 결국 도와주고 있잖아. 하하하"

"나 요즘 대통령이 좋아지기 시작했어, 우리를 죽이려는 줄 알았는데"

제가 살고 있는 분당 ○○동의 경우 판교개발의 후광으로 아파트 값이 가장 많이 상승한 지역입니다. 지난해 가을만 해도 3억5000만원 정도 하던 32평형 아파트 값이 지금은 5억원에서 6억원에 거래가 되고 있으며, 가장 늦게까지 상승대열에 오르지 못하고 있던 ㅎ아파트 48평형의 경우 8억원 정도의 가격에서 거래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집값 상승을 드러내놓고 자랑을 하거나 기뻐하는 원주인들과 달리 세입자들의 속은 그야말로 바글바글 끓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공연히 잘못된 주택정책을 비판했다가는 그나마 알고 지내는 이웃사이에서 '왕따'가 되기 십상이라 대놓고 불만을 토로하지도 못한다는 몇몇 세입자들을 만나 보았습니다.

"집값 오르는 바람에 전세가도 덩달아 올라서 죽겠어요. 집 마련은 점점 어려워지고 그나마 전세도 이젠 용인, 광주, 성남쪽으로 돌아앉아야 할까 봐요."

"없는 사람들은 점점 더 조이고, 있는 사람들은 축제분위기고 무슨 주택정책이 이래요?"

"입주가 오래된 ○○동 H아파트는 바닷모래라느니 노후됐다느니 살기도 불편한데도 가격이 점점 올라요. 전세도 점점 오르고… 판교에 아파트나 하나 분양받아보려고 살고 있는데 빈부차이가 너무나 느껴져요."

아파트에서 주택으로 이사를 오기 전 4억8천에 매매가 가능했던 38평형 아파트는 지금은 6억 이상을 호가하고 있습니다. 전세가 역시 제가 살던 때에 비해 2천 가량 오른 가격에서 거래되고 있다니 건축 후 10년이 지난 아파트의 노후와 불편에 비한다면 턱없이 높은 가격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분당은 가진 자에겐 '천당' 그렇지 못한 자에겐 '지옥'

오른 집값 때문에 표정관리가 안되는 아파트 소유주들과 끝없이 폭등하는 부동산가격 덕에 점점 내집마련의 꿈이 멀어져가는 서민들이 함께 존재하는 분당. 잘못된 주택정책의 한가운데 놓인 이곳 분당은 가진 자에겐 천당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겐 오히려 좌절을 안겨주는 지옥과도 같은 동네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저 역시 서울에 있는 아파트를 팔고 분당에 세입자로 들어온 지 만 5년이 되어갑니다. 그나마 무주택청약자격을 갖추었다고 좋아했더니 10년 이상 무주택자에게 우선순위가 돌아간다는 정책이 나와 또 한번 좌절을 맛보고 있습니다. 이처럼 자고 나면 폭등하는 아파트가격과 아파트 입주권 당첨이 로또에 비유되는 나라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우리들끼리 하는 말이 있습니다.

"차라리 아무 정책을 내놓지 말지. 내놓을 때마다 집값이 껑충 뛰는데 도대체 누굴 위한 정책이란 말이야?"

주택정책을 계획하고 집행하는 담당자분들은 이런 서민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한탕주의가 아닌 진정 서민을 위하고 무주택자를 위한 실제적인 주택정책은 꿈에 불과한 것인지 다시 한번 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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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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