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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아더동상 가는 길을 전경이 봉쇄하자 격렬한 충돌이 벌어졌다.
ⓒ 이민선
'맥아더 동상철거 9·11국민대회'를 취재하기 위해 인천으로 가면서 남다른 각오를 해야 했다. 극우단체의 반발이 굉장히 거셀 것이라는 사전정보를 들었기 때문이다. 지난번(7월 17일) 인천에서 보수단체와 진보진영간의 충돌이 있었을 때 극우단체에서 '공기총'과 '야구방망이'까지 들고 나와 위협을 가했다.

최초 집결지 '숭의경기장' 입구부터 보수단체 소속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군복을 입고 전단지를 나누어주고 있다. 이미 초반부터 양진영간의 첨예한 대립이 시작된 것이다. 미국 본토가 공격당했던 9월 11일에 맥아더 동상 철거 집회를 한다는 것이 참으로 공교롭다는 생각을 하면서 걷다보니 어느새 행사장 중앙에 와 있었다. 사전집회가 한창 진행 중이고 각 진보 진영간 자리배치와 행진순서를 정하고 있었다.

'맥아더 동상철거 국민대회'의 의미를 집회참가자에게 들어보기 위해 두리번거리던 중 민주노동당 정형주 경기도당위원장을 발견하고 인터뷰를 시도했다.

▲ 민주노동당 경기도당 정형주 지부장
ⓒ 이민선
- 이번 국민대회의 중요한 의미를 어디에 두고 계십니까?
"아무래도 미군 문제일 것 같습니다. 주한미군의 문제가 전국적인 주목을 받아야겠지요. 그런 면에서 이번 대회는 매우 중요합니다. 매향리와 평택 투쟁의 연장선상에서 보아야 합니다. 올해로 미군이 이 땅을 강점한 지 60년째입니다. 이제는 미군들이 떠나야 할 때입니다."

행진은 시작 되었지만

사전집회를 마치고 맥아더 동상이 있는 자유공원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그러나 출발이 순조롭지는 않았다. 경찰이 입구를 봉쇄하고 길을 열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찰이 출입구를 봉쇄한 것은 '폭력적 게시물이 있다'는 것과 '시위용품 신고가 안 되었다'는 이유였다. 잠시 가벼운 몸싸움이 벌어지고 분위기가 일순 험악해지려는 순간 집회 지도부와 경찰간에 타협이 이루어지고 경찰들은 오후 1시 15분경에 길을 열어 주었다.

▲ 반전평화 미군철수 전국실천단의 길거리 공연
ⓒ 이민선
본 대회 장소인 자유공원까지 행진하는 동안, 도로에서는 각종 공연과 퍼포먼스가 이루어졌다. 자유공원 입구에 다다르자 길이 좁아서 행진속도가 느려지며 극우단체 회원들과 산발적인 충돌이 이어졌다.

▲ 보수단체 회원, 격렬한 항의
ⓒ 이민선
"너희가 애국이 뭔지나 알어? 이 XX놈의 새끼들아. 군대 가봤어? 이 세상에서 제일 나쁜 놈이 김일성이야."

보수단체 회원들은 욕을 퍼부으며 거세게 항의했지만 집회참가자들은 귀찮은 듯, 일일이 대응하지 않았다. 간혹 계속되는 욕설에 흥분한 집회참가자가 삿대질로 대응하는 모습도 보였지만 물리적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자유공원 입구에서 진보진영 집회 참가자들은 20여명의 보수단체 회원과 맞닥뜨렸다. 몸싸움이 벌어지고 욕설이 터져 나왔다. 진보진영은 경찰과 함께 보수단체의 저지선을 몸으로 밀어내면서 길을 열었다. 집회참가자들이 경찰과 힘을 합해서 보수단체를 밀어내는 희한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길은 뚫었지만 극우단체의 공격은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자유공원으로 진입하는 참가자들에게 쉬지 않고 계란과 돌을 던졌다. 참가자들은 자유공원 입구를 통과할 때 전력질주해서 계란과 돌팔매질을 피해야 했다. 본 대회 집결지 비둘기 공원 입구에서는 반전평화 민중연대 사물놀이패가 힘겹게 행진을 마치고 도착한 참가자들을 반겨주었다.

▲ 울산에서 온 농부 최영균씨
ⓒ 이민선
본대회 중에도 극우단체는 호루라기 등을 불며 집회를 계속 방해했다. 보수단체와 경찰들이 대치하고 있는 곳곳에서 욕설이 터져 나왔다. 한쪽에서는 시비가 붙었다. 욕설을 견디지 못한 집회 참가자가 극우단체 회원에게 거세게 항의한 것이다.

"야! 이 빨갱이 새끼야. 네가 대한민국 국민이냐!"
"뭐라고 빨갱이! 야 너 미국놈 앞잡이지?"

보수단체 회원과 시비가 붙은 집회참가자는 나이가 꽤 들어 보였다. 그의 말 속에는 미국에 대한 깊은 적개심이 배어 있었다. 그 적개심의 근원을 알아보기 위해 인터뷰를 시도했다. 최영균씨는 울산에서 올라온 농부였다.

- 미국이 왜 물러가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난 농사꾼이다. 울산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미국놈들이 우리 농업을 멸망시켰다. 그래서 미국이 싫다. 미 제국주의자가 WTO로 우리 농업을 압박해서 농촌을 망하게 하고 있다. 농촌에서는 30년 동안 애기울음소리가 나지를 않는다. 젊은 사람들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놈들은 핵을 제일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다른 나라는 갖지 말라고 한다. 정말 웃기는 놈들이다."

▲ 경찰들은 버스로 맥아더 동상 가는 길을 모두 막았다. 충돌
ⓒ 이민선

ⓒ 이민선

전경과 격렬한 충돌

본 대회를 마치고 오후 5시 20분 맥아더 동상 주변에 '인간띠잇기' 행사를 시작하면서 전경들과 격렬한 충돌이 있었다. 집회참가자들은 길을 열어주지 않는 전경들에게 거세게 항의하며 몸싸움을 벌였고 경찰들은 이를 막으려 방패로 밀어붙였다. 격렬한 싸움이 벌어지는 가운데 부상자가 속출했고 경찰이 던진 돌에 맞아서 머리가 터지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소화기가 살포되어서 온통 부연 가운데에서도 맥아더 동상으로 가기 위한 싸움은 멈추지 않았다. 일부는 버스 위로 올라가서 전경들을 밀어내고 일부는 맥아더 동상으로 가는 좁은 길을 뚫기 위해 계속 치열한 몸싸움을 벌였다.

약 30분간의 충돌로 부상자가 20명 정도 발생했다. 머리가 찢어진 부상이 가장 많았고 개중에는 팔이나 이가 부러진 사람도 있었다.

ⓒ 이민선

▲ 부상자 치료
ⓒ 이민선

ⓒ 이민선
진보진영과 보수단체, 전경들이 서로 부딪치며 깨지고 피흘리는 동안에도 맥아더 동상은 생채기 하나 없이 멀쩡했다. 맥아더의 영혼이 이 광경을 목격했다면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생각해보니 참담한 기분이 든다. 외국군대 지휘관 동상을 철거하기 위해 몸을 던지는 사람들과 그걸 막아야 하는 우리의 젊은이들, 그 광경을 지켜보며 욕설과 야유를 퍼붓는 보수단체 사람들, 맥아더의 영혼이 이 광경을 보았더라도 쉽게 이해하지는 못했으리라.

보수단체 회원들은 집회를 모두 마치고 자진 해산하는 사람들에게도 계속 욕설과 야유를 퍼부었다. 그들의 나이가 고령인 점을 미루어 볼 때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거나 직접 참전했던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의 마음 속에는 아직도 전쟁이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도 가시지 않은 전쟁의 증오를 같은 동족에게 보낸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미국이 우리의 은인이고 구세주가 아니란 사실은 이미 많은 부분이 밝혀졌고 앞으로도 재평가는 계속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또한 사대주의에 사로잡혀 불필요한 적개심을 가지는 일은 앞으로 지양해야 할 일이다. 외국군대의 지휘관 맥아더에 대한 재평가는 분명히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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