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책을 마음껏 볼 수 있다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특히 '쉬운 소개 글'로 책에 관심을 둔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도서 평론가들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난, 언제나 저렇게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을까. 또 저렇게 쉬우면서도 간결한 글로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읽은 책을 자신 있게 권할 수 있을까?
<책과 더불어 배우며 살아가다>는 책이 좋아 스스로 '도서 평론가'라는 직업을 만들어 부르며,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책을 소개하는 것에 소신을 두고 있는 이권우씨의 세 번 째 책으로, 서평을 모은 '서평에세이집'이다.
방송이든, 이런 인터넷 매체든, '좋은 책 좀 많이 읽자'며 책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도서 평론가가 '좋은 책'이라고 말하는 책은 어떤 것들일까? 소개하는 책들 중에서 내가 읽은 책은 몇 권쯤일까? 남들에게 좋은 책이라고 소개하는 글은 어떤 식으로 써야 할까?
이 책에서는 55편의 작품을 48개의 글로 만날 수 있다. 문학이나 고전, 사회과학, 예술은 물론 신화, 판타지, 만화 등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골고루 만날 수 있다. 또한, 다양한 장르 못지않게 동양과 서양, 옛 시대와 현재를 넘나드는 폭넓은 인용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른 책을 사 읽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내가 좋아하는 책읽기 방법 중 하나는 어떤 책을 읽다가 인용하는 글에서 책이름이나 또 다른 저자 이름이 나오면 그 책을 잊지 않고 찾아보는 것이다. '확장의 독서'랄까. 이 책은 나의 그런 독서 방법을 맘껏 즐길 수 있게 하였다.
노혜경의 책 <천천히 또박또박 그러나 악랄하게>에 대한 글 제목은 '읽는 이를 불편하게 하는 책'이다. 누군가 좋은 책을 말해달라고 하면 '읽는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책'이라고 한다는데, 이런 점에서 이 서평에세이는 나를 불편하게 한 책이다. 그간 책을 읽어 온 나의 자세를 돌아보게 하였으니 말이다.
돌아보면 그래도 남들보다 책을 좀 많이 읽는 편에 속했으며, 늘 끼고 사는 편이었다. 한 권을 읽으면서 다른 읽을 책을 발견하고 다시 또 다른 책을 급하게 읽어 나갔다. 책을 읽고 난 후 간추려 메모하거나 생각을 정리하여 적어 두는 것에 게을렀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어리석은 독서였다.
뭐가 그리 급했을까? 한 걸음 쉬고 잠시 정리한 뒤 다른 씨앗을 심었다면 훨씬 튼실한 열매를 맺었을 것인데…. 그때 이런 좋은 길잡이를 만났다면 좀 더 현명한 책읽기를 할 수 있었을까. 아마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최근 들어 이런 책들이 많이 나와서 좀 더 현명하고 체계적인 책읽기를 할 수 있어서 좋다.
이 책 속에서 만나는 책들을 일단 생각나는 대로 적어 보면 아래와 같다. 그러나 가급 선택하여 글의 맛을 직접 느껴보길 권한다.
글 뒤에 숨은 글(김병익), 사람풍경(김형경) 우리시대의 초상(이윤기), 암흑의 핵심(조셉 콘라드),손님(황석영),거세된 희망(폴리 토인비),한글세대가 본 논어(배병삼), 숲의 생활사(차윤정), 곶감과 수필(윤오영), 한국 철학에세이(김교빈), 신영복의 엽서,예술가로 산다는 것(박영택),검은꽃(김영하),만화로 읽는 사기(쿠보타 센타로),모차르트 평전(필립 솔레로스), 태평양 횡단특급(듀나), 그림이 내게 말을 걸어 왔다(조정육)…
나도 저자처럼 누군가에게 '이 책은 좋은 책'이라고 소개하는 말을 완벽하고 자신 있게 해보고 싶다. 아직은 지나친 욕심이겠지만, 부지런히 읽고 모방하여, 나만의 색깔로 만들어 이왕 읽은 것 가급적 많은 사람과 함께 나누고 싶다.
'2005 한국출판연감'에 보면 지난해 일년 동안 국내에 총 3만5394종의 신간이 나왔다고 한다. 하루에 100권이 쏟아진 셈이다. 어지간한 책벌레들도 좋은 책을 일일이 만나 내 책으로 만나기는 그야말로 불가능하다. 마침 좋은 책이지 싶어 선택하였지만 쏟는 시간이 아까워 접어 버리는 경우도 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책에 대해 막연한 갈증과 필요성을 갖고 살아간다. 그러나 일상인으로서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막상 선택하였는데 기대와 먼 경우도 종종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이런 '서평에세이'는 '좋은 책'과 '읽어 볼 만한 책'에 대한 어떤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시간은 한정되어 있어 좋은 책을 미처 다 읽지 못하지만 우선 아쉬운 대로 만날 수 있는 다행스러움까지….
이 책을 읽으면서 염두에 두면 좋은 것은 ▲이미 읽었던 책이면 저자의 마음을 엿보면서 나의 느낌과 비교해본다 ▲이미 읽어야 할 목록에 두었던 책이면 저자의 글을 통하여 다시 검토하거나 필요성에 따라 읽기를 결정한다 ▲이미 만났던 책 중에 그다지 재미있지 않아서 몇 쪽 읽다가 던져 둔 책이 보이면 글을 통하여 다시 꺼내 읽어본다 ▲낯선 책이름과 저자라면 염두에 두거나 서점에 가는 길에 검토하여 본다 하는 것 등이다.
이 책은 책의 세계에서 자주 기웃거리다가 얻은 대단한 보너스다. 소문난 책벌레가 수많은 책들 중에서 골라낸 책들이란다. 책벌레를 울고 웃게 하였으며 새로운 책으로 건너가게 하였다는 책들이란다. 그만큼 감동 깊은 책이어서 또 다른 독자들과 함께 교감을 하였으면 좋겠다고 자신 있게 추천하는 책들이다.
취미도, 특기도 직업도 책읽기라고 말하는 소문난 책벌레의 좋은 책을 같이 나누어 보자. 좋은 책을 어떻게 만나는지, 책과 어떻게 교감을 갖는지, 그리하여 또 다른 사람에게 어떤 마음 글로 추천해줄 수 있는지 함께 나누어 보았으면 싶다.
“정말, 뼛속까지 내려가 써보라. 그리하면 누구나 글을 잘 쓸 수 있다. 맨얼굴의, 흉악할 수도 있는 자신의 낯선 얼굴을 직시할 수 있는 용기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서평
덧붙이는 글 | ▶<책과 더불어 배우며 살아가다>는 도서 평론가 이권우의 세번째 책으로 2005년 8월 12일 해토에서 나왔습니다. 값은 9500원입니다.
저자의 다른 저서로 <어느 게으름뱅이의 책읽기>와 <각주와 이크의 책읽기>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