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길에선 배가 물살을 가르고 지나가자 그 물살이 강변에 이르렀다 밀려나오며 포물선의 완곡한 문양으로 강에 일렁거렸다. 산도 안개의 힘을 빌려 그 윤곽을 희미하게 숨기며 비슷한 문양을 그린다.
청평사 입구의 나무 두 그루는 일주문을 대신한다고 한다. 나무는 하늘과 대화하고 싶었나보다. 나무가 저 정도 컸다면 그것은 큰 정도가 아니라 수십년의 공력으로 저만큼 날아오른 거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아득한 높이는 컸다기보다 날아올랐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
나무 옆의 의자에선 사람들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 도시에 있을 때 대화는 회색빛이나 산에 오면 대화는 초록에 물든다. 초록빛 대화를 꿈꾼다면 자주 산에 갈 일이다.
회전문. 일주문 다음에 만나는 문이다. 보통 절에 갔을 때 처음 만나는 문이 일주문이며 그 중간에는 사천왕상이 있는 천왕문이 있고, 그 뒤쪽으로 해탈문이 있다. 청평사의 회전문은 일반 사찰의 중문인 사천왕문에 해당되는 문이다.
여기서 회전이란 돌고 돈다는 의미이다. 그렇다고 그런 의미의 회전문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돌고 도는 인연을 생각하며 몸을 한 바퀴 돌렸다가 들어가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돌고 도는 인연은 이 회전문에선 문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돌고 도는 사람이 만든다.
회전문을 지나면 경운루란 이름의 누각이 있다. 그 경운루의 가슴으로 들어갔더니 바로 앞 회전문의 지붕이 보이고, 그 위로 일주문 나무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처음엔 나무가 하늘을 날아오르려 했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보니 나무가 정작 궁금했던 것은 바로 누군가의 가슴 속이 아니었던가 싶었다.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 세상에 또 있으랴. 그 꿈이 저렇게 높이를 키우도록 한 것이었을까.
대웅전. 부처님은 가장 깊숙한 곳에 계셨다.
극락보전. 안락함과 편안함은 부처님이 있는 곳이 아니라 그 곳의 옆으로 약간 비켜난 곳에 있었다. 부처마저 버려야 그곳에 이를 수 있나 보다.
구성 폭포. 이름은 아홉 가지 소리란 뜻이다. 폭포는 물이 만드는 숲의 휘장이다. 숲 속의 휘장은 반드시 계곡을 흐르는 물에게 맡겨야 한다. 그곳에 인간이 만든 천조각에 버려졌을 때의 그 흉함을 생각하면 물이 숲의 휘장을 만드는 데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다. 청평사에 오르고 내려오는 길은 내내 계곡이 함께 한다.
물은 여러 가지 색을 갖고 있다. 그것은 투명한 듯하지만 속도를 얻으면 흰색이 되고 깊이를 얻으면 푸른 기가 돌기 시작한다.
항상 계곡의 물은 걸음이 바쁘다. 이상한 것은 무엇인가 걸음이 바쁜 것이 우리 곁을 지나면 우리도 그 속도감에 휩쓸리기 마련이나 계곡에서만큼은 물이 빠른 걸음으로 제 갈 길을 재촉할 때 오히려 사람들이 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아예 그 자리에 내처 앉아 그 속에 발을 담근다. 그리고는 한참 동안 그 물의 속도감을 발등으로 툭툭 치며 마치 물의 길을 방해라도 하는 양 노닥거린다. 저리 바삐 제 갈 길을 가면서 사람들을 붙들어두다니 그때마다 저는 움직이면서 사람은 세워두는 계곡의 힘이 신비롭다.
나오는 뱃길의 뒤에서 산과 물이 제 모습으로 풍경을 빚어 그것으로 작별 인사를 대신했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 동시에 게재했습니다. 블로그 -->김동원의 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