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의 신년연설을 소재로 삼은 만평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건 <경향신문> 김용민 화백의 만평이다. 노 대통령이 양극화 해소 방안으로 '재원 조달'과 '대기업 노조의 양보와 결단'을 강조하는 것을 두고 '조세정의'는 어디 갔느냐고 묻는 듯 하다. 이재용 상무에게 삼성을 넘기는 과정에서 변칙상속을 한 이건희 회장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세금인상이 결국 직장인의 유리지갑만 골라내고 말 것이라는 우려를 그린 <국민일보> 서민호 화백의 만평도 눈에 쏙 들어 온다. <부산일보> 손문상 화백 역시 세금인상으로 인한 고통이 서민들에게 집중될 것으로 보았다. 편하게 앉아 있으면서 '나도 힘들어'라고 이야기 하는 인물의 모습을 통해 연대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 일부 고소득 계층의 행태도 비꼬고 있다.
<강원도민일보>의 조영길 화백 만평은 세금인상 보다는 양극화 해소에 초점을 맞췄다. 방학 중 급식이 끊겨 한끼 식사를 걱정해야 하는 결식아동과 너무 잘 먹어 비만체형의 아동을 대비하여 양극화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한겨레>의 장봉군 화백은 두 명의 노 대통령을 대비시킴으로써 양극화 현상이 참여정부의 세계화 정책에 원인이 있다고 주장한다.
같은 소재를 가지고도 이처럼 각기 다른 시각의 만평이 나오는 것은 언론의 다양성 측면에서 환영할 만하다 하겠다. 하지만 참 독특한 방식으로 다양성을 추구하는 만평들이 있다. 이른바 '조중동'으로 묶여 불리는 부자신문에 만평을 싣는 신경무, 이홍우, 김상택 화백이 그 주인공들이다.
<중앙일보> 김상택 화백과 <동아일보> 이홍우 화백의 만평은 화법만 다를 뿐 그 안의 내용은 복제한 것처럼 똑같다. 노 대통령의 신년연설이 진행되는 시간에 국민들은 그 연설을 보는 게 아니라 같은 시간에 방영된 '황금 사과'를 시청했다는 내용이다. 노 대통령의 연설이 아니라 대통령에게만 초점을 맞춘 만평이다. 만평 내용대로라면 대통령은 국민의 관심에서 멀어진 서글픈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조선일보> 신경무 화백은 대통령의 신년연설 대신 열린우리당 당의장 후보인 정동영, 김근태 두 전직 장관이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에게 독설을 퍼붓는 모습을 그렸다. 이 만평에도 노 대통령이 등장하는데 '대연정'을 말하며 박근혜 대표를 따라다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앞서 소개한 신문들의 만평은 '사실'에 초점을 맞춘 반면 '조중동'의 만평은 '인물' 그것도 대부분 노 대통령에게 초점을 맞췄다는 특징이 있다. 그것도 고약한 방법으로, 대통령을 조롱하는 방법으로 일관한다. 이런 것 마저도 언론의 다양성 측면에서 인정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대통령과 언론.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둘 사이의 관계를 온전히 정립해오지 못했다. 대통령의 한마디에 모든 언론이 고개 숙이던 긴 시기를 지난 뒤, 대통령을 사사건건 훌닦거나 조롱하는 언론으로 넘어왔다."
20일 <오마이뉴스>에 실린 '비판에 귀 닫는 대통령의 운명'이라는 손석춘 칼럼의 들머리 대목이다. 손위원이 지칭하는 '언론'이 이른바 '조중동' 일부 조중동류 언론이라는 건 쉽게 알 수 있다. 20일자 만평이 그걸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어쩌다가 이 나라 유력 언론이 특정인에 대한 조롱을 업으로 삼게 되었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조중동'과 그 지면에 만평을 그리는 화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대통령을 조롱하지 말라. 대통령을 조롱하는 것은 그를 뽑아 준 국민들을 조롱하는 것이다. 언론에게 주어진 역할은 조롱이나 비난이 아니라 올곧은 비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