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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쉽게 만나고 소비하는 것들일수록 그것의 원재료가 무언지, 어떤 과정을 거쳐 완제품이 되는지에 관해서는 무심히 넘어가는 경우가 흔하다. 반면 공정에 대한 궁금증을 가진 이들도 적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하는 친숙한 기호품의 탄생에서 소멸까지를 직접 제품의 입장이 되어 1인칭 화법으로 서술해보았다. 기획 첫 번째 기사로 담배의 일생을 추적했다. <편집자주>
한국에서 생산되는 각종 담배들.
한국에서 생산되는 각종 담배들. ⓒ KT&G 제공
솔, 88라이트, 에쎄, 한라산, 리치, 타임, 레종, 장미, 라일락, 클라우드나인, 도라지, 심플, 하나로...

때론 스트레스를 해소시키고, 긴장감을 완하시켜준다 하여 칭찬도 받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폐암과 기관지계통 질병을 유발시키고, 좋지 못한 냄새를 유발한다는 이유로 나를 괄시하고 천대함.

그렇다 맞다. 모두가 예상했다시피 나는 담배다. 이름을 특정하자면 디스. 방금 밤새 반짝이는 컴퓨터 화면 커서 앞에서 한 줄의 시어를 뽑아내기 위해 노심초사하던 45세 시인 L이 불 붙여 나를 피움으로써 그 생명을 다했다. 구겨진 채 재떨이 속에 있다보니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내 인생 4년 남짓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자, 그럼 내 고향 이야기부터 들어볼 텐가?

0.7mm의 씨앗이 150일만에 2m가 넘는 거인으로

경상북도 안동에서 3남1녀를 둔 농부 김씨가 황색종(Bright or Virginia) 씨앗 상태의 나를 묘판에 심었다. 그러니, 김씨는 고집불통 고2 막내의 아버지인 동시에 내 아버지이기도 하다. 씨앗 상태의 나는 몹시도 작았다.

길이 0.7mm에 폭 0.5mm, 1만개를 합쳐봤자 겨우 그 무게가 1그램에 불과했다. 이런 조그만 내 씨앗에 빗대 경상도 일부 지역에선 '모시야 적삼 속에 반쯤 나온/연적 같은 저 젖 보소/많이 보면 병 납네다/담배씨 만큼만 보고 가소'란 민요를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내 성장속도는 엄청나서 파종 후 150일이 지나자 키가 2미터를 넘어섰다.

잎담배를 경작하는 농민.
잎담배를 경작하는 농민. ⓒ KT&G 제공
자라는 내 키에 비례해 김씨의 꿈도 커졌다. 25년째 잎담배 농사를 짓는 그는 나와 내 형제들을 팔아 아들 둘을 대학까지 공부시켰다. 김씨의 가장 큰 바람은 막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잎담배 완전수매제도'가 없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참, 나 외에도 몇 가지의 품종이 더 있는데 향미가 뛰어나다고 평가되는 버어리종(Burley)은 호남지역에서 자라고, 니코틴이 적게 함유된 오리엔트종(Orient Leaf)은 주로 비가 적고, 일조량이 많은 터키와 그리스 등지에서 재배된다고 한다.

어쨌건, 4월 초순 묘판에서 땅으로 옮겨 심어진 나는 여름 햇볕이 한창 따가웠던 8월 초순에 수확됐다. 김씨는 오랜 경험을 통해 잎 끝이 갈색으로 물들기 시작할 때가 수확의 적기임을 알고 있다. 김씨와 그의 친구인 농부들에 의해 거둬들여진 나는 곧장 건조장으로 향했다. 거기서 적당한 온도와 습도 아래 알맞게 말려진 나는 30kg 단위로 포장돼 10월부터 시작될 수매를 기다렸다.

건조를 거쳐 수매를 기다리는 잎담배.
건조를 거쳐 수매를 기다리는 잎담배. ⓒ KT&G 제공

잎담배를 수매하는 모습.
잎담배를 수매하는 모습. ⓒ KT&G 제공
수매를 위해 파견된 KT&G 직원들은 시각과 촉각에 후각, 청각, 미각 등을 모두 동원한 '오감 감정법'으로 나를 평가했다. 가슴 떨리는 순간도 잠시 나는 당당히 1등급으로 결정됐다. 김씨가 여름 내내 땀흘린 결과다. 2, 3, 4등급과 등외로 판정된 친구들의 얼굴이 슬퍼 보였다. 하지만, 그들의 슬픔과는 관계없이 트럭을 타고 경북 김천에 있는 (담배)원료공장으로 가는 내 입에선 절로 휘파람이 나왔다.

인류 최초의 흡연자는 아메리카 인디언...한국엔 1600년대 초반에 들어와

여기서 잠깐. 나를 가장 먼저 피운 나라는 어디이고, 그 시기는 언제인지 궁금해할 사람이 많은 것 같다.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을 때 그곳 토착 인디언들이 나를 피우고 있었다고 한다. 이후 나는 뱃사람들에 의해 유럽으로 수입됐고, 아시아 땅(필리핀)에는 1571년 처음으로 발을 내딛었다. 한국에 들어온 것은 1600년대 초반인데 일본을 거쳐 들어왔다.

한국에 들어온 초기에는 나에 대한 대접이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융숭했다. 의약품이 부족한 탓에 기생충으로 인한 복통과 치통, 곤충에 물렸을 때 화농방지제 등으로 나를 사용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내 할아버지들은 존중받고, 아낌 받으며 참으로 좋은 시절을 살다 가셨다.

옆길로 샌 이야기가 길어졌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원료공장에 도착한 나는 2차례에 걸친 가습 과정과 이물질 선별 과정, 잎과 줄기를 분리하는 제맥분리 과정, 여기에 재건조 과정까지를 거쳤다. 이는 내게 남아있는 악취와 자극성을 없애고, 부드러운 풍미를 가지게 하기 위한 일련의 단계였다.

10갑 단위로 포장된 담배가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다음 공정으로 이동하고 있다.
10갑 단위로 포장된 담배가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다음 공정으로 이동하고 있다. ⓒ KT&G 제공
이 모든 과정을 거쳐 운반하기 편하게 압착포장된 나는 20개월 동안의 숙성과정을 거쳤다. 일반의 상식에선 포도주와 된장 등이 대표적인 발효식품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나 역시 2년 가까운 숙성기간을 거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세상 모든 상품이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는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경북 영주의 담배제조창. 한국에는 대전광역시 대덕구 신탄진과 강원도 원주, 광주광역시와 경북 영주 4곳에 제조창이 있는데 난 원료공장과 가까운 영주로 가게된 것이다.

여기에서 다시 살균 및 살충을 위한 가습단계와 고유의 향을 증가시키는 가향단계, 원료에 함유된 휘발성 성분을 제거하는 토스트(toast)단계, 잎을 표준규격(0.8~0.9mm)으로 써는 절각단계, 각초(표준규격으로 썬 담뱃잎)의 이화학성을 고정시키기 위한 냉각단계, 각초를 부풀리는 팽화단계까지 거쳤다. 마침내 담배가 되기 위한 모든 과정을 마친 것이다.

길이와 둘레, 원료 따라 수백 가지로 나뉘는 필터...궐련지의 원료는 삼(麻)

나와 별개로 생각할 수 없는 필터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필터를 접착한 담배는 1940년에 미국에서 최초로 발매됐다. 필터의 원료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섬유다발을 봉 모양으로 감은 아세테이트 필터, 펄프를 단섬유 모양으로 가공한 네오 필터, 야자열매를 탄화시킨 입자모양의 활성탄을 내부에 삽입한 탄소 필터가 그것이다.

필터의 길이는 12mm가 최소이며 15, 17, 20, 25mm를 주로 사용한다. 둘레는 22.524mm와 25mm 두 종류가 있다. 한국에는 필터를 생산하는 회사가 4곳이 있는데 원료와 길이, 둘레를 각각 달리하는 수백 종의 필터를 KT&G에 납품한다. 각초의 겉에 말려있는 궐련지(말음종이)도 나와 절친한 친구랄 수 있는데 원료는 삼과 펄프다. 고급품에는 삼만을 쓰고, 중급 이하 제품에는 삼과 펄프를 혼합한 걸 쓴다.

2500원짜리 에쎄 담배 한 갑에는 1542원50전의 세금이 포함돼 있다.
2500원짜리 에쎄 담배 한 갑에는 1542원50전의 세금이 포함돼 있다. ⓒ KT&G 제공
마지막 단계를 말하기 전에 담배에 대해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걸 두어 가지 더 이야기해줄까 한다. 내 동료인 2500원 짜리 에쎄 한 갑에 붙는 세금은 얼마일까? 놀라지 마시라. 소비세와 지방교육세, 국민건강증진기금과 폐기물부담금, 여기에 부가세를 포함해 자그마치 1542원50전이다.

하루 에쎄 한 값을 피우는 사람은 비흡연자에 비해 1년에 약 57만원의 세금을 더 내고 있는 셈이다. 두 사람이 알뜰하게 제주도 2박3일 여행을 다녀올 수 있는 돈. 이를 볼 때 담배를 피우는 이들은 자신들이 낸 세금이 흡연자를 위한 의료시설 확충 등에 제대로 사용되고 있는지 철저히 감시할 권리가 있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의 흡연인구는 얼마나 될까? 보건복지부와 KT&G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한국 성인남성의 51%, 여성의 6%가 흡연자다. 전체적으로 통계를 내면 한국 사람 29%, 즉 3분의1 가량이 나를 피운다는 이야기. 요 몇 년 새 범국민적 캠페인으로 전개된 금연운동 탓에 흡연자가 많이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상당수의 사람들이 나를 즐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나는 둘레에 따라 초슬림형과 슬림형, 일반형으로 분류되는데 초슬림은 둘레가 17mm 이하인 제품으로 에쎄가 여기에 해당된다. 슬림형은 둘레 24mm 이하의 제품인데 심플과 리치가 대표적이다. 일반형은 둘레가 24mm를 초과하는 것들. 나 디스와 레종, 로크럭스 등이 이에 해당된다.

내가 만들어지기까지 고생한 사람들 생각해서라도 미워만 하지는 말길

자, 이제 나머지 본론을 이어가자. 각초의 형태를 갖춘 나는 마지막 공정인 궐련제조 단계를 거쳤다. 내 친구들 중 일부는 필터가 없는 막궐련으로 또 다른 일부는 필터담배가 됐다.

이어진 포장 단계. 20개비로 모아진 나와 친구들은 알루미늄박지와 갑포장지 옷을 입고, 다시 10갑 단위(보루)로 정리돼 인쇄편광지 옷을 겹쳐 입었다. 맨 나중에 껴입은 옷은 50보루로 뭉쳐져 입은 종이상자. 이 모든 과정은 자동화시스템으로 진행됐다.

종이상자에 포장된 담배를 기중기가 운반하고 있다.
종이상자에 포장된 담배를 기중기가 운반하고 있다. ⓒ KT&G 제공
비로소 완전한 형태를 갖춘 나는 동네 어귀 구멍가게로 배송됐고, 앞서 이야기한 L 시인이 소주, 라면과 더불어 나를 구입한 것이다. 지금은 비록 곧 쓰레기통에 버려질 꽁초의 모습이지만, 언어의 가시밭길에서 정신의 피를 흘린 시인에게 잠시잠깐이나마 영감을 줄 수 있었으니 짧았던 내 생이 전혀 가치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자위해본다.

한국의 담배시장 규모는 10조원이 넘는다. 나를 경작하는 사람들이 2만5천여명, 나를 판매하는 소매상이 16만여명, 필터와 궐련지 등을 만드는 사람들과 나의 생산과 유통을 총괄하는 KT&G의 직원들이 5천여명이니 업계종사자도 19만명에 이른다.

2008년이 되면 잎담배 완전수매제도가 사라진다. KT&G는 향후 경제적 어려움에 처할 잎담배 생산농가를 위해 담배 한 갑 당 15원을 모아 '잎담배 생산 안정화기금'을 조성하고 있다. 목표액은 4100억원. 풍족하진 않겠지만, 농민들의 수고를 헛되지 않게 하겠다는 성의가 느껴진다. 나로서는 고마운 일이다.

요즘 나의 최대 고민은 급등하는 내 몸값이다. 올해 상반기에도 정부에서는 내 몸값을 500원이나 올렸고, 조만간 또 올린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렇듯 본의아니게 내 몸값이 올라가는 탓에 나와 오랫동안 연을 맺었던 사람들이 하나둘 등을 돌리기도 해 섭섭하다.

이제 내 이야기는 끝났다. 주절주절 털어놓은 넋두리를 통해 나를 만들기 위해 수고와 고생을 아끼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그들을 생각해서라도 나를 '만가지 병의 근원' '이 땅에서 추방해야 할 흉물'로만 홀대하지 말아줬으면 한다.

이제까지 가장 많이 팔린 담배는 뭘까?
최초의 박하담배는 '금관', 필터담배의 효시는 '아리랑'

▲ 194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생산된 각종 담배들.
ⓒKT&G 제공

수많은 종류가 명멸해온 담배시장. 그 속에서 꾸준한 인기를 누리며 최고의 판매량을 기록한 담배는 1980년 8월 출시된 '솔'이다. 2005년 5월 현재까지의 판매량은 171억7705만6천 갑. 실로 엄청난 숫자다. 2위는 '88라이트'인데 모두 171억7451만3천 갑이 팔렸다. 출시 시점이 솔보다 7년이 늦은 87년인 것을 감안하면 그 인기가 솔을 뛰어넘는다.

그 뒤를 잇는 것은 디스(143억여 갑), 청자(78억여 갑), 거북선(58억여 갑), 새마을(57억여 갑), 풍년초(53억여 갑), 한라산(49억여 갑) 등. 순한 맛과 날씬한 모양으로 여성 흡연자들에게 인기가 있는 에쎄는 1996년 출시 이래 이때까지 48억2512만4천 갑이 팔렸다.

이어지는 담배에 관한 궁금증들. 우리나라 최초의 담배는 뭘까? 정답은 해방되던 해인 1945년 9월에 나온 '승리'다. 48년 정부수립을 기념하기 위해 생산된 담배는 '계명'. 가장 오래 장수한 담배는 군용 '화랑'이다. 49년 4월 첫 제작된 후 32년8개월의 긴 시간을 군인들에게 사랑 받았다. 최초의 필터담배는 '아리랑'(58년 1월 출시), 박하담배의 효시는 61년 출시된 '금관'이다.

탄소필터를 최초로 장착한 담배는 '은하수'. 72년 5월에 처음으로 선보였다. 88올림픽을 기념해 나온 담배가 '88라이트'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 93년 대전엑스포를 기념해 제작된 담배는 '엑스포 마일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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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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