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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9일 이란에서 두 청소년이 동성 섹스(gay sex)와 13세 소년에 대한 강간 혐의로 공개 처형 당하였다. 이들은 사형 전 14개월간 복역하며 228회의 채찍형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영국 런던의 동성애자 인권단체 'OutRage!'는 이들이 감금과 고문으로 허위 사실을 인정했을 가능성이 높은 데다 이란발 보도에서 13세 소년 강간 혐의에 대한 언급이 없는 점으로 미루어 이 역시 날조되었거나 소년의 자발적 의사에 의한 행위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지난 7월 21일 'PlanetOut'이 이란의 ISNA(Iranian Students News Agency)를 인용해 보도한 내용이다.

몇 달 전 이 기사를 접했을 때 그야말로 참혹한 심정이 되고 말았다. 함께 보도된 두 장의 사진들-수갑이 채워진 채 울고 있는 그들의 눈빛이라든가 아마도 울음을 참느라 단호하게 다물어진 입매 같은 것들-은 악몽처럼 머리 속에 각인되었다. 성 정체성을 이유로 목숨을 잃을 수 있는 현실을 어떻게 용납하고 이해할 수 있는가? 고문에 의한 허위 진술일 수도 있는데 '동성 섹스는 곧 사형'이라 규정하는 이슬람의 샤리아 율법(Sharia Law)은 항소의 기회도 주지 않는다.

이 소식이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면서 미성년자의 사형과 공개 처형과 성 정체성을 근거로 하는 형사 처벌 등에 관한 이야기들이 분노와 안타까움 속에 얼마간 이어졌다. 그 와중에 호모포비아적 발언이 튀어나오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런 새끼들은 죽어도 싸다'느니 '불경하고 지저분한 것들'이라느니 하는, 옮기기조차 주저스러운 말들. 그저 내뱉는 말이라기에는 지나치게 날카롭고 어두운 폭력의 언어들. "무릇 남의 발언과 행동은 비난할 수 있지만 남의 '존재'를 비난할 수는 없는 법"인데 그들은 그 정도를 깨우칠 만한 양식도 지성도 갖추지 못했고 그런 주제에 저렇게 험한 말만 골라 내뱉으며 제 폭력의 취향을 충족시킨다. 한 마디로 그들은 어리석고 무례하다.

이런 뻔한 폭력들과 마주하고 싶지 않아 나는 가끔 입을 다물고 싶어진다. 동성애를 혐오하거나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인종이나 국적, 나이와 학력이 차별의 이유일 수 없듯 성 정체성 역시 마찬가지라는 등의 당연한 말들을 반복하는 건 실은 오래 전부터 재미 없었다. 호모포비아들의 너무도 예측 가능한 반발과 조롱 담긴 욕설들이 내 지루함을 부추겼고 끝도 없이 반복되는 멍청한 질문(그러니까 정말 상대를 이해하고자 하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물음이 아니라 딴죽을 걸고 비아냥거리기 위해 던지는 질문들)의 행렬들은 나를 실소케 하였다. 그러니까 단어 하나만 바꾸면 족할 일이다.

당신은 언제 처음 이성애자임을 알았고 왜 이성애자가 되었는가? 어린 시절 동성에게 폭력과 추행을 당했거나 동성 부모에 대한 분노와 불만이 특별히 많아서 이성애자가 된 것은 아닌가? 당신이 이성애자임을 어떻게 확신하는가? 동성을 좋아하려고 노력해보지 않는 게 원인이지 않을까? 단지 마음에 드는 동성을 만나지 못했던 것은 아닌가? 시간이 지나면 동성이 좋아질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 사귀고 있는 이성친구는 그저 한 순간의 호기심이나 흥미에 의한 것은 아닌가? 당신, 이성애자이긴 한 건가?

이 질문들에 모두 답변해보라. 할 수 없다면 그 바보 같은 물음은 집어치우고, 모두 답변하였거든 그 물음들이 얼마나 무례하고 폭력적인가를 생각해보라. 그렇다 느끼면 역시 바보 같은 물음은 그만두면 될테고, 정 모르겠다면 그냥 외워라. 다른 사람의 존재를 두고 바보 같은 물음을 던질 권리 같은 건 애당초 어느 누구에게도 주어져 있지 않으므로.

다만 우리는 서로를 좀 더 이해하고 사랑할 권리와 의무만을 가지는데 이성애 중심의 사회에서 이성애에 관련된 텍스트는 넘쳐난다. 세상의 사랑하는 모든 이들은 이성애자라는 원칙이라도 있는지 영화, 드라마, 소설 할 것 없이 이성애자들의 이성애적 관계만 다룬다. 절실한 쪽은 이 굳건한 이성애 중심주의에 균열을 낼 전복적 텍스트다.

▲ <앰 아이 블루?>
ⓒ 낭기열라
미국의 청소년 문학 작가들이 동성애를 주제로 써낸 단편을 모은 <앰 아이 블루? Am I Blue? Coming Out From the Silence>(메리언 데인 바우어 외 12인 지음·조응주 옮김·낭기열라 펴냄)는 그런 점에서 꽤 괜찮은 텍스트다. <앰 아이 블루?>에 실린 13편의 글은 동성애라는 동일한 소재로 다양한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앰 아이 블루?'(브루스 코빌)는 동성애자라면 한번쯤 떠올려봤을 법한 상상-모든 동성애자들이 파란 빛깔로 변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에 관한 동화다. "게이들의 세 번째 판타지"가 전국적으로 실현되자 "공포에 질린 사람부터 이성을 잃은 채 현실을 부인하는 사람, 거리로 쏟아져 나와 춤을 추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반응도 천차만별이었다. 공영 라디오 방송국은 재빨리 전문가들을 불러모아 다음날 사람들이 출근하면 직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토론을 벌였다".

나에게도 요정(fairy) 대부가 나타나 소원을 들어준다면 어떤 걸 빌까 떠올려보는 사이 커밍아웃을 둘러싼 다양한 경험과 감정들-두려움과 혼란, 불안과 설레임-이 펼쳐진다. 남자친구의 커밍아웃으로 혼란스러워 하면서도 그를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위니와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며 "그냥 우리 사이가 조금 달라진 것뿐"이라고 말하는 의젓한 토미('위니와 토미', 프란체스카 리아 블록)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을 만큼 예쁘고, 자신에게 거리를 두려는 친구를 보며 "우리가 할 일은 힘과 용기와 참을성을 기르는 거"라고 중얼거리는 잭시나('조금씩 멀어지는', 재클린 우드슨)에게는 지지와 격려를, 당당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 캐런('학부모의 밤', 낸시 가든)에게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런가 하면 "레즈비언은 입도 걸고 무뚝뚝해 보이고 험상궂은 얼굴에 머리는 짧게 깎고 가죽 점퍼만 입는 줄 알았"다는 테리('달리기', 엘렌 하워드), 어느 월요일 본능처럼 "온몸에 퍼지는 불안한 열기"를 감지하는 데이비드('7월의 세 월요일', 제임스 크로스 기블린)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땅굴 속에서'(윌리엄 슬리터)의 베이와 '나'의 이야기는 역사 속 어느 곳에서나 동성애자들은 '존재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시킨다.

<앰 아이 블루?>는 성 소수자를 그리는 흔한 방식-선정적이거나 선동적이거나-을 사용하지 않는다. 따뜻한 시선으로 '평범한' 일상을 잔잔하게 담아낼 뿐이다. 그러면서 '단조로운' 일상의 결마다 스며들어 있는 치열함과 절박함을 모른 척 하지 않는다. 그것이 <앰 아이 블루?>의 장점이자 미덕이다.

출판사인 낭기열라는 책의 판매액 중 1%는 청소년 동성애자 인권학교에 기부할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 홈페이지에도 실렸습니다.


앰 아이 블루?

마리온 데인 바우어 외 12인 지음, 조응주 옮김, 낭기열라(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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