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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그 사회의 내면을 담고 있다. 말은 말하는 이의 의식과 생각을 담고 있고 그것이 사회적 약속으로 굳어져 있기 때문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매춘'이라는 말은 일상적으로 통용된 단어였다.

하지만 지금은 '성매매'가 더 정확하고 인권적인 표현이다. 그리고 얼마전까지 성경조차도 '소경', '벙어리', '앉은뱅이' 등 장애인을 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장애인들의 문제제기가 있기 전까지 어느 누구도 그것을 거슬려 하지 않았다. 말에 담긴 차별은 그만큼 우리의 삶 깊숙이 뿌리박고 있다.

잘 모르는 사람을 만날 때 상대방을 부르는 호칭을 두고 애매할 때가 많다. 일반적으로 남성은 '사장님', 여성은 '사모님'이라고 부르지만 이 또한 적절한 호칭이라고 할 수는 없다. 식당에 가서도 마찬가지다. 종업원이 여성일 경우 '아가씨', '아줌마'가 일상적으로 쓰인다. 하지만 남성일 경우 '아저씨'라는 말보다는 '사장님' 혹은 '여기요' 혹은 '저기요'라는 말이 쓰인다. '여기요' 혹은 '저기요'는 호칭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상대를 부르는 말로 쓰이고 있다.

대한민국처럼 직업 혹은 직급에 따른 호칭이 널리 쓰이는 사회도 드물다. 가깝게는 '통장님' '반장님'이 있고, '○○조기축구회 회장님' '××부녀회 회장님'도 그렇다. '변호사' '박사' '의원' 등은 직업이 호칭으로 불리는 경우다.

그러나 직업의 사회적 영향력이 적거나 직급의 지위가 낮으면 상황은 달라진다. 아파트 경비원들은 대부분 그냥 '수위 아저씨'다. '청소부'가 '환경미화원'으로 바뀌었다고 해서 '김○○미화원님'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대부분 그냥 '김씨'다. 그들에게 호칭은 있어도, 호의는 없다.

'청소부'가 '미화원'으로 바뀌고 '간호원'이 '간호사'로 바뀐 배경에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직업 차별의식과 계급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여기서 호칭은 단순히 그 사람의 직업을 나타내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것은 사회적 신분과 계급을 나타내는 말이다.

영어권에서의 일상적인 호칭은 상대방의 이름이며, 격식을 차리자면 'Mr.' 혹은 'Mrs.'이다. 직업을 부르는 경우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호칭을 세 차례나 바꾸어 불렀다. 집권 초기에는 '폭군', '피그미', '국민을 굶기는 사람'으로 불러오다가 지난 5월에는 'Mr.(선생)'로 불렀다. 그리고 7월에 있었던 6자회담에서 미국 대표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는 '체어맨 김정일(김정일 위원장)'로 불렀다.

미국이 'Mr.'라는 호칭을 썼을 때 북측은 "우리는 최고 수뇌부를 '선생(Mr.)'으로 존칭한 데 대해 유의한다"며 긍정적으로 답했다. 북-미 간 갈등이 단순한 호칭 문제에서부터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것이다. 이처럼 호칭은 국제 정치의 흐름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전의 하나다.

비단 위의 사례말고도 호칭으로 인해 일어나는 일상적인 일들은 다반사다. 얼마 전 일선 학교의 행정·기능직 공무원들의 호칭을 두고 교원과 직원 간의 갈등이 심화된 일이 있었다. 학교 등 교육기관 내에서 사무보조원, 운전기사, 시설관리 등을 담당하고 있는 직원들은 2002년부터 꾸준히 호칭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 왔다.

이들은 "선생님과 함께 근무하는 기능직 공무원들을 '아저씨', '○양' 등으로 불러 학생들까지 이들을 아저씨라고 부른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전국교육기관기능직공무원노동조합은 교사와 같이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써달라는 건의를 해왔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지난 6월 10일 "교육기관장은 기능직 공무원에 대해 직원 상호간 신뢰하고 인격이 존중될 수 있는 호칭을 사용해 달라"는 공문을 배포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일부 교사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기능직 공무원에 대해 일괄적으로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은 교사의 권위를 실추시킨다는 게 그 이유다.

호칭 문제를 둘러싸고 인터넷에서도 한 차례 뜨거운 논쟁이 있었다.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가 '아가씨'라고 부르지 못하는 세태에 대해 쓴 글을 여성잡지에서 반박하면서 증폭됐다.

지난 5월 18일 <오마이뉴스>에는 "아가씨를 아가씨라 부르지 못하고"라는 글이 올라왔다. 기자는 식당에서 종업원을 '아가씨'라고 불렀다가 일어난 소란에 대해 소개했다. 그리고 '아가씨'가 결혼하기 전의 여성을 일컫는 말이며, 우리 사회가 '아가씨'라는 단어의 의미를 왜곡해서 받아들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아가씨 호칭 바로잡기 운동"을 벌여나가야겠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여성주의 저널 <일다>의 성진 기자는 '아가씨'나 '아줌마'라는 호칭에는 남성사회 가부장제의 시선이 투영되어 있다고 비판했다. 성 기자는 여성을 부르는 호칭에서는 여성의 공적 역할이 폄훼되거나 남성의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여성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을 의도적으로 폄훼하거나 은폐, 왜곡하는 호칭의 사용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가 불러온 폐단 중 하나라는 주장이다.

사회적·성적 약자에 대한 차별적인 호칭은 관공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관공서의 경우 5급 이상은 사무관, 서기관 등 직위에 따라 호칭하고 있으나 6급 이하는 호칭이 없다. 대개는 "홍길동 씨"가 호칭이다.

중앙인사위는 지난해 11월 호칭이 마땅치 않았던 6급 이하 직원들에 대해 '실무관' 또는 '전문관' 등의 호칭을 부여할 것을 각 정부부처에 권고했다. 가장 먼저 보건복지부가 '실무공무원 대외직명제 운영지침'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지난 3월에 마련된 운영지침은 적절한 직위명을 부여함으로써 행정의 전문화를 유도한다는 것이 그 취지다. 또 특성에 맞는 대외직명으로 해당 공무원의 사기와 자긍심을 심어주겠다고 밝혔다. 불평등하고 공적이지 못했던 호칭의 변화는 공직사회에 새로운 활력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단순한 호칭의 변화만으로 공직사회의 문화를 얼마나 바꿀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지난 2월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서울에서 여성공무원은 ○○○ 씨로 불리고, 대구·강원·전북에선 ○○○씨, ○○○여사로 불린다. '주사'라는 호칭을 함께 쓰는 지자체는 울산과 전남 등 6개 시·도다.

이는 여성을 공적 네트워크의 구성원이 아닌 사적 개인의 관계로 왜곡하고 있는 현상이다. 그러다 보니 사적이고 친밀한 관계에서나 있을법한 무례한 요구를 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나아가 성희롱이나 성차별의 발원지가 되는 경우도 있다.

또 일용직이나 임시직 직원은 대부분 ○○○ 씨로 불리고 있다. 호칭에 대한 차별은 사회적 약자를 공적인 관계망에서 배제하는 것에 있다. 호칭 문제에 따른 차별이라고 지적되는 문제에 대해 국가인권위는 출범 직후부터 직급이 있는 사람은 직급을 부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선생님'으로 통일해 부르고 있다.

호칭이 직장 문화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되면서 민간기업에서는 호칭 문제에 대해 파격적인 대안을 마련해 실시하고 있다. CJ의 경우 2000년부터 모든 직책에 상관없이 '○○○님'으로 부르도록 하고 있다. 이를 통해 평등한 직장 문화를 만들고 원활한 의사소통과 자유로운 의견 개진이 더욱 활발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곧바로 업무 효율성으로 이어져 기업의 발전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 특히 연공서열이 파괴되고 성과위주의 진급이 활성화되면서 이러한 흐름은 더욱 빠르게 퍼지고 있다.

▲ 간디학교 아이들
ⓒ 인권위 김윤섭
호칭은 관계의 속성을 규정짓는다는 데서 호칭 파괴 바람도 분다. 대안교육을 하고 있는 간디학교의 학생들은 교사들을 '쌤'이라고 부른다. '선생님'을 줄인 약자다. 양희창 교장도 '양쌤'이다. 부르기 편하다는 이유 외에도 '쌤'이라는 말에는 각별한 의미가 담겨 있다. 교사와 학생이라는 수직적 관계를 호칭으로 완화해서 학생들이 마음을 열고 교사와 만나는 장을 마련하자는 것이 호칭 파괴의 목적이다.

▲ 공동육아 어린이들
ⓒ 안양공동육아협동조합
안양공동육아협동조합은 취학전 아동들과 교사들이 별칭과 반말로 소통한다. 교사들은 각각 '아싸' '단풍' '참좋아' '사과' 등의 별칭으로 불린다. 한 달에 한 번꼴로 부모들이 와서 교사 노릇을 할 때도 부모들에게는 각각 별칭이 주어지며 아이들과 스스럼없이 반말이 오간다.

"눈높이를 맞추는 거죠. 별칭을 사용함으로써 교사와 친해지고 놀이친구가 되는 겁니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은 교사에게 친구에게만 하는 비밀이야기도 곧잘 합니다."

아이들에게 '아싸'로 불리는 김은주씨는 상대방을 존중하는 바탕은 말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여성 공동체 '줌마네'는 20~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여성이 참여하고 있다. 이곳에서도 각각을 부르는 호칭은 이름이 아니라 별칭이다. '노을이' '오소리' '예측불허' '마짱' '레드핫' 등 다양하고 개성 있는 별칭이 서로 부르는 호칭이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뒤에 '언니'를 따로 붙이지도 않는다. 그냥 '오소리'이다.

"이름에는 과거의 흔적이 남아 있어요. 별칭은 새롭게 태어남을 의미하죠. 그러려면 과거가 있는 이름은 부담스럽죠. 굳이 '언니'를 따로 붙이지 않는 것은 우리 사회가 '언니답게'를 강조하기 때문이에요.'언니'라고 불리는 순간 언니라고 불리는 사람은 자신을 언니라고 부르는 이에게 항상 언니다워야 하는 거죠."

줌마네 부대표 로리주희씨가 얘기하는 별칭의 취지다. 즉 별칭은 서로 배울 수 있는 대등하고 평등한 관계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별칭은 모임을 진행하는 데 있어 윤활유 구실을 한다. 별칭을 통해 상호 평등한 관계를 모색하고 단체가 지향하는 평등한 사회를 향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이 더 재미있고 대등하며 자유롭게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2년 전 작고한 이오덕 옹은 자신보다 수십년 연배가 어린 사람에게도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고 한다. 배움은 나이가 아니라 삶의 자세라는 것을 몸소 보여 준 사례다.

우리 사회의 호칭은 소통의 문화에서 매우 작은 부분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표현의 방식이 담고 있는 의미는 앞에서 살펴본 다양한 사례처럼 심오하다. 진심을 담을 수 있는 말, 상대를 배려하는 말도 인권 실현의 시작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간하는 월간 <인권>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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