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수요일, 직장에서 퇴근준비를 하고 있는데 작은형님께서 전화를 하셨습니다.

"막내야, 퇴근하면 바로 우리 집으로 오너라!"

제가 사는 창원과 형님이 계신 마산은 이웃해 있어서 30분이면 오고 갈 수 있습니다. 형님집 앞에 차를 세우는데, 작은형님도 막 주차를 마쳤습니다. 형님은 차에서 보퉁이에 싼 것들을 우리 가족 몫이라며 챙겨 줍니다. 집에 와서 보니 콩과 깨, 풋고추를 비롯한 각종 채소가 여러 봉지에 담겨져 있습니다. 엄니는 아마 여러 형제들의 몫으로 고루 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늙은 누렁이 호박이 무려 세 덩이나 있습니다. 그 중에 한 덩이를 가지고 오랜만에 호박죽을 끓여서 맛보려고 합니다. 나는 한식조리사 자격증이 있는 아내에게 '호박죽을 끓여 달라'고 부탁을 하는데, 아내는 난감해 하며 '호박죽은 끓일 줄 모른다'고 합니다. 나는 끝내 전화기를 들고 엄니를 찾습니다.

이제 엄니의 지도에 따라 호박죽 초보자인 나와 아내는 호박죽을 끓여보려고 합니다. 자! 초보자인 여러분도 호박죽이 드시고 싶으면 같이 만들어 봅시다. 우선 늙은 호박 반 개, 강낭콩 조금, 약간의 쌀가루(찹쌀가루와 쌀가루를 섞은 것, 이하 쌀가루라 함)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큰 냄비와 체도 있어야 합니다.

▲ 호박 껍질 벗기기
ⓒ 한성수
먼저 호박 껍질을 벗겨야 하는데, 숟가락의 넓은 부분을 거꾸로 잡고 아래쪽으로 힘을 가하면 생각보다 쉽게 벗겨집니다. 호박껍질이 사방으로 튀므로 미리 신문지를 깔아 두는 것이 좋습니다. 호박껍질을 모두 벗기고 나면 늙은 호박은 파르스름한 젊음을 다시 찾은 듯 싱그럽습니다.

▲ 껍질을 벗겨 회춘한 늙은 호박
ⓒ 한성수
▲ 호박을 반으로 자른 모양
ⓒ 한성수
이제 호박은 작은 토막을 내어 큰 냄비에 삶아야 합니다.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푹 삶습니다. 다 삶겼는지를 알려면 젓가락으로 찔러보아 쉽게 쑥 들어가면 다시 주걱으로 약간 으깨어 보십시오. 쉽게 으깨어지는가요? 삶은 호박냄새의 구수한 냄새가 코끝을 간질이는 것을 보니 이제 다 삶겨진 것 같군요.

▲ 속을 제거하고 냄비에 안친다
ⓒ 한성수
▲ 호박을 조각내어 푹 물러질 때까지 삶는다
ⓒ 한성수
호박을 삶는 중간에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강낭콩을 설탕에 졸이는 일입니다. 강낭콩에 물과 설탕을 넣고 약한 불에 졸이면 됩니다. 어때요, 이것은 쉽지요?

▲ 설탕물에 졸여놓은 강낭콩
ⓒ 한성수
이제 삶은 호박조각을 꺼내어 체에다 내려야 합니다. 체에 담아서 주걱으로 으깨면 걸쭉한 노란 액체가 담깁니다. 그 노란 색깔만으로 눈이 즐겁습니다. 음식은 '세 가지 감각으로 맛을 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먼저 후각이고 그 다음이 시각이며 마지막이 미각입니다.

▲ 삶은 호박을 체에 내린다
ⓒ 한성수
이제 거의 다 되었습니다. 호박 삶은 물에 체에 내린 호박 액을 넣어서 다시 불에다 올립니다. 중불에 서서히 끓이십시오.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들리지요? 이제 쌀가루를 넣을 차례입니다. 그냥 넣으면 덩어리가 지니까 체에 내리십시오. 그 후에는 계속 주걱으로 저어야 합니다. 이때 죽이 끓으면서 손에 튈 우려가 있으니 고무장갑을 착용하십시오.

▲ 물을 넣고 끓이다가 쌀가루를 넣고 주걱으로 젓는다
ⓒ 한성수
걸쭉한 것을 보니 거의 다 되어 가는군요. 가장 중요한 간을 맞출 시간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취향에 따라 설탕이나 소금을 넣으셔야 하는데, 여기서 주의할 점! 주걱으로 저으면서 조금씩 넣으면서 맛을 보십시오. 처음부터 많이 넣어 짜거나 달면 오늘의 요리는 '땡'입니다. 간이 딱 맞다구요?

네! 좋습니다. 이제 그릇에 담아내시면 됩니다. 아! 호박죽 위에는 아까 설탕에 졸인 강낭콩을 서너 개 올려놓아 보십시오. 한결 맛깔스러워 보이시죠?

▲ 완성된 호박죽
ⓒ 한성수
벌써 숟가락으로 떠서 드시려고 하는데, 잠깐만요. 구수한 호박죽의 향기를 음미하십시오. 저는 그 향에 엄니의 향기가 묻어났습니다. 다음은 호박죽의 아름다움을 감상하십시오. 뭐, 아름답기까지야 하겠습니까? 마지막으로 숟가락에 조금만 떠서 혀끝에 대어 보십시오. 달콤한 맛이 착 감겨들지요. 이때 김치를 곁들이시면 더욱 좋습니다.

역시 저희들이 여러분을 실망시켜 드리지는 않았지요. 오늘, 재미있고 유쾌했습니다. 요리강사는 아니지만 다음에는 더 좋은 요리로 찾아뵙겠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 주변에 있는 소시민의 세상사는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싶어서 가입을 원합니다. 또 가족간의 아프고 시리고 따뜻한 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글공부를 정식으로 하지 않아 가능할 지 모르겠으나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