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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죽 솥 아궁이 앞에서 이글거리는 불을 담아 금방 식지 말라고 먼지가 날리지 않도록 조심히 재를 덮었다.
쇠죽 솥 아궁이 앞에서 이글거리는 불을 담아 금방 식지 말라고 먼지가 날리지 않도록 조심히 재를 덮었다. ⓒ sigoli 고향
할머니, 할머니께서는 화로를 끼고 사셨습니다. 담이 결려 옴짝달싹하지 못했을 때도, 쥐에 물려 시름시름 앓을 때도 늘 미지근한 화롯불이 곁을 지켰습니다.

아흔을 넘겨 두 며느리보다 훨씬 세상과 오래 씨름하실지라도 부여잡고 사셨습니다. 다른 할머니와는 비교할 수 없었지요. 그토록 할머니 하면 생각나는 것이 화로고 화로 하면 역시 할머니입니다. 봄여름가을겨울 언제나 같이 있었습니다. 제가 학교에 가도 둘이서 대화를 하셨습니다.

쇠죽솥에서 이글거리는 빨간 숯불을 한 삽 또 한 삽 부삽으로 뜹니다.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올랐습니다. 할머니 깊은 정이 오래 사라지지 말라고 위에 재를 살포시 먼지나지 않게 덮어서는 방안으로 들여가면 웃바람은 온데간데없고 할머니 속마음처럼 은근하고 묵묵하게 오래오래 갔습니다.

할머니는 한 시라도 오래가라고 불거진 잉걸을 안쪽에 쇠부지깽이로 덮으셨습니다. 아내 없는 큰아들과 손녀들 일손을 덜어주기 위해서만 아니었습니다. 불이 필요할 때만 불씨 하나 꺼내 쓰셨지요.

눈이 와서 세상이 포근해지면 저는 화로에 파고들었고 할머니 품에 안겼습니다. 그토록 아끼던 재만 보이던 화롯불을 휘저어 방안을 금세 따듯하게 해주셨어요. 어머니가 큰댁 할머니 곁으로 저를 떠밀었기 때문입니다. 10수년 만나지 못할 걸 알면서 사촌 형만을 치매라도 걸린 듯 찾으며 속아사신 할머니를 위로하게 위해서였습니다.

그때마다 마치 기다리기라도 하신 듯 몰래 숨겨놓았던 밤과 고구마를 구워주셨지요. 그 뜨겁던 밤도 거북등보다 두꺼운 할머니 손바닥은 뜨거운 줄 몰랐어요. 고구마를 넓적넓적하게 썰어 석쇠에 구우면 달고 고소한 맛이 방안 가득 퍼졌습니다. 노랗게 익은 고구마가 배고플 때 가서 그런지 그 맛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세월을 인고로 살아왔던 당신께서 그걸 벗 삼아 곰방대에 봉초 담배 꾹꾹 눌러 양 볼이 발심거리도록 쪽쪽 빨면 방 안에 연기가 자욱했습니다. 아버지는 할머니 애나 그만 태우시라고 절대 봉초와 싸디싼 담배라도 떨어지지 않게 댔습니다. 그걸 할머니는 태우고 또 태우셨습니다.

화롯불에 좋은 건 참나무 숯이지만 내 고향에선 주로 땔감으로 소나무를 썼기 때문에 재가 훨씬 많았다. 고구마, 감자, 밤, 생선, 떡, 마와 계란밥을 만들어 먹었던 시절이 그립다.
화롯불에 좋은 건 참나무 숯이지만 내 고향에선 주로 땔감으로 소나무를 썼기 때문에 재가 훨씬 많았다. 고구마, 감자, 밤, 생선, 떡, 마와 계란밥을 만들어 먹었던 시절이 그립다. ⓒ sigoli 고향
하루는 화로를 제가 우리집으로 가져간 일이 있었습니다. 한 여름이었는데 오른쪽 팔뚝을 왜낫에 베어 세치(10cm 가량)가 넘는 상처가 나자 덧나지 말라고 석유를 바르고 화롯불에 이레를 쬐었을 때입니다. 그 때 한번 할머니 사랑을 독차지했지요. 아니 빼앗았습니다. 그토록 할머니와 손자는 옆집이었지만 알 듯도 하면서 멀기만 했습니다.

기력이 다 떨어지기 전까지는 물을 몇 번이나 건너 밭에 나가 손수 김을 매며 밭일을 하신 노고, 철부지 어린 손자도 잘 압니다. 아흔 여섯에 가셨으니 백수(白壽)를 앞두셨지요? 억척스런 당신 이승과 끈 놓기 서너 해 전까지 그 일을 마다하지 않으셨잖아요.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돌아오면 다른 건 묻지도 않으시고 "아가, 아가"하고 부르셨습니다. "왜요 할매?"하면 "사탕 사왔냐 사탕? 사탕 사왔어?"라고 그토록 단 것을 찾으셨습니다. 할머니 그때 제 주머니 사정 다 아시잖아요. 차마 돈 없단 말씀을 못 드리고 몇 번은 찾아뵙지 않고 문밖에서 서성일 때도 있었답니다. 참 못난 손자지요?

날이 다시 추워집니다. 퀴퀴한 냄새가 났던 할머니 방에서 대나무가지 듣던 시절이 그립습니다. 쭈글쭈글 백아산 여러 골짜기보다 더 깊게 패였던 할머니 주름살이 보입니다. 화로 하나에 모든 애환을 태우셨던 할머니, 내 불쌍한 할머니 생각에 애를 태웁니다.

덧붙이는 글 | 김규환 기자는 시골아이 고향(www.sigoli.com)을 만들고 있다. 따뜻한 추억 이야기와 엄마 손맛, 동무들과 즐거웠던 한 때 기억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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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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