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사회의 코끼리 - 군대문제
어느 날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거실에 코끼리가 한 마리 들어와 있었다. 처음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코끼리의 몸집은 비대해져갔고, 이윽고 집 전체를 메울 만큼 거대해지고 말았다. 하지만 코끼리를 밖으로 내보낼 방도가 없으니 그냥 참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우리는 결국 코끼리의 존재에 익숙해져 간다. 코끼리는 우리의 집 그 자체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미국의 ‘거실의 코끼리’ 우화는 내부의 심각한 부조리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너무나 거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섣불리 거론하거나 고민하지 못하고, 결국 불편한 채로 익숙해져버리는 상황을 빗대는 이야기이다. 어느 사회나 조직을 막론하고, 우리 모두는 자신들만의 코끼리를 한 마리 이상씩 기르고 있다. 예를 들면 가정 내의 폭력이나 친일파 청산 문제, 그리고 군대문제가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아주 가끔씩, 너무나 비대해진 코끼리가 몸을 비틀며 그 존재감을 과시할 때가 있다. 사회 전체가 요동치며 해결책을 고심하는 이때에, 우리는 양자택일의 선택안을 강요받는다. 부서진 집을 다시 고칠 것인가, 아예 코끼리를 집 밖으로 빼낼 것인가. 그 동안 우리 사회는 후자에 대한 문제의식의 공유를 생략한 채, 습관적으로 전자를 선택해왔다.
금번, 경기도 연천의 군부대에서 발생한 사병의 총기난사사건을 둘러싸고 우리는 또 다른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김일병에 대한 문책을 통해 이번 사건이 마무리된다면 결국 박살난 초가삼간을 어거지로 붙들어놓은 모양새가 될 것이지만, 만약 군대문제라는 거대한 모순을 직시하고 토론할 수 있는 계기로 이어진다면 코끼리를 집 밖으로 끌어내는 기회로 승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총기난사사건 - 누구의 책임인가?
이번 총기난사사건의 모든 책임은 단연 김일병 당사자에게 있다. 그는 자신의 천인공노할 행위에 대해, 법에 의거한 응분의 댓가를 지불해야만 할 것이다. 김일병의 어리석은 판단과 행동이 그 어떠한 사회병리학적 해석의 틀에 끼어 맞추어 보더라도 그 죄질의 심각성과 문제의식을 희석시킬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짚고 넘어갈 점은, 과연 김일병에 대한 단죄와 응징을 통해 이른바 ‘군대문제’가 사라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 사안을 바라보는 주변인들의 태도에서 발견된다. 갖가지 추리와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김일병의 소심한 성격과 게임을 좋아했다는 평소의 행동패턴 등을 통해 이번 총기난사사건의 원인을 규명해보고자 하는 움직임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식의 원인분석과 규명은 당장의 가십거리를 제공할 수는 있겠으나, 눈앞에 펼쳐진 현상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자 하는 의도와 결합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결코 올바른 해결책으로 볼 수 없다.
총기난사사건이 개인의 취미생활이나 성격 같은 몇 가지의 요인들을 통해 발생한 것이라는 이차원적 분석은, 원인규명에의 강박관념에서 비롯된 오류에 불과하다. 구체화된 행동의 저변에는 언제나 그를 둘러싼 모든 환경과 기재들이 유기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접근 방법이 결국 가시적으로만 작용하는 이벤트성 대안을 낳았고, 결과적으로 선임병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후임병들의 혼돈을 이끌어 상호간의 불신과 대립을 야기했음을 직시해야만 한다.
이벤트성 대안들의 난립
작금에 와서 터져 나오는 갖가지 군 관련 사건사고들은, 변해가는 사회문화에 적응하지 못한 군 조직이 어긋난 상황판단을 통해 당장의 문제점을 무마시키려는 이벤트성 대안들을 남발한데에서 기인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등병의 날’ 행사를 통해 과자 몇 개를 물려주고 잠시잠깐 육체적 노동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 전체 신병에 대한 처우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식의 미숙한 논리가 문제인 것이다.
2001년 말에서 2002년 초에 군 생활을 했던 장병들은 모두 기억하겠지만, 민간인에 의한 총기피탈사건이 발생했을 때 불어 닥친 각종 사열과 점검의 열풍은 군 당국의 대처능력을 의심케하는 대표적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이때 행해진 대책들이라는 것의 본질이 고작 ‘순찰자에게 지적당하지 않기 위한’ 시범식 교육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듭하여 발생하는 부대 내 구타사건을 두고 군 당국이 보인 행보란 소원수리 제도의 적용빈도를 늘려나가는 식의 단선적 대책뿐이었다. 이러한 방책들의 공통점은 실제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에 있어서 별다른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지만, 상급 지휘관에게 보고하기 편리한 ‘눈에 띄는’ 방안들이라는 것이다.
군 조직의 가장 큰 문제점이 바로 이것이다. 이들의 최대 관심사가 실제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는데 있지 않고, 단순히 지휘관에게 보고하기 위한 가시적 무마책을 생산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허울 좋은 ‘신세대 장병, 신세대 병영’ 을 운운하며 시대에 적응하고 있다는 착각 속에서 대한민국의 군 조직은 내부의 부조리만 키워내고 있었던 실정이다.
만약 이번 총기난사사건을 통해 얻어지는 대안이 고작 ‘경계근무 시 탄약 및 수류탄 미 불출’이나 ‘병 상호간 존칭 사용’ 따위의 단발성 이벤트로 그친다면, 더 크고 위험천만한 사고가 뒤따를 것이라는 사실을 군 당국은 인식해야만 한다.
군사문화에 사로잡힌 대한민국
‘군대문제’라는 거대한 코끼리가 이미 대한민국의 특수성 그 자체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 또한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다. 이 나라는 병영국가라는 자조적 말이 나올 만큼 군사문화에 의해 지배되고 있으며, 여기서 기인하는 폭력성과 상명하복의 계급체계가 고귀한 가치로 숭상되고 있다. 군 복무가 의무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만큼, 이러한 문화적 특수성은 지속적으로 학습되며 전파된다.
우리 사회의 군사문화는 역사적 특수성과 맞물리면서 필연적으로 등장했으며, 사안의 심각성과 대물림되어 이어지는 숱한 부조리들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쉽게 청산되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구성원들은 점차 무감각해져가고, 군사문화는 우리 사회의 특수성 내지는 그 자체로 승화되어 버린 것이다.
총기난사사건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대다수가 ‘군 기강의 해이’를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고 있는 것은, 단순히 ‘내가 복무할 때는...’ 식의 보상심리에서 기인한다기 보다는 국민들의 의식 속에서 이미 뿌리 깊게 작용하고 있는 군사문화의 영향으로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앞서 지적했다시피 최근 군 관련 사고들의 공통점은 군 기강의 해이가 아닌 군 조직력의 와해이며, 이는 지휘부의 어긋난 상황인식과 이벤트 식 대안설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과거와 같은 구태의연한 군기확립으로 작금의 환경에 적응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사회에 만연한 군사문화를 총체적으로 아우르는 문제적 관점을 미처 형성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이른바 ‘근본적 대안마련’에만 급급한 본말전도의 오류가 지속되는 이상 군 관련 사건사고는 계속해서 지속될 것이다.
섣부른 원인분석보다는 군대문제를 총체적으로 인식하는 혜안이 필요
콜럼비아 고교의 총기난사사건을 두고 미국의 구스 반 산트 감독은 그의 작품 <엘리펀트>를 통해 가해학생들의 몇 가지 단면들이 그들의 행동을 규정짓는 원인이 될 수 없음을 우회적으로 지적한 바 있다. 그 동안 우리들은 가해자를 응징하는 차원에서 사건을 무마해왔으며, 이 과정에서 생산되는 엉뚱한 원인분석과 대안들로 인해 구조적 모순을 부채질 하는 오류를 되풀이해왔다.
모든 해결 방안의 모색은 전체적인 문제점을 올바르게 직시하고 인정하는 데에서 출발해야만 하며, 원인의 분석과 대안의 설정은 그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져야만 한다. 이번 연천의 총기난사사건이 김 일병의 책임인 것은 자명하나, 그러한 파괴적 행위의 이면에 암약하는 총체적 문제점을 인식하지 않는 것은 두 번째, 세 번째 김 일병을 생산하게 되는 지름길인 것이다.
군 당국은 더 이상 이벤트성 대안제시를 통한 위기극복을 꿈꾸지 말 것이며, 보다 근본적인 문제의식에 대해 장기적인 안목으로 대책을 세워주길 바라마지않는다. 아울러 국민들은 폭력적 계급구조를 용인하며 과거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식의 감정적 대처를 앞세우기보다, 군대에서의 폭력은 필요악이라는 선입견을 타파하고 징병제 체제 하에서의 생산적 사병관리와 조직통합을 위한 고민을 공유해야만 할 것이다.
집 안에서 코끼리를 빼내기 위해서는 코끼리가 우리의 집 그 자체가 아님을 먼저 인식하고, 이를 문제적 관점에서 직시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모든 구성원들이 코끼리의 존재를 문제로 받아들이고 이를 빼내기 위한 고민을 거듭한다면, 진실로 코끼리가 집 밖으로 끄집어내지는 날이 올 수 있을 것이다. 사회는 그런 식으로 진보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