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1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두 달. 불안한 휴전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가수요 심리는 일단 진정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장은 여전히 관망세다. 당장 8·31 부동산 대책이 국회 입법 과정에서 난항을 겪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자, 강남 재건축이 반등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과연 8·31 부동산 대책은 정부의 약속대로 부동산 시장을 정상화시킬 '묘약'이 될 수 있을까?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의 핵심 브레인인 김수현(44)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은 지난 13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2003년 10·29 대책의 실패 원인은 정책 의지를 스스로 약화시킨 정부에 있다"면서 "8·31 대책은 10·29의 실패를 경험하고 정부가 수립한 만큼 원칙대로 처리하겠다"고 강조했다.
김 비서관은 이어 "8·31 대책과 관련한 입법이 왜곡되면 다시 부동산 시장에 불이 붙을 가능성이 높고, 그 책임은 법안을 완화시킨 사람이 져야 한다"면서 "8·31 대책으로도 시장 불안이 발생한다면 (8·31 대책과 같은 대책을) 몇 개라도 더 만들 각오가 돼 있다"고 밝혔다.
그는 8·31의 입법화가 완료되는 시점에 발표할 2단계 대책과 관련 "주택과 토지의 공공 비축 확대와 서민을 위한 전·월세 대책 마련이 핵심"이라면서 "택지비를 낮추고 공영개발을 통해 분양가를 인하할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연구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김수현 비서관은 또한 "판교와 송파 이외에도 전략적인 공공 택지는 공영개발을 적용하겠다"고 밝혀, 파주 운정과 김포 신도시 등 핵심 지역의 공영개발 확대를 시사했다.
김 비서관은 "(부동산 정보의 투명한 공개를 위해) 이번 달 안으로 국무회의를 거쳐 부동산 소유 현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한 통일된 기준 마련과 자료 정리 작업을 벌일 계획"이라며 "토지와 주택 소유 현황을 매년 공개하고 내년부터 등기부에 기재된 실거래가를 매월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부동산 정책 추진의 가장 큰 장애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국민 대다수가 집값이 안정됐으면 좋겠다고 하면서도 '또 오를 거니까 난 사놓아야지'하는 이중성"이라면서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을 책임지는 정부가 원칙을 가지고 풀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재건축 완화와 관련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다음은 김수현 청와대 비서관과의 일문 일답이다.
"국회 입법 완화되면 부동산 시장 다시 불 붙는다"
- 8·31 대책이 입법화 과정에서 난항을 겪고 있다. 애초 정부는 국회통과를 낙관했었는데. 현재 진행 상황은.
"국회에서 입법 심사가 진행 중이다. 한나라당의 당론이 확정되지 않아 진의가 확인되지 않고 있어 답답하다. 한나라당 의원 개인 차원으로 법안을 상정해 놓고 종부세와 양도세 완화를 요구하고 있는 상태다.
정부의 입장은 종부세와 양도세는 원안에서 절대로 후퇴할 수 없다는 점이다. 분명한 것은 8·31 대책 입법이 왜곡되면 다시 부동산 시장에 불이 붙을 가능성이 높고, 그 책임은 법안을 완화시킨 사람이 져야 한다는 점이다."
- 기반시설부담금이 분양가 인상 효과를 유발해 오히려 분양가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기반시설부담제는 정확히 말해 투기억제책이 아니라 도시계획제도다. 이 제도의 목적은 기반시설 소요 비용을 개발 행위자에게 합리적으로 부과하는 데 있다. 공공택지 안에 도로, 공원, 학교 등이 있지만, 그 동안 공공택지 주변 민간택지는 돈은 내지 않고 편의만 제공받아 왔다. 그렇다고 민간택지가 분양가가 낮았나? 전혀 그렇지 않다. 이런 무임승차를 막자는 것이다.
분양가 인상 우려가 높은데, 수도권에 공급되는 택지의 60~70%를 차지하는 공공택지는 기반시설부담금 대상이 아니다. 현재 재건축과 재개발, 상가가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는 부과 기준을 국회에서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중복 부과를 막으면 된다. 모든 예를 서민들 부담으로 과장키는 게 맞는지 의문이다."
10·29 대책은 왜 실패했을까
- 참여정부의 대표적인 부동산 정책인 10·29 대책 입안에도 참여했다. 일부에서는 책임도 지지 않고 8.31대책을 만드는 중책을 맡았다는 지적도 있는데. 10·29가 실패한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뛰어내려야 할 사람이 자리에 앉아 있다는 이야기처럼 들린다.(웃음) 2003년 발표한10·29 대책에는 세율 인상과 종합부동산세 개념 도입, 1가구 3주택 중과가 핵심이다. 그러나 3주택 소유자가 보유한 주택이 30만 가구 내외로 전체 주택에 2% 수준에 불과했다. 더구나 공급대책도 불명확했다. 대책이 구체적이지 못하고 추상적이었기 때문에 심리적 요인에 의해서 쉽게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
또 하나 10·29 대책이 2003년에 나왔지만 종부세와 1가구 3주택 양도세 중과는 입법이 2004년 말에 됐다. 2004년 12월 이헌재 부총리는 3주택 양도세 중과 유예를 꺼냈다가 당시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과 논쟁을 벌였다. 이후 정책이 동요되고 있다는 신호가 시장에 전달되기 시작했다.
여기다 종부세를 정부 스스로 약화시켰다. 정부는 건설경기위축을 상당히 우려했던 것 같다. 이런 과정이 겹치면서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훼손, 희석됐다. 2005년이 되면서 집값도 안정되고, 경제가 성장할 수 있다는 정부의 막연한 기대감 때문에 중심을 잡지 못한 것 같다. 결과적으로 10.29대책 실패의 책임은 정부에 있다."
- 그렇다면 10·29과 8·31 대책의 차이는 무엇인가.
"8·31 대책은 10·29 대책의 학습효과를 정부가 체득하고 수립한 정책이다. 그게 가장 큰 차이다. 8·31 대책이 훼손 없이 실행되면 효과를 볼 것으로 믿는다. 그럼에도 시장 불안이 발생한다면 이는 용납하지 않을 생각이다. 청와대가 8·31 대책을 몇 개 더 만든다는 각오가 돼 있다고 말한 것은 그 때문이다."
- 8·31 대책이 발표된 지 두 달이 지났다. 시장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나.
"매우 예민하게 관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세청 분석에 따르면 '돈 가진 사람들이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하더라. 부동산 가격 정보를 발표하는 곳이 국민은행, 부동산 114, 한국부동산정보협회 등 3군데 정도 된다. 그런데 발표할 때마다 보도 뉘앙스가 완전히 다르다. 오전 보도는 안정세라고 나왔는데, 오후 보도는 불안으로 나온다. 어떻게 이해하라는 이야기인지. 같은 신문 안에서도 내용이 불일치 되고 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부동산 시장이 안정으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2단계 대책, 토지와 주택 공공성 높이기
- 8·31 대책이 나왔을 때 평가가 엇갈렸다. 특히 송파 신도시 건설을 놓고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는데.
"개인적으로는 공급론에 반대하는 사람이었지만, 8·31 대책을 확신했기 때문에 공급해도 된다고 봤다. 그러면 왜 송파를 선택했느냐? '이 곳은 더 이상 진입할 수 없어'라는 강남의 심리적 기득권을 막기 위해서라도 지속적인 공급이 필요했다. 더욱이 송파 신도시는 공영개발 방식으로 서민 주택을 공급한다. 가수요가 억제되고 실수요가 재편되면 공급이 필요하다. 송파 신도시는 그러한 전략적 판단에 따라 선택했다."
- 정문수 경제보좌관은 지난 2일 청와대 브리핑에서 8·31 대책에 따른 2단계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실수요자들의 경우 분양가를 낮추는 방법을 고민한다는 발표에 관심이 높다.
"2단계 대책의 핵심은 토지와 주택의 공공성을 높이는 것이다. 우선 공공 토지와 주택 비축을 확대할 계획이다. 임대주택 건설을 목표대로 시행하고 여기에 다가구 매입 임대 등을 통해 장기비전과 계획을 내놓는 것이 첫 번째 대책이다. 두 번째는 전·월세 대책이고, 세 번째가 분양가를 낮출 수 있는 방법 찾기다. 택지비를 줄이는 것이 관건이다. 택지보상의 과다함을 줄이고, 복잡한 절차를 단순화 시켜 보겠다. 여기에 공영개발을 적용해 최대한 가격을 낮추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 공공택지 공급 과정에서 수의계약 등 특혜 의혹이 많았다. 문제가 많던 택지개발촉진법은 개선되는 건가.
"특혜가 주어지지 않도록 택지개발촉진법은 합리적으로 개선될 것이다. 원칙적으로 공공 택지는 공공의 목적이 있는 만큼 실수요자에게 가야 한다."
- 그렇다면 파주 운정, 김포 신도시 등 주요 공공택지는 모두 공영 개발 방식이 적용되나.
"모두는 아니지만 전략적인 지역은 공영개발이 적용될 예정이다. 판교와 송파가 우선 대상이다. 앞으로 어떤 지역을 공영개발 할 것인지 기준도 곧 마련해 밝히겠다."
"서민들의 전월세 대책 마련하겠다"
- 8·31 대책으로 인해서 전세가 오를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 부담으로 다가올 텐데 이에 대한 대비책은.
"2단계 대책의 핵심 내용이다. 집값이 하향 안정화되면 전세를 월세로 돌리려는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다. 내년 봄 신문에 '집값 잡겠다더니, 서민 다 죽여'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올 수도 있다.
우선 전세자금 융자와 함께 전세 가구가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도록 위치 좋은 곳에 싼 공급을 늘리겠다. 그리고 다세대에 살고 있는 서민들의 전세 대책을 마련 중이다. 정부가 전세를 해서 임대하는 방법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렇게 해도 강남과 분당 등 일부 지역은 전세가 오를 가능성이 있다. 진짜 서민층 전세 문제는 해결하도록 노력하겠지만 모든 지역을 다 책임지는 것은 좀 무리가 있다."
- 당정이 택지조성원가 공개를 추진하고 있다. 이 부분도 분양가 낮추기 위한 한 방법으로 고민하는 건가.
"그 동안 민원 발생 문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서 세부 항목 공개를 꺼렸다. 그러나 국민들 대다수가 알고 싶어하는 만큼 공개하자는 것이다. 꼭 그렇지는 않지만, 택지조성원가를 공개하면 (분양가가) 낮아질 개연성도 있다고 본다."
- 국민들 대다수는 분양원가 공개를 지지하고 있다. 정부가 입장이 오락가락했는데.
"왜 해버리지 짐을 지고 있느냐고 생각할 수 있다. 표도 깎이는데…. 그러나 분양가 공개가 꼭 가격 인하로 이어진다는 판단이 들지 않았다. 검증 문제도 있었고. 건설업체를 비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민간 조성원가 공개는 현실적으로 더더욱 어렵다. 문제가 있는 부분은 택지라고 봤다."
- 원가연동제 효과가 미미하다.
"공영개발 방식으로 개발하는 판교 25.7평 이하를 좀 더 두고 봤으면 좋겠다. 구체적으로 낮추는 방안에 대해서는 고민하고 있다. 화끈하게 몇 % 내려간다고 할 수는 없다."
- 집값을 잡는 원칙적인 해법으로 민간 후분양제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사실 후분양제는 노무현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했는데.
"본질적인 문제는 집값을 어떻게 낮추는가 하는 점이다. 후분양제는 선분양의 투기 열풍을 잠재울 수 있고, 품질관리면에서 장점이 있지만 가격을 낮출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물론 후분양제가 바람직한 방향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가격이 안정되면 자연스럽게 후분양제가 확대되리라고 기대한다."
- 일부에서 요구하는 재건축 완화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인가.
"재건축을 완화하면 시장이 들썩이기 때문에,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
| | 철거민 운동가 출신...8·31 대책 주도한 정책통 | | | 김수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은 누구 | | | | 김수현 비서관은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만든 핵심 인물로 꼽힌다. 그는 8·31 부동산 대책이 준비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 후보 시절 주택 정책에 대한 세미나를 함께 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김 비서관은 서울대 도시공학과를 마친 뒤 환경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마쳤다. 80년대 중반에는 서울 사당동에서 철거민 운동을 주도했으며, 서울지역철거민협의회 정책실장까지 지냈다.
이런 이력 때문에 그는 외부에 강성으로 알려져 있지만 직접 만나 본 사람들은 합리적이고 실무에 밝다고 평가한다.
국민의 정부 시절에는 삶의 질 향상 기획단에서 일했으며, 참여정부 인수위 시절 경제2분과(건교부 담당) 전문위원으로 참여했다. 이정우 전 정책기획위원장과 2003년 10·29 대책을 준비한 장본인 이기도 하다.
8.31 대책의 근간이 된 3원칙 ▲거래 투명화 ▲투기이익 환수를 통한 초과이익 기대심리 제거 ▲공공역할 강화는 김수현 비서관의 작품이다.
과거에 비하면 꿈 같은 위치에 올라와 있는 그지만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에게 묻곤 합니다. 20대, 30대 때 생각했던 그 철학과 원칙을 지금 이 자리에서 과연 얼마나 실천하고 있는지…."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인터넷을 켜고 포털 검색어에 '부동산'을 치고 시장의 흐름을 살핀다는 김수현 비서관. '정부가 정책의 일관성을 훼손했을 때 시장이 무서운 보복을 내린다'는 10·29 대책의 실패를 경험한 탓인지 8·31 대책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대한민국에서 부동산은 기쁨과 슬픔의 원천입니다. 그 때문에 '8·31 대책이 정말 성공하면 어쩌지'라고 두려워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스스로 두려워하고 있는 거죠. 이 고통을 넘어 선다면 분명히 부동산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뀔 겁니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