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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결식에 참석한 권진호 국가안보보좌관이 노무현 대통령을 대신해서 고인들의 영정앞에 헌화와 분향을 한 뒤 묵념하고 있다.
영결식에 참석한 권진호 국가안보보좌관이 노무현 대통령을 대신해서 고인들의 영정앞에 헌화와 분향을 한 뒤 묵념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던 연천군 최전방 GP 총기난사 사고는 지난 25일 여덟 희생자들의 합동 영결식으로 일단락 됐다. 논란을 빚었던 사고의 원인은 군대에 적응하지 못한 김 일병의 성격 결함 탓으로 결론 났다. 사고가 일어난 지 나흘만에, 세 번에 걸친 조사 결과 발표만에 내려진 결론이다.

이런 수사 결과는 추락한 군대의 위상을 조금이나마 회복시켜줬다. 또한, 하루아침에 '언어폭력'의 가해자가 되어 사망한 장병과 그 유가족들의 실추된 명예를 다시 세워줬다. 군 당국은 오직 사건을 일으킨 김 일병 한 명을 '공공의 적'으로 만들어 유가족들의 분노와 여론의 높은 비판을 비껴갔다. 과연 여덟 명의 목숨을 앗아간 공공의 적은 김 일병 하나였을까.

너무도 완벽한 군대에서 일어난 대형 사고?

군 당국이 지난 23일 발표한 종합수사 결과는 애초 1차 수사결과 발표 때와 내용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총기를 난사한 김 일병의 범행 동기와 대해서는 선임병들의 언어폭력 때문이라는 처음 발표를 완전히 뒤집었다.

23일 홍종설(준장) 육군 헌병감은 "친근감의 표시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것을 김 일병은 내성적 성격 때문에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심정적인 충격을 느낀 것 같다"고 말했다. 애초 발표한 언어폭력은 '친근감의 표시'라는 용어로 바뀌었다. 또한 "김 일병은 전투게임을 즐겨 현실과 가상세계를 구분하지 못하는 공상을 추구하는 성격이었다"고 말했다.

사고 당시 생존한 병사들도 종합수사 결과 발표 자리에서 군 당국과 비슷한 말을 했다. 병사들은 모두 "부대 분위기는 좋았고 김 일병이 문제였다"고 말했다. 또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큰 혼란 없이 침착성을 발휘해 용기 있게 대응했다고 증언했다.

종합해 보면 평소 소대원들은 서로 사이가 좋았고,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대응했다. 설명대로라면 대한민국 군대가 꿈꾸는 '완벽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완벽한 군대의 모습을 파괴한 건 '가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김 일병 하나였다. 그렇다면 이토록 완벽한 군대에 대해 군 당국은 불과 3일 전에 어떻게 이야기했을까.

육군 합동조사단은 20일 사고 조사결과 발표를 통해 김 일병은 지난 17일 평소 선임병들로부터 잦은 질책과 욕설 등 인격모욕을 당한데 앙심을 품고 선임병 등을 살해할 결심을 굳혔다고 밝혔다.
육군 합동조사단은 20일 사고 조사결과 발표를 통해 김 일병은 지난 17일 평소 선임병들로부터 잦은 질책과 욕설 등 인격모욕을 당한데 앙심을 품고 선임병 등을 살해할 결심을 굳혔다고 밝혔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김 일병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몇 명만 있었다면...."

"김 일병이 컴퓨터 게임을 무척 좋아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로 인한 행동이 아니었나 추측했지만 그런 흔적은 없었다. 김 일병은 남과 잘 어울리는 것을 어려워했고 작은 말에도 마음을 손상 받을 수 있는 소심한 성격을 가졌다. 같은 소대원 중에서 따뜻하게 김 일병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몇 명만이라도 있었다면 극복했을 것이다. 그것이 가장 아쉽다."

20일 2차 수사결과 발표 자리에서 합동조사단장인 박철수 육군본부 인사근무처장이 한 말이다. 박 조사단장은 그 자리에서 김 일병이 평소에 어떤 언어 폭력을 당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혔다. 또한 언어폭력 가해 병사의 자백도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앞으로 병사 개개인이 인권을 존중받을 수 있는 군대 문화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런 군 당국의 발표에 유가족들은 크게 반발했다. 소중한 아들을 잃은 것도 슬픈데, 그 아들이 언어폭력의 가해자로 몰렸으니 유가족들의 반발은 당연했다. 이런 유가족들의 거센 반발에 당혹스러워했던 군은 3일만에 '언어폭력'이 없었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군의 위상과 사망 장병 그리고 유가족들의 명예를 골고루 안배한 '합의'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 일병과 생존 병사들의 증언은 계속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당연히 대부분의 비난은 가해자 김 일병에게 쏠렸다. 우리 군대 문화를 돌아보고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은 김 일병을 향한 비난에 묻혀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군의 최종 수사 결과 발표 직후 김 일병을 옹호하는 카페가 여럿 생기고 수천 명의 네티즌이 가입했다.

25일 오전 열린 GP총기난사 사망 병사들의 합동영결식에서 동료들이 굳은 표정으로 영결식을 지켜보고 있다.
25일 오전 열린 GP총기난사 사망 병사들의 합동영결식에서 동료들이 굳은 표정으로 영결식을 지켜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무엇이 김 일병을 공공의 적으로 만들었는가

일부 네티즌들은 "전 근대적인 군부대의 시스템이 이번 사건의 본질이다", "군부대의 왕따 문화가 김 일병을 살인마로 만들었다"며 김 일병을 옹호하고 있다. 물론 "동료를 죽여놓고 반성의 기미가 없는 김 일병에겐 중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는 네티즌의 비난 여론도 만만치 않다.

20년 전 같은 28사단에서 총기난사 사고로 동생을 잃은 김상호씨는 "85년 당시 사고를 제대로 수사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했다면 이번처럼 똑같은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땅을 쳤다. 당시 내무실에 총기를 난사해 '공공의 적'이 된 박아무개 이병은 사형을 당했다. 공공의 적은 사라졌지만 20년 후 똑같은 사고가 반복됐다.

물론 20년 동안 많이 것이 달라졌다. 20년 전의 유가족들은 군 당국으로부터 사과 한마디 듣지 못했다. 지금의 유가족처럼 '별'도 못 봤고, 책임지고 물러나려는 '별'도 없었다. 언론의 취재가 없었던 것도 당연했다. 그러나, 사건을 일으킨 당사자 한 명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태도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오마이뉴스>가 지난 22일부터 받고 있는 은폐된 군대내 사망사건 관련 제보에는 며칠 사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군대내 사망사고 수십 건이 접수됐다. 해결되지 않은 군대내 사고는 또다른 병사들의 죽음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덟 명의 젊은 목숨을 앗아가 공공의 적이 된 김 일병. 그는 법에 따라 엄격히 처벌받아야 한다. 그러나 무엇이 그를 공공의 적으로 만들었는지도 살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공공의 동지'인 병사들을 보호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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