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의 죽음 모른 채 눈 감은 할머니
고 이경운군은 할머니 백씨가 뇌경색으로 쓰러져 병석에 누운 지 얼마 되지 않아 영국 캔터베리에서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됐으나 가족들은 이 사실을 투병중인 할머니에게 알리지 못했다. 영국 켄트 대학에 입학한 지 불과 닷새 만에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한 이군의 사인이 밝혀지지 않아 진실을 밝힌 후 알리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5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이경운군의 죽음은 의문사로 남아있다. 그리고 백씨는 손자의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한 채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경운군의 아버지이자 백씨의 장남인 이영호씨 또한 어머니의 임종은 물론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이미 영국 병원 측으로부터 수차례 이경운군 시신 강제매장 통보를 받은 바 있는 상태인데다 현재 이군의 2차 부검 논의가 진행 중이어서 영국을 떠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씨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2차 부검을 앞둔 지금, 내가 이 자리를 떠나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긴박한 상황"이라며 "어머님의 임종도 지켜드리지 못하고 장남으로써 상주역할도 못했다, 난 정말 불효자였다"고 침통해했다.
열일곱 살 아들을 자신의 어머니보다 먼저 떠나보내고, 누워계신 어머니께 문안 인사 한 번 못 드린 채 쓸쓸히 보내드린 불효자의 고백이었다.
백점석씨의 발인은 예정보다 하루 늦어진 14일에야 치러졌다. 아버지를 대신해 학업을 중단하고 급히 귀국한 고 이경운군의 동생 이경진(20)씨를 기다린 것이다. 이씨는 "글쎄요. 부모님과 같이 못 와서 안타깝죠"라는 말만 전했을 뿐, 다른 말을 아꼈다.
빈소에서 만난 고 이경운군의 고모 이영화씨는 "어머니는 경운이가 그렇게 된 것도 모르고 돌아가셨다"며 "이제 이 곳의 일(장례)이 마무리되고 있으니, 저 쪽 일(경운군 장례)도 해결되어야 하지 않겠냐"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제 경운이 장례도 해결되어야 하지 않겠나"
이영호씨는 "이 모든 것이 (경운군 죽음의) 진실이 밝혀짐으로써 보상될 수 있을 것"이라며 반드시 진실을 밝히겠다고 말한다.
'역과(타고 넘어감)' 교통사고로 숨진 것으로 발표(영국 경찰 주장)된 고 이경운군의 정확한 사인을 규명하기 위해 이영호씨를 비롯한 이군의 가족들은 생업을 포기한 상태다.
이군의 죽음에 대한 의혹은 곳곳에서 발견됐다. 병원 측은 이군이 사망한 지 10개월이 지나서야 아버지 이영호씨에게만 이군의 시신을 보여주었다. 이군의 어머니와 동생은 아직까지도 시신을 보지 못한 상태다. 또 경찰은 사고현장 도면조차 구성하지 못하는 등 의심스런 태도를 보여왔다. 유가족들은 영국 병원과 경찰 측의 이러한 태도에 의혹을 제기하며 장례를 거부, 진실을 밝히기 위한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관련기사 참조>
스페인으로 이주해 아내와 두 아들과 행복한 가정을 꾸려 나갔던 이영호씨는 온갖 물음표로 도배된 아들의 죽음으로, 번창하던 사업을 모두 접고 영국으로 건너와 아들의 사인규명에 투신했다.
그러나 낯선 땅에서 이들 가족을 돕는 사람은 없었다. 영국 병원과 경찰은커녕, 주영 한국대사관 측조차 "당장 시신을 인수해서 영국을 떠나라"고 협박했다. 한인사회 내에서도 "죽은 아들을 볼모로 보상금을 노리는 무심한 아버지" "거짓말 하고 돌아다니는 정신병자"라는 헛소문뿐이었다.
건강이 악화된 이군의 어머니 정승미씨와 동생 경진씨가 스페인으로 돌아간 지금, 이씨는 1년에 마흔 번씩 거처를 옮기며 더부살이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씨는 신발에 피가 흥건히 고일 때까지 걸어 다니고, 생니가 빠지고 각혈하는 고충을 겪으면서도 아들의 사인규명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다. 객관적인 부검을 통해 사인이 규명되고 온전한 장례를 치르는 것만이 유가족의 마지막 바람이다.
| | 국과수, 영국 파견 부검 가능할까 | | | 5년여 만에 2차 부검 앞둔 이경운 시신 | | | |
| | | ▲ 청와대앞 1인 시위중인 안샘솔씨. 안씨를 비롯 10 여 명의 시민들은 이경운 사건 해결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 ⓒ박성진 | 2000년 9월 29일 캔터베리에서 버스에 의한 역과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이경운군(당시 17세, 스페인 출생, 한국국적, 영국 켄트 대학 재학)의 죽음은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뒤덮여 있다.
영국 경찰은 사고 장소를 당초 말했던 곳과 40미터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곳으로 번복했으며, 유가족이 시신 전신을 확인한 것은 사망 후 10개월이 지난 시점에서였다. 영국 경찰 및 병원이 제시한 시신 사진이나 유가족, 대사관 등과 주고받은 각종 문서에 대해서도 그 진정성 여부에 강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시신 부검도 의혹투성이다. 병원 측은 2000년 10월 2일 유가족이 병원이 도착하기 전에 시신부검을 실시했다고 말했으나 유가족은 허술한 부검서류에 의혹을 제기하며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어 2001년 4월, 유가족은 영국 병원의 시신 강제 매장 협박에 못 이겨 2차 부검을 실시키로 동의했으나 병원 당국이 경찰을 동원해 유가족의 부검참관을 허락하지 않아 무산됐다.
한편, 올 9월 26일 김문수 홍준표 장영달 권영길 의원 등으로 구성된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위원장 임채정) 소속 여야 의원들은 주영대사관 해외 국감에서 고 이경운 군의 아버지 이영호씨로부터 유가족의 입장을 청취한 후 "대사관 직원들이 유가족의 입장에서 조속한 대응을 하지 않았다"며 재외국민 보호에 만전을 기할 것을 촉구했다.
이에 조윤제 주영대사는 과거 대사관의 초동 대응이 미흡했던 점을 인정하고 유가족에 심려를 끼친 데 대해 사과하고, "10월 22일부터 27일까지 국과수 부검단이 부검을 위해 영국에 파견될 것"이라고 전했으나 국과수 부검단 파견과 부검은 현재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태다.
영국법상 해외 의료인이 영국 내 의료 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영국총의료관리청(General Medical Council, 이하 GMC)에 등록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대사관측이 미리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 이와 같은 사실은 지난 10월 7일 유가족, 대사관, 병원 3자 면담에서 이경운 부검 일정을 논의하던 중 병원 측을 통해 드러났다.
주영대사관측은 지난 10월 21일 뒤늦게야 GMC에 국과수 부검단 등록을 신청한 상태이며, 유가족과 대사관은 현재 GMC의 응답을 기다리는 중이다. 국과수 파견이 성사될 경우, 국과수 설립 이래 최초의 일반인 해외 부검으로 기록될 예정이다. / 박성진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