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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9월 중순부터 제 생활이 예전보다 많이 바빠졌습니다. 그 이유는 그동안 하고 있던 일에다 한 가지 일을 더 보태게 된 까닭입니다. 그래서 추석에 시댁을 다녀 온 이후로 1개월이 넘도록 아버님을 찾아 뵙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몇 번의 전화 통화로 이 며느리가 갑자기 바빠진 이유를 말씀 드렸습니다. 그리고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찾아뵙고 말씀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때마다 아버님께서는 언제나처럼 편안하게 "오냐, 그렇게 해라" 하십니다.

시댁 앞에 펼쳐진 넓다란 논도 추수를 해야 할 때가 되어 남편이 아버님께 전화를 드렸을 때, 아버님은 이미 며칠 전에 추수를 다 마쳤다고 하셨습니다. 깜짝 놀란 남편이 죄송하고 미안스러운 마음에 "아버지, 저희들에게 미리 말씀을 하시지 왜 그렇게 서둘러서 추수를 하셨습니까?" 하고 아버님께 여쭈었더니, "너희들이 항상 바쁘게 살고 있으니 일요일이라도 쉬어야 할 것 같아서 그랬다" 하십니다. 그 순간, 자식들에 대한 아버님의 배려가 죄송스럽기 그지없어서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지난 토요일이었습니다. 어둠이 내리는 저녁시간에 집에 들어 간 저는 중학교 1학년인 아들아이에게 "승완아~ 할아버지께 전화 좀 해 봐라" 했습니다. 잠시 후 거실에서 아들아이가 아버님과 통화하는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할아버지~ 저 승완이에요. 저녁은 드셨어요? 저희는 이제 먹으려고 하고 있어요. 아프신 데는 없어요?"

한참을 아버님과 이야기하던 아들아이는 "할아버지, 엄마 바꿔 드릴게요" 하고 전화기를 저에게 건네줍니다.

"아버님, 저녁 진지는 드셨어요?"
"오냐, 지금 먹고 있다."
"요즘 저희들이 많이 바빠서 오랫동안 찾아 뵙지 못해서 죄송해요."
"그래 바빠서 그러는 것을 어쩌겠냐. 나는 괘않타."

당신은 어찌 되었거나 항상 괜찮다고 하시는 아버님. 그렇게 말씀하시는 아버님께 자꾸만 죄송한 마음이 들던 저는 저도 모르게 이렇게 괜한 투정을 부렸습니다.

"아버님, 아버님은 저희들이 보고 싶지 않으세요?"

그런 말도 안 되는 저의 이야기에 아버님은 대번에 "왜 안 보고 싶겠냐. 나도 너희들이 많이 보고싶다. 하지만 바빠서 못 오는 너희들에게 자꾸 보고싶다고 할 수도 없지 않느냐" 하십니다.

"아버님, 이번 토요일에는 저희들이 꼭 찾아 뵐게요."
"그래 시간이 되겄냐? 시간이 있으면 오고…."

지난 주말 5일(토) 오후 저는 두 아이들과 함께 아버님을 뵈러 시댁에 갔습니다. 저희들이 도착했을 때, 아버님은 오토바이를 타고 함안 시내에 손님을 마중하러 가셔서 집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잠시 후, 앞마당에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고 아버님께서 도착하신 기척이 났습니다. 부엌에 있던 저는 달려나가 현관문을 열면서 아버님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아버님, 아버님께서 저희들이 보고싶다고 하셔서 저희들 왔어요."
"그래 며느리 왔나. 올 여개가 있더나."

아버님께서 활짝 웃으시는 얼굴로 반가워 하십니다. 잠시 후 안방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거실로 나와 인사를 하는 은빈이를 보시더니, "은빈이가 그동안 많이 컸구나, 엄마보다 키가 훨씬 더 크네. 어디 승완이 좀 보자. 승완이는 할배하고 키가 똑같아 졌네" 하십니다.

할아버지와 손자는 만나자마자 와락 서로를 보듬고 어찌나 진하게 만남의 인사를 나누던지요. 두 사람의 애정행각은 옆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주기에 모두들 커다랗게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온 가족이 거실에 모여 앉아 맛난 저녁식사를 마쳤습니다. 모처럼 할아버지와 손자가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기념사진을 찍자고 했습니다. 손자는 버릇없게도 할아버지의 어깨에 손을 두르며 어깨동무를 합니다.

나이도 어린 손자가 버릇없이 그러면 안 된다는 지적에 할아버지께서 손자의 어깨에 팔을 둘렀습니다. 추석 이후 50여일만에 감동의 상봉을 한 손자와 할아버지의 기념사진은 그렇게 촬영되었습니다.

▲ 할아버지와 손자. 오랜만에 만난 기념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 한명라
시댁의 거실 벽에 걸려 있는 많은 가족사진들 속에는 12년 전에 촬영한 아버님의 진갑기념 사진도 있습니다. 그 사진 속에는 2년 전, 돌아가신 어머님도 한결같이 변함없는 모습으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어머님은 살아 생전에도 아버님과 아들아이가 보여주는 사이좋은 모습을 바라보면서 항상 흐뭇하게 웃으시며 대견해 하셨습니다. 어머님께서 살아 계셨더라면, 호들갑스러울 정도로 요란했던 두 사람의 만남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음을 지으시고 평소처럼 흐뭇해 하셨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두 사람의 애정행각을 돌아가신 할머니께서도 빙그레 웃으시며 바라보고 계십니다.
ⓒ 한명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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