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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6월 2일자 사설(위쪽)과 문화일보 6월 18일자 사설. 이들 보수언론은 한결같이 부동산 가격 폭등세를 잡기 위한 대안으로 공급확대만을 외치고 있다.
공급확대론자들이 승리할 것인가?

다시 원점이다. 노무현 대통령 주재 하에 열린 6·17 부동산정책간담회에서 당·정·청은 부동산정책의 목표와 효과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고 한다.

당·정·청이 이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 현재의 부동산 정책수단이 투기심리를 제어하기에 미흡할 뿐만 아니라, 최근엔 국민들로부터 신뢰성마저 상실할 위기에 봉착했다는 절박한 위기감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6·17 발표가 주목되는 것은, 그간 참여정부가 추진해왔던 부동산 정책이 전면적인 궤도수정을 하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청와대와 정부가 공급확대론자들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불거지고 있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투기 억제와 관련된 부동산 정책은 크게 '세제 개혁 등을 통한 투기적 가수요 제거'와 '공급확대를 통한 가격 안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참여정부는 공급확대 위주의 정책을 추진했던 역대 정부와는 달리 '세제 개혁 등을 통한 투기적 가수요 제거'를 부동산 가격 안정의 총론으로 선택했다. 기실 종부세 강화와 개발이익 환수 등을 골자로 하는 10·29 부동산 대책과 보유세 강화를 핵심으로 하는 5·4 부동산 대책은 참여정부가 내건 부동산 정책의 각론에 해당한다.

물론 참여정부는 2기 신도시 건설 및 기업도시 건설 등으로 상징되듯 공급확대론자들의 주장을 일부 수용한 것도 사실이지만, 공급확대론이 참여정부의 주된 부동산 정책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국민의 정부 후반부터 전국을 강타하고 있는 부동산 투기 열풍이 참여정부 들어서도 좀처럼 진정될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다는데 있다.

10·29 부동산 대책으로 잠시 주춤하는 듯했던 강남, 분당 등지의 아파트 가격은 이전 수준을 훨씬 상회하고 있으며 용인, 평촌 등지의 아파트 가격도 멈출 줄 모르고 상승을 거듭 하는 중이다. 뿐만 아니라 수도권 일부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던 국지적인 부동산 가격폭등이 전국으로 번질 조짐이 완연하다.

때 만난 보수언론과 주류경제학자 '공급확대론' 일제히 합창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처음부터 못마땅하게 여겼던 보수언론과 한나라당, 주류경제학자들, 자칭 타칭의 부동산 전문가들이 모처럼 찾아온 호기를 놓칠 리 없다. 이들은 세금으로 부동산 가격을 잡는다는 발상은 난센스라는 주장을 펴며 공급 확대만이 부동산 가격안정의 유일한 방법임을 역설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공급확대론이 위에 열거한 이들에게만 폭 넓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여당 국회의원들과 청와대의 인사들, 관료들 대부분이 공급확대론에 매력을 느껴 이를 지지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사실상 몇몇 경제학자들과 극소수의 시민단체를 제외하고 부동산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 거의 전부가 공급확대론자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 공급확대론자들의 주장을 거칠게 요약해 보자!

공급확대론자들은 과거와 현재의 부동산 가격 폭등을 택지와 주택의 공급 부족에서 찾는다. 택지와 주택에 대한 수요는 왕성한 데 공급이 이를 받쳐주지 못하니까 부동산 가격이 앙등한다는 것이 공급확대론자들이 줄기차게 하는 주장의 요지이다.

판교에 분양할 중대형 평형 아파트의 공급이 부족해서 투기가 재연되었다는 주장, 집값을 잡으려면 강남 등지에 중대형 평형 아파트를 집중 공급해야 한다는 주장, 주택을 공급함에 있어서 양(量)-소형 평형 아파트-보다는 질(質)-중대형 평형 아파트-공급이 더 중요하다는 주장, 경기도에 1억평에 대한 개발권을 준다면 강남 집값을 2/3수준까지 떨어뜨릴 수 있다는 주장 등은 모두 공급확대론의 다양한 변주라고 할 것이다.

참여정부가 개발이익을 환수하고 보유세 실효세율을 높인다고 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있는 현금의 상황을 보면 일견 공급확대론자들의 주장이 더 현실적인 해법인 것처럼 보인다.

또한 공급확대론자들의 주장은 공급과 수요가 만나는 지점에서 가격이 형성된다는 경제학 교과서의 가르침에도 충실한 듯 보인다.

공급확대론 이론적으로 치명적 약점 내장...통계가 증명

그러나 과연 그럴까? 외형상 그럴듯하게 보이는 공급확대론은, 그러나 불행히도 이론적 치밀함이나 현실설명력 측면에서 치명적인 약점들을 내장하고 있다.

우선 공급확대론은 경제이론상 결정적인 난점을 가지고 있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공급확대론자들은 현재 부동산 가격 폭등의 원인을 공급 부족에서 찾는다.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에 수요와 공급의 원칙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면 공급확대론자들의 주장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부동산 시장의 가격 메커니즘은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서 완전히 자유롭다. 본디 택지와 주택의 공급이 늘어나면 부동산 가격은 하락하거나 적어도 안정되는 것이 경제이론상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이를 철저히 비웃고 있다.

실증적인 통계를 놓고 생각해 보면 이러한 사실이 더 명확해진다. 2000년 이후 수도권에 공급된 아파트는 단군 이래 최대라는 250만 가구에 이른다. 그런데 우리는 평당 2000만원에서 3000만원에 이르는 아파트들의 등장을 속절없이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도대체 이것이 어찌된 영문일까? 공급이 늘어나는 데도 불구하고 부동산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까닭은 정작 다른데 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투기적 가수요'이다.

불로소득을 쫓는 '투기적 가수요'가 저금리 등을 원인으로 한 풍부한 유동성을 원군으로 하여 간단없이 부동산 가격 메커니즘을 교란시키고 있는 것이 현 부동산 가격 폭등의 핵심이다.

결국 공급확대론자들은 '투기적 가수요'의 존재를 간과한 채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수요와 공급의 원리를' 앵무새처럼 되뇌는 치명적 오류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정상적인 공급을 가지고는 투기적 가수요를 만족시킬 수 없다. 투기적 가수요는 블랙홀처럼 공급을 삼켜 버리기 때문이다.

공급확대론자들은 미흡하나마 현 부동산 시장을 완전경쟁시장에 가깝다고 여기는 듯 하다. 그러나 공급확대론자들이 생각하는 완전경쟁시장은 창백한 경제학 교과서나 상상의 공간에서만 존재할 뿐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공급은 느는데 셋방살이 비율이 늘어나는 까닭을 어떻게 설명할 건가

특기할 만한 점은 자가보유율이 주택보급률을 따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자기 집 보유율은 1975년 63.5%에서 2000년 54.2%로 떨어졌다. 대신 셋방살이 비율은 33.2%에서 43%로 10%나 늘었다. 서울의 경우는 더 심해서 열 집 중 네 집만 자기 집이 있다.

물론 2001년부터는 자가보유율이 급격히 상승하여 2004년도에는 전국 63%, 도시지역은 65%에 이르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렇듯 자가보유율이 상승한 이유는 기실 다른 데 있다.

2001년부터 자가보유율이 급격히 상승한 이유는 지속적인 공급에 기인한 것이라기 보다는 주택 마련을 위한 가계부채의 규모가 가파르게 상승한 데 있다고 보는 것이 보다 타당할 것이다.

통계도 이를 충실히 입증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999년 200조가 채 되지 않던 가계부채 규모는 2000년부터 급격히 늘어 2004년도 말에는 450조원 규모로 늘었다.

또한 한 민간경제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이 가운데 거의 60%에 달하는 금액이 부동산 관련 대출에 해당한다고 한다. 1999년 1분기 당시 가계부채 중 부동산 관련 대출 비중이 29.1%였던 점을 감안하면 이 기간동안 그 규모가 대략 두배 정도로 늘어난 것이다.

위에서 보듯이 공급을 아무리 늘려도 자기 집을 마련하는 일은 과도한 빚을 내지 않는 한 어렵기만 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원인은 다른 데 있지 않다. 소수의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주택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행자부 자료를 보면, 집을 두채 이상 갖고 있는 1세대 다주택은 276만 세대(전체 세대의 16.7%)로, 이들이 차지한 집은 모두 814만호(전체아파트의 71%)에 이른다. 이들은 평균 세 채씩의 집을 소유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주목할 만 한 점은, 전체의 1.7%에 불과한 29만 세대가 집을 적게는 다섯 채에서, 많게는 스무 채까지 독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토지의 소유 집중도는 주택 보다 한결 더하다. 전강수 대구카톨릭대 교수는 "2002년 종합토지세 과세자료를 분석했더니 우리나라의 토지는 상위 1%가 전체의 45.3%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힌 바 있다. 상위 5%는 59.1%, 상위 10%까지 넓혀보면 전체의 72%를 갖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는 부연설명도 따른다.

부동산 가격 폭등은 주택 소유의 '부익부 빈익빈' 때문

위에서 열거한 통계들은 과거와 현재에 걸쳐 일어나고 있는 부동산 투기 및 가격 폭등의 결정적 원인이 토지와 주택의 공급 부족 탓이 아니라 소수의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토지와 주택을 소유하기 있기 때문임을 극명히 보여주고 있다.

소수의 사람들이 이렇듯 결사적으로 토지와 주택을 사 모으는 이유는 엄청난 규모의 불로소득이 보장되기 때문임은 긴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즉 불로소득을 쫓는 '투기적 가수요'가 토지 및 주택 소유 편중의 원인이다.

문제는 공급확대론자들이 위와 같이 생생한 통계들을 애써 무시하거나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이들은 부동산 투기의 원인과 해법을 현실에서 찾지 않고, 잘못된 경제이론에서 찾는다.

지금도 공급확대론자들은 '공급확대만이 살길'이라는 노래를 합창하고 있다. 이들의 합창이 현실이 되는 날, 대한민국 방방곡곡은 빈 집들로 넘쳐날 것이며, 국민경제는 재기불능의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 명약관화하다.

그릇된 이론은 그릇된 정책을 낳으며 그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이 된다. 이론을 생산하는 학자들의 책임이 정치가의 그것보다 결코 가볍지 않다는 사실을 공급확대론자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에서 정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대자보와 뉴스앤조이에도 기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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