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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화 물결 속에서 정보 격차는 새로운 사회적 불평등과 불안 요소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정보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지만, 연령별·소득별·지역별 정보 격차는 쉽게 줄어든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정보통신(IT) 강국으로 평가받고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정보 격차 해소에 이바지해야 할 책임과 과제가 있습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국·내외 정보 격차의 실상과 해결 방안 등에 대한 기획 연재 기사를 게재합니다. 네 번째로 남북의 IT경협을 통해 정보격차를 해소하자는 기사를 소개합니다. <편집자주>
지난 7월 남북의 통신망이 분단 50년만에 처음으로 다시 연결됐다. 사진은 문산-개성을 종단하는 철도와 남북군사분계선이 만나는 지점에서 열린 연결식 모습.
지난 7월 남북의 통신망이 분단 50년만에 처음으로 다시 연결됐다. 사진은 문산-개성을 종단하는 철도와 남북군사분계선이 만나는 지점에서 열린 연결식 모습. ⓒ KT 제공
'IT강국' 대한민국에서 정보격차 문제는 일상의 화두가 된 지 오래다. 연령별·계층별·지역별 정보격차의 심각성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면서 그 골을 메우기 위해 정부와 민간 차원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남북간 정보격차 문제는 사정이 다르다. 가장 심각한 정보격차 중 하나임에도 이에 대한 인식은 문제의 심각성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남북간 정보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일부 진행되고 있긴 하지만 분단에 따른 어쩔 수 없는 문제라는 이유로 방치되고 있는 경우가 더 많다.

지금이야 별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통일 이후를 생각한다면 남북간 정보격차 문제는 재앙이 될 가능성이 높다. 독일의 경우 통일과정에서 600억마르크(약 60조원)라는 막대한 정보통신 통합비용을 지불했다.

남북간 정보격차, 방치하면 재앙... 독일은 600억 마르크

특히 남한과 북한의 정보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시간이 지날 수록 우리가 지불해야 할 통일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또 우리가 이 문제를 방치하고 있는 사이 북한의 정보화 작업이 중국과 유럽 업체들의 독무대가 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북의 컴퓨터 시장에는 중국업체들이, 네트워크 구축사업에는 유럽업체들이 참여하면서 생기는 기술 방식의 차이도 발생하고 있다. 일례로 이동통신의 경우 남한은 씨디엠에이(CDMA)방식이지만 북한은 유럽 방식인 지에스엠(GSM)방식을 따르고 있다. 통일 이후 표준이 서로 달라 치러야할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최근 들어 민간업체들의 남북간 정보통신 분야의 협력사례가 늘어나고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민간차원의 협력 사업은 남북간 정보격차 해소는 물론 경제협력체제 구축에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가장 활발히 협력 사업을 벌이고 있는 업체는 KT다. 지난해 1월부터 남북교류를 본격적으로 추진해온 KT는 개성공단 직통전화 개설 사업과 이산가족 화상상봉 시스템 구축 등 성과를 내면서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4월에는 통신서비스에 필요한 기술과 소프트웨어를 남북 공동으로 개발하는 '연구개발단일팀'도 구성했다. KT 마케팅 연구소와 북한의 전자분야 대남경제협력 사업을 담당하는 삼천리총회사 산하 조선콤퓨터센터가 공동으로 '지능망 서비스제어시스템'과 '연속 음성인식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로 한 것이다. 단일팀은 공동 연구 7개월 만에 제품 개발을 끝냈고 현재는 양측 기술진들이 개발 제품에 대한 최종 검수를 하고 있는 상태다.

1차 공동 연구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가 나오자 양측은 협력 사업의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 지난달 2일에는 남북한의 정보통신기술 전문가 4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내년도 공동 연구과제 선정을 위한 협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KT는 북한이 세계적인 수준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 음성인식 분야 등 5개를, 북측은 한국의 강점인 홈네트워크 서비스 등 4개 분야를 공동으로 연구하자고 제안해 놓고 세부 사항을 조율 중이다.

"소프트웨어 공동 개발 '시너지' 크다"

남북협력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김병주 KT 사업협력실 상무는 "소프트웨어 개발은 KT의 자본력과 북측의 기술력이 더해져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대표적 분야"라며 "앞으로도 양측이 협력했을 때 사업적 효과를 낼 수 있는 분야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협력 사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상무는 "사업 협력분야를 찾아내기 위해 서로 만나서 양측의 기술에 대한 대화를 진행하는 것만으로도 남북간의 정보격차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된다"며 "남북 협력 사업이 당장 수익이 나는 것은 아니지만 통일을 생각한다면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북 첫 합작 정보통신기술(IT)회사인 '하나프로그람쎈터'도 지난 2001년 설립 이후 순항을 계속하고 있다. 북한과 중국의 접경지역인 단둥에 있는 이 회사는 북측 연구원 40여명과 남측 연구원 10여명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개발을 하고 있다.

지난 해에는 남측의 네트워크장비 개발회사인 다산CNS와 공동개발사업 계약을 맺고 소프트웨어 '넷툴'을 개발했다. 이 제품은 현재 남측 기업들 뿐아니라 유럽의 통신장비업체인 지멘스에 판매되고 있다. 또 최근에는 남측의 시스템통합(SI)업체인 SK C&C와 프로그램 개발 계약을 맺기도 했다.

중견 휴대전화 제조회사 VK도 지난 9월 북한 삼천리기술회사와 휴대전화를 공동으로 개발하기로 하고 중국 북경에 연구소를 만들었다. 이 곳에서는 세계 최초로 한글을 지원하는 유럽형(GSM) 휴대전화가 탄생할 전망이다.

이를 위해 삼천리기술회사는 박사급 연구원 10명을 연구소에 2년간 상주시키며 공동 연구개발 활동을 수행하기로 했다. 양측은 당초 올 연말 상용화를 목표로 했으나 현재 북측에서 연구원 선발 과정이 늦어지면서 본격적인 연구활동은 아직 본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VK관계자는 "휴대전화가 개발되면 북한 지역은 물론 국내에서도 유럽 출장이 잦은 직장인들에게도 유용할 것"이라며 "북한도 정보통신 기술에 관심이 많아 이번 사업을 계기로 더 많은 협력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북사업 걸림돌도 많아

하지만 정보통신 기술 분야에서 남북 협력사업에 걸림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상당수의 통신장비들이 미국의 전략물자 수출통제규정(EAR)에 걸려 북한 반입이 차단돼 있어 정보통신기기 투자에 애로를 겪고 있다. 실제로 KT도 개성공단 직통전화를 개설하기로 북한과 합의를 끝내놓고도 EAR로 인해 그 시기가 무기한 연기되는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때문에 대부분 업체들은 대북 직접 투자보다는 중국에 연구소를 세우는 방법 등을 통해 협력 사업을 이끌어 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협력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업체들은 북한이 중국 등을 통해 컴퓨터와 기타 IT 장비들을 합작 생산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업체들만 미국 규정 때문에 발목이 잡히고 있다며 보다 적극적인 정부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박찬모 포항공대 총장은 "남한의 하드웨어 기술과 북한의 소프트웨어 기술이 접목되고 북한의 이론연구와 남한의 상용화 능력이 합쳐지면 국제적인 경쟁력이 있는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며 "협력사업에 필요한 장비들의 반입을 규제하고 있는 바세나르 협정이나 미국의 EAR 등이 정비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통신분야 남북협력은 ‘윈윈’ 모델”
[인터뷰]김병주 KT 사업협력실 상무

▲ 김병주 상무
KT의 남북협력사업을 초창기부터 이끌고 있는 김병주 상무. 지난 2년동안 김 상무는 이산가족 화상상봉과 개성공단 직통전화 연결 등 굵직한 대북사업을 맡아 숨은 주역으로 활약했다. 사업 협의를 위해 북한 땅을 안방 드나들 듯 한 끝에 이제 북한통이 다 됐다.

김 상무는 그동안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남북한 협력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서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사업 분야를 찾아 구체적인 협력 모델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주거나 받기만 하는 관계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

그는 그런 의미에서 통신 분야 소프트웨어 개발은 남북한이 서로의 장점을 살려 ‘윈윈’할 수 있는 모델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협력사업은 언제부터 어떻게 준비했나.
“2004년 들어 본격적으로 북측과 협력 확대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해 6월 30일 평양에서 KT와 삼천리총회사가 정보통신분야 공동 연구개발을 하기로 기본합의서를 체결하고 삼천리총회사 산하에 있는 조선콤퓨터센터와 공동연구 계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금년 4월 금강산에서 구체적인 연구과제로 조선어기반 음성 데이터베이스 구축과 지능망 서비스시스템을 선정했다. 지금은 개발을 마치고 양측 기술진이 검수를 하고 있다.”

- 결과물은 만족할 만한 수준인가.
“기술진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애초에 요구했던 수준의 만족할만한 성과가 나왔다고 한다. 이번에 개발된 제품은 기본 기술이 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음성인식분야만 보더라도 북측에서 사용하는 말과 남쪽 말이 다르다. 그래서 음성인식이 어려운데 차근차근 기술을 축적해나가는 의미가 있다. 향후 시스템 구축에 도움이 될 것이다.”

- 남측에도 개발 인력이 많은데 북한 연구원을 활용해서 통신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로 한 이유는.
“어차피 우리나라가 앞으로 통일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정보통신 교류가 있어야한다. IT분야는 기본 인프라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 분야의 협력은 다른 모든 경협사업의 교두보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남과 북은 서로의 장단점이 있다. KT는 자본력이 있고 북측은 기술력이 상대적 우위에 있다. 그래서 소프트웨어 개발 쪽은 사업적으로 시너지가 나올 수 있는 분야다. 당장은 수익이 나지 않겠지만 통일을 대비해 큰 자산이 될 것이다.”

- 통신분야에서 남북한이 다른 점도 많을 텐데 그동안 애로점은 없었나.
“우선 협의를 진행하는 데 있어 문화적 차이가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이산가족 화상상봉과 개성공단 직통전화 개설은 남북한이 분단이 후 처음으로 상호간에 음성과 데이터 통신을 하는 것이라 기술적인 준비도 만만치 않았다. 또 북한이 통신분야는 주권차원에서 접근하고 있어 항상 살얼음을 걷는 기분으로 협의를 해야했다. 그리고 용어차이도 있다. 북한도 기본적으로 영어로 된 IT용어를 쓰기는 하지만 광케이블을 빛까르벨이라고 한다든지 상당한 차이가 있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이런 부분은 모두 함께 만나서 협의를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풀렸다. 남북 협력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만나서 협의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 함께 사업을 해보니 북한의 IT분야는 어떤 수준인가.
“같이 일을 추진해온 우리측 연구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음성인식 소프트웨어 개발 능력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수준이라는 평이다. 북한이 원래 소프트웨어 개발 능력은 뛰어나다.”

- 북한과 협력사업을 오랫동안 해왔는데 가장 중요한 점은 뭐라고 생각하나.
“남과북이 사업을 하는 경우 한쪽이 일방적으로 주기만하거나 받기만하는 형태는 오래가지 못한다. 공동으로 했을 때 서로 이익이 되는 부분이나 서로를 필요로 하는 분야에서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는 생각이 든다. KT가 북한과의 소프트웨어 공동개발을 사업을 성공적으로 진행 할 수 있었던 것도 서로 ‘윈윈’할 수 모델이었기 때문이다.”

- 앞으로 협력 사업의 확대 계획은 있나.
“내년도에 공동연구 개발 과제를 확대하려고 한다. 북측이 경쟁력을 가진 분야가 있다면 과감하게 협력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꾸준히 협의를 진행하는 것도 남과 북이 함께 했을 때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는 분야를 찾기 위해서다.”

-앞으로 협력사업에 대한 바램이 있다면.
“남측에서는 대북사업을 대부분 퍼주기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사실은 양측이 협력을 했을 때 모두 얻는 것이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단기적인 이익이 아니더라고 중장기적으로는 반드시 그렇다. 이런 분야를 적극 발굴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지원해줄 수 있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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