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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째 차만 나르는 모습 그대로
몇 년째 차만 나르는 모습 그대로 ⓒ 동아일보
연일 남편에게 차를 갖다 바치는 아내 등, 만화 속 등장인물 설정이 보수적이고 전 근대적이라는 지적은 수도 없이 나왔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다. 이 부분은 매일같이 네 칸을 채워야 하는 화백의 입장에서 손쉬운 작업을 위한 화백 나름의 설정이라 여기고 문제 삼지 않기로 하자.

하지만 그의 만평이 다루는 소재의 빈곤과 편협함, 그리고 억지스러움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통계를 보면 2005년 12월 한 달 동안 <동아일보>에 실린 이홍우 화백의 만평 '나대로 선생'은 모두 26편이었다. 그 중 노무현 대통령과 정부, 여당을 비판의 소재로 삼은 것이 무려 20개나 된다. 76%가 넘는 수치다.

12월 한달동안 노무현 대통령이 모델 노릇 톡톡히 했다
12월 한달동안 노무현 대통령이 모델 노릇 톡톡히 했다 ⓒ 동아일보
황우석 교수 파문과 사학법 개정, 그리고 삼성 이건희 회장의 불기소, 두 농민의 죽음과 경찰청장의 사퇴 등 뉴스가 차고 넘쳤던 12월 한 달 동안 만평의 76%를 정부 비판으로 채우는 건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나머지 6건은 황우석 줄기세포 의혹을 보도한 MBC를 비판적으로 들여다 본 2건과 임기 중 도청이 문제가 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소재로 한 1건, 그리고 황우석 교수 파동을 무감각하게 그린 3건이 전부다.

종합해 보면 한 달 동안 정부여당에 대한 비판과 황우석 교수 파동 관련 경쟁매체인 'MBC'에 대한 흠집 내기 말고는 별로 한 게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여당에 대한 비판은 정당했을까? 하나하나 살펴보자.

12월 23일자 만평은 각 신문이 올해의 10대 뉴스를 선정하는 기간에 청와대의 10대 뉴스가 노무현 대통령의 '쌍꺼풀 수술'이라며 비꼬았다. 그 날은 호남지역의 폭설로 큰 피해를 입었던 날이며, 한나라당의 사학법 관련 장외집회로 국회가 마비 중이었다.

어떤 뉴스가 나와도 노무현 대통령을 걸고 넘어 가는 능력
어떤 뉴스가 나와도 노무현 대통령을 걸고 넘어 가는 능력 ⓒ 동아일보
일본에서 올해를 상징하는 한자로 사랑을 뜻하는 '愛'(애)가 꼽혔다는 소식이 있던 12월 14일 만평은 그 소식을 소재로 우리 올해의 한자는 '偏愛'(편애)라며 노무현 대통령의 이른바 '코드인사'를 지적했다. 노 대통령의 인사에 문제가 있어 일본의 소식을 차용한 게 아니라, 일본에서 그러한 뉴스가 나자 노무현 대통령의 인사문제를 다시 한번 끄집어 낸 것이다.

그 외에도 12월 20일자 만평에서는 참여정부 3년의 성적표가 지지율 20%로 나온 것을 두고, 황우석 박사의 '바꿔치기 의혹'을 빗대어 비판을 하고, 12월 22일자 만평에서는 편 가르기가 보기 싫어 내리는 폭설 위에 정부가 또 다시 편을 가른다는 식의 만평을 내 놓았다. 24일자 만평에서는 황 박사 논문이 거짓이라는 발표가 나자 노 대통령이 "오~盧!"를 외친다.

황교수 파문도 폭설도 노무현 정부 여당과 연관 짓는다
황교수 파문도 폭설도 노무현 정부 여당과 연관 짓는다 ⓒ 동아일보
이홍우 화백의 눈에는 이 나라에서 발생하는 사건은 모두 노 대통령과 연관된 것이라고 보이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을 정도다. 정치인들은 비판보다 무관심을 더 무서워한다는데 이 정도면 '한나라당'에서 서운함을 느낄 만도 하다.

검색해 보니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등장하는 만평이 아주 없지는 않다. 10월 20일자 만평에서 연정을 제의했던 노 대통령을 비판하기 위해 독신인 박 대표의 모습이 한 칸에 그려지기는 했다. 9월 29일자 만평에는 청계천 공사를 끝낸 이명박 서울시장이 다른 대선 후보들의 질투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나타내기도 했다.

한나라당은 어쩌다 한번 등장하지만 그나마도 비판은 없다
한나라당은 어쩌다 한번 등장하지만 그나마도 비판은 없다 ⓒ 동아일보
석 달 동안 만평을 다 검색해 봐도 한나라당을 정면으로 비판한 만평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가장 최근에 한나라당을 비판한 만평을 알고 계신 분 있으면 알려주시라) 이홍우 화백의 '나대로 선생'이 <동아일보>의 만평인지 한나라당 당보의 만평인지 헷갈리는 대목이다.

우리나라 중앙일간지 가운데 네 칸 만화를 연재하고 있는 곳은 단 두 곳 <경향신문>과 <동아일보>뿐이다. 네 칸 만화는 한 칸 만화와는 달리 이야기를 담을 수 있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도 보존 발전시킬 가치가 있는 만화의 한 분야다. 이홍우 화백 한 사람으로 인해 네칸 만화 자체에 대한 평가가 인색해지게 되지나 않을까 여간 걱정스러운 게 아니다.

'신문이 열 냥이면 만평은 아홉 냥'이라고 했다. <동아일보>는 이미 아홉 냥을 까먹고 들어가는 건 아닌지 돌아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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