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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지 물웅덩이였던 것이 불과 4개월 만에 생명 덩어리로 변했습니다.
ⓒ 송성영
올 여름 내내 비가 왔고 가을의 문턱에서도 장맛비처럼 주룩주룩 내렸습니다. 산비탈 밭에 심은 길쭉한 무, 총각무, 돌산 갓, 배추 등 온갖 김장 채소들이 햇빛 좀 실컷 봤으면 좋겠다고 아우성이었습니다.

하지만 비가 자주 내린 덕분에 입이 헤벌어진 녀석도 있습니다. 밭 가장자리에서 활짝 웃고 있는 작은 물웅덩이, 둠벙(내 어렸을 때 작은 못이나 저수지를 둠벙이라 불렀다)입니다. 지난 5월 말, 5백 평에 가까운 산비탈 밭을 일구기 시작하면서 웅덩이 하나를 파놓았는데 바로 그것입니다.

▲ 웅덩이를 파고 사나흘 지난 상태. 논흙이 섞여 물색이 뿌옇다.
ⓒ 송성영
웅덩이를 파 놓고 사나흘쯤 지나자 거기에 개울물이 스며들어 점차 물이 차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물웅덩이의 변화 과정을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디지털 카메라에 캠코더까지 동원해 관찰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한 달 정도는 아무런 생명력도 없어 보였습니다. 단순한 물웅덩이에 불과했습니다. 아무것도 살지 않던 물웅덩이는 한동안 몸살을 앓았습니다. 처음에는 굳어 있던 논흙이 풀어져 물색이 뿌옇게 보였는데 햇볕이 쨍쨍해지기 시작하자 점차 붉은 빛을 띠기 시작했습니다. 녹슨 철물이 흘러든 것처럼 불그스름한 물색에 기름 띠 같은 것이 둥둥 떠다니기도 했습니다.

그 모습들이 너무 뵈기 싫어 한동안 관찰 일기조차 쓰지 않고 있었습니다. 폐수가 괸 공장 옆 웅덩이처럼 탁해 보이는 녀석을 거들떠보기도 싫었습니다.

'저토록 탁해 보이는 까닭은 뭘까? 비가 오지 않아 물이 오염돼서 그런 것일까? 아녀, 물이 가득 찰 정도로 비는 적당히 내렸잖어, 아마 모르긴 몰라도 물과 웅덩이가 서로 성질을 맞추기 위해 몸살을 앓고 있을 것일 거여, 남녀가 만나 결혼을 하면 초기에 엄청 심하게 다투잖어, 서로 가까워지기 위한 부부 싸움처럼 물과 웅덩이 역시 마찬가지일 거여, 둘이 하나가 되기 위한 몸부림 일거여...'

▲ 탁해지기 시작한 물웅덩이
ⓒ 송성영
기다렸던 장맛비가 줄창나게 내렸습니다. 웅덩이는 온통 흙탕물로 변했습니다. 장맛비가 지나가자 소금쟁이와 올챙이 녀석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소금쟁이들은 물 위에서 총총거렸고 올챙이 녀석들은 꼬물꼬물 거리며 물속을 오르락내리락 거렸습니다. 물웅덩이는 하나의 거대한 악보였습니다. 올챙이 악보를 펼쳐 놓고 소금쟁이 녀석들이 연주를 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올챙이들이 노는 모습 얼핏 보면 음표들 같으니까요.

웅덩이에는 소금쟁이와 올챙이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 속에서 잠깐 얼굴을 내밀고 다시 뽀르륵 잠수하는 작은 물방개에 실처럼 가느다란 실지렁이까지 보였습니다. 그러니까 물웅덩이에는 올챙이 소금쟁이, 물방개, 실지렁이, 네 종류의 생물들이 생겨났던 것입니다. 우리가 눈으로 확인한 것만 말입니다. 아마 눈에 보이지 않는 생물들이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그렇게 둠벙이 하나의 생명 덩어리로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뿐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고 본격적인 여름으로 접어들기 시작하자 물웅덩이에 다시 기름띠가 보이기 시작했고 철분 가루를 풀어 놓은 것처럼 물 색깔이 불그스름해졌습니다. 거기다가 한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도무지 맑아질 조짐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 소금쟁이 올챙이와 물방개 실지렁이 생기기 시작할 무렵의 물 색깔.
ⓒ 송성영
생물 사전을 뒤적거려봤더니 '오염된 물을 정화시키려면 미꾸라지나 송사리가 좋다' '부레옥잠 같은 수생식물도 좋다'하여 공주 오일장에 나가 미꾸라지 파는 아저씨 옆에 쭈그려 앉아 한참을 망설이다 그만두었습니다.

웅덩이와 물을 좀 더 믿어 보기로 했습니다. 물은 본래 가재가 살고 있는 맑은 개울물이 흘러든 것이었습니다. 오염될 이유가 없었습니다. 웅덩이의 물이 기름띠와 붉게 오염돼 보이는 것은 웅덩이 안의 돌멩이에 함유된 철분과 유기물질들이 빠져 나가는 과정일 것이었습니다.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그렇게 믿었습니다.

물이 오염돼 보였지만 올챙이와 그의 이웃사촌들은 여전히 그 모습을 보였습니다. 녀석들이 여전히 버글거리고 있으니 분명 생물들이 살아가는 데 큰 지장은 없을 게다, 조만간 붉은 물 기운이 가라앉게 되면 그 어떤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물웅덩이를 전적으로 믿지 못하고 아이들과 함께 저수지에서 잡은 손바닥보다 작은 붕어 두 마리를 풀어 놓았습니다. 붕어 녀석들이 물웅덩이를 회복 시키는데 어떤 일을 해 줄지 모른다는 한 가닥 희망을 품고 말입니다. 하지만 달포가 지나도록 물 색깔은 변화의 조짐을 보이지 않고 그 많던 올챙이들조차 보이질 않았습니다. 절망적이었습니다.

▲ 눈에 띄는 두 가지 종류의 수초가 생기기 시작한 물 웅덩이.
ⓒ 송성영
물웅덩이를 거의 포기한 상태로 거들떠보지도 않던 8월 어느 날이었습니다. 부여의 어느 작은 암자에 갔다가 우연찮게 부레 옥잠 몇 뿌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물웅덩이로 돌아와 부레 옥잠을 넣으려 했는데 아, 둠벙은 이미 거짓말처럼 맑아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 어느날 갑자기 물웅덩이에 나타난 두 가지 종류의 수초
ⓒ 송성영
좀 더 맑아지겠지 하는 욕심으로 부레옥잠을 넣어 놓고 사나흘쯤 지나 다시 가 보았습니다. 거기에 이름을 알 수 없는 두 종류의 수생식물들이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1년도 아니고 불과 4개월 만에 늪지의 그것들처럼 수생식물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가슴이 콩콩 뛰기 시작했습니다. 태초의 생명체를 본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둠벙은 좀 더 맑아져 있었습니다.

"송인효! 송인상! 이리 좀 와봐! 여기 좀 봐봐!"

나는 집 쪽을 향해 크게 소리쳐 아이들을 불러 들였습니다.

"얼른 와 봐! 여기 둠벙에 수생식물들이 생겼단 말여!"

수생식물이 생기고 물이 맑아진 것은 두 마리의 붕어나 부여에서 가져온 부레 옥잠과는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레옥잠을 넣기 전에 이미 수생식물들이 싹을 틔우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나는 부레옥잠을 꺼내 물웅덩이 밖으로 내 보냈습니다. 스스로 생명을 키울 수 있는 물웅덩이의 자생력을 이제는 정말로 믿기로 했던 것입니다.

나는 그날 기억 저편에 잠들어 있던 '둠벙'이라는 사투리를 다시 쓰기 시작했습니다. 물웅덩이는 온갖 수생식물들이 가득한 내 어렸을 때의 작은 못, 둠벙처럼 그렇게 변해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수초가 둠벙 주변에 생기기 시작하자 물색깔이 거무스름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 송성영
"햐, 녀석들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두 종류의 수생식물은 물속에서 춤추듯 흐물흐물 거리는 붕어말처럼 생긴 놈과 부레옥잠의 사촌쯤 돼 보이는 녀석들이었습니다.

나는 분명 이들 물풀들과 어떤 인연의 끈으로 묶여 있을 것이었습니다. 그렇지 않고 어떻게 난데없이 내 앞에 턱하니 나타났겠습니까? 어디 물풀들뿐이겠습니까? 둠벙가의 이름 없는 온갖 식물들을 비롯해 내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나와 연연 닿지 않은 것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들은 잡초 혹은 이쁜 꽃으로, 그 어떤 형태로든 나와 관련이 있습니다.

▲ 어디서 왔을까? 부레 옥잠을 닮은 수초에 꽃이 활짝 피었다.
ⓒ 송성영
어느날 부레 옥잠을 닮은 수생식물이 꽃을 활짝 피우며 내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마음의 눈을 뜨면 네 주변에는 언제나 소중한 인연들로 가득하다'

우리 집 주변에는 가족들만큼이나 늘 함께 하는 소중한 인연들이 참 많습니다. 머리위의 새들에서부터 발아래 풀 한 포기, 하물며 돌멩이에 이르기까지 눈에 보이는 모두가 소중한 인연들입니다.

내가 애정의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본다면 그들 역시 꽃처럼 활짝 웃는 모습으로 내 앞으로 다가 올 것이었습니다. 내 마음이 뒤틀리고 닫혀 있다면 그들은 더 이상 내 앞에서 꽃을 피우지 않을 것입니다. 애초에 생명을 키우는 둠벙조차 생겨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나는 틈만 나면 둠벙으로 달려갑니다. 물풀들이 점차 늘어나자 속이 훤히 보일 정도로 둠벙은 맑아져 갔습니다.

▲ 수초 가득한 둠벙에 물 색깔이 수시로 변하더니 요즘은 물속이 훤히 보일 정도로 맑아졌다.
ⓒ 송성영
둠벙 앞에 쪼그려 앉아 둠벙을 바라보고 있노라며 무거운 나는 물속으로 가라앉고 '나'는 물그림자로 남아 한없이 가벼워 집니다. 그렇게 물풀들은 둠벙을 정화 시키고 둠벙은 나를 정화 시키고 있었습니다. 볕 좋은 가을날, 거울처럼 맑은 둠벙에는 아이들과 고양이, 그리고 산과 하늘도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수생식물에 관해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분의 도움 요청합니다. 둠벙이 생성되는 과정을 영상으로 기록하는 데 귀중한 말씀을 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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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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