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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 그러니까 70년대였다. 어둡고 뭔가 반항적인 분위기가 맘에 들어 자주 듣고 흥얼거렸던 '해 뜨는 집'이라는 팝송곡이 하나 있었다. 아마 그런 노래를 좋아한 것은 청소년기라는 탓도 있고 암울하고 억눌렸던 시대 탓도 있으리라. 노래 가사 내용은 대충 이랬다.

뉴올리언스에 해뜨는 집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었다.
가난한 아이들이 사는 슬럼지역이었는데 나도 거기에 살았다.
아버지는 뉴올리언스 거리의 노름꾼이었고 술꾼이었다.
어머니는 가난한 바느질쟁이였는데 나에게 나쁜 짓을 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나 나는 불량소년이었다.
아버지가 만족해 있을 때는 술에 취해 있을 때뿐이고 필요한 것은 가방뿐이었다.


뭐 이런 내용들이다.

"그럼에도 미국인들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그런 뉴올리언스에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휩쓸고 갔다. 제방이 무너지자 해수면보다 낮은 도심은 거의 물에 잠겨버렸다. 시체가 둥둥 떠다니고 사람들은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미국의 위용을 말해주듯 길이가 38.4Km로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코즈웨이 다리가 맥없이 무너져 버렸다. 아직 사망자가 몇 명인지 파악도 잘되지 않는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사고 수습에 들어갔다. 차례차례 줄을 서서 노약자, 아이, 여자에 대해 먼저 양보하며 구조를 기다렸다. 그리고 곳곳에서 영웅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에게 닥쳐올 수 있는 위험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들과 여자들을 구출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아낌없이 던졌다. 비록 감당하기 힘든 자연재해에 의해 많은 고귀한 인명의 손실과 엄청난 물질적 피해를 입었으나 미국인들의 도덕성과 희생정신, 애국심은 이런 위기상황 속에서 더욱 빛났다. 폐허 속에서 희망의 힘찬 기운이 속속 뻗쳐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허리케인이 휩쓸고 지나가고 수몰이 된 뉴올리언스 지역에서는 약탈과 방화, 강간이 곳곳에서 일어났을 뿐이다. 구호물자를 서로 먼저 받아가기 위해 싸움이 일어나고 심지어는 구조를 위한 헬기에 총을 난사해 구조작업조차 중지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군대도 투입됐다. 이제 오히려 구조나 구호보다 치안 유지가 더 위급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제방이 무너지는 것과 함께 그들의 도덕성도 같이 무너져 버렸다.

부시 미국 대통령은 9ㆍ11테러사건 때, 그리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공 때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들이 테러를 하는 것은 우리(미국)의 자유를 시기하고 증오하기 때문'이라고. 또한 덧붙이기를 '우리는 결코 테러리스트의 이런 협박에 굴하지 않을 것이며 이와 싸울 각오가 되어 있다'고.

그런데 부시 대통령이 그렇게 지키고자 했던 미국의 고상한 가치와 문화는 어떤 상황의 변화가 오자, 국가적 공권력이 일시적으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자 바로 가장 야만적인 상태로 돌변해버렸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것은 결코 우연적이지 않다.

이따금씩 미국에서는 총기 난사사건으로 한번씩 시끄러워지곤 했다. 흔히 언론에서는 이를 특정 개인의 성격적 결함 문제로 치부하여 사고를 일으킨 개인과 관련된 사항들을 집중적으로 보도했지만, 마이클 무어 같은 사람은 다큐멘터리 영화와 책자를 통해서 그것이 미국 내에 만연해 있는 폭력문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국제관계에서 세계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은 그 힘을 바탕으로 폭력적인 방식을 통해서 자신의 이해와 가치를 실현하려고 함으로써 상대로 하여금 폭력 이외의 다른 저항방식 수단을 봉쇄해버렸다. 그래서 미국에 저항적인 테러리스트들은 미국의 폭력을 자신의 테러행위를 정당화시키는 근거로 삼고 있다.

총기 없이는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내기 힘드는 상황

국내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에서 나오듯 미국의 극우적 보수세력들은 자신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총기를 소지할 자유를 가져야 된다고 주장한다. 빈민층, 소수인종 등 불만세력들은 오로지 폭력의 위세에 의해 굴복하는 상황하에서만 복종하도록 길들여진다. 어쩌면 그런 과정들을 통해서 실제로 공권력의 공백이 생길 경우 기득권층이 총기 없이는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내기 힘드는 상황에까지 이미 와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번 수해가 난 뉴올리언스 지역은 거주민의 67%가 흑인으로 이들이 슬럼가를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 '해 뜨는 집'이 유행하던 30년 전과 비슷한 상황인 모양이다. 그런데 제방이 무너지고 가장 크게 피해를 입은 지역이 바로 이 슬럼가 지역이었다고 한다. 그들의 잠재되어 있던 불만이 허리케인 피해와 함께 증폭되어 폭발한 것이다. 그리고 그 방식은 공권력의 일정한 공백이 주어지자 바로 폭력적인 양상으로 나타나고 만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부시 대통령이 그렇게 자랑스럽게 내세우던 미국적 문화와 가치의 이면이요, 어쩌면 숨겨진 본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공권력의 공백이 있었던 시기 중 가장 가까운 때가 바로 광주민주항쟁 때인 것 같다. 당시 전두환 군사정권은 폭도들이 도시를 불법적으로 점령하고 있다고 했다. 어쨌든 국가기관의 공권력 공백이 생긴 상황이었다. 그러나 광주는 전혀 무법천지가 아니었다. 공권력의 힘에 의한 법질서 통치라는 강제가 없었지만 광주시민들은 결코 도덕적 제방을 허물어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지금 미국의 상황과 바로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 있겠지만 과연 이러고도 미국인들의 문화가 그렇게 지고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런 와중에 이번 허리케인이 동성애자에 대한 신의 벌이라는 주장이 한 미국 보수 종교단체에서 나왔다. 이런 말을 그대로 믿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느냐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미국의 대통령인 부시도 테러 대응, 전쟁과 관련하여 종교적인 근거를 내세우는 만큼 그냥 우스갯소리로 넘길 일은 아니다. 더구나 보수 기독교 세력이 부시를 뒷받침하면서 중동 국가에 대한 공격적 정책을 주도했으니 말이다.

처음 그들이 어떤 뜻으로 이야기했든 이 말이 정치적인 색채를 가미하게 될 때 그 의미는 단순히 동성애자를 공격하기 위한 것을 훨씬 뛰어넘게 된다. 보수 기독교적 가치에 반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떠한 응징도 정당하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사실 사람이 그렇게 떼로 죽어가고 엄청난 물질적 피해를 입은 상황에서 그런 말을 내뱉는다는 것 자체가 어지간한 배짱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바로 미국 우익의 가치와 그것을 지키는 방식의 폭력성을 나타내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번 허리케인으로 피해를 입은 많은 미국인에 대해서는 몹시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런데 이번 피해에 대해 동성애자에 대한 벌 운운하는 것처럼 혹시라도 이를 이상한 방향으로 끌고 가서는 결코 안된다. 이번 허리케인과 이후 혼란 상황을 통해 드러난 미국적 가치의 이면과 그 문제점에 대해서 부시 대통령과 미국인들은 직시해야 한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미국에서 '해 뜨는 집'은 영원히 사라지도록 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그것은 나아가 인류의 평화와 번영에도 대단한 기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감히 한번 넘겨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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