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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한미 간 합의로 평택기지가 한반도 방위를 위한 기지가 아니라 미군의 '세계 전략기지'로 바뀔 수 있게 됐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11일 오후 경기도 평택역앞에서 지역주민과 시민사회단체 회원 5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평택미군기지확장반대와 한반도 평화실현을 위한 2차 평화대행진'.
ⓒ 오마이뉴스 권우성
4. 왜 '사전협의' 조항조차 마련하지 못했나

늘 그렇듯이 이번에도 한국측 대미 군사외교 당국자들의 기본 인식 자체가 문제였다.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의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용산기지 이전 협정에 장애가 될지 여부만을 고민할 뿐이었다.

수용 자체를 놓고 고민한 흔적도 없다. 받아들이는 것을 처음부터 당연시했다. 그렇다 보니 사전동의나 '사전협의'(prior consultation) 조항 여부는 관심 밖이었다. 오히려 미국 쪽에서 '사전협의'를 거론한 정황이 있다. 물론 미국측 입장은 곧 바뀌었다. 한국이 그대로 수용하겠다는데 굳이 조건을 걸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2005년 4월에야 우리 정부는 전략적 유연성을 존중하되 동북아 전쟁에만 불개입하면 되고 사전협의만 받아들여진다면 하는 조건으로 구체적 협상에 나섰다. 때늦은 상황이었다.

심지어 노무현 대통령이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했던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분쟁에 휘말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발언은 미측에 합의 번복으로 받아들여진 측면이 있다. 이는 곧 한미동맹의 불화로 해석됐다.

결과적으로 '사전협의' 조항은 성명에 포함되지 못했다. 물론 정부는 후속 절차에서나 이 문제를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렇게라도 되기를 희망한다.

현재의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그냥 놔둔 채 전략적 유연성을 수용하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전략적 유연성을 수용하려거든 한미상호방위조약 자체를 개정하거나 별개의 협약으로 체결하고 헌법 60조에 따라 국회의 동의를 받았어야만 했다. 그 점에서 이번 공동성명은 위헌 가능성이 현저히 높다. 지금이라도 문서화해서 위헌성을 치유하는 절차를 밟아야 할 것이다.

5. 전략적 유연성의 개념 자체도 모호하다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용어 대신 미국은 처음에는 '주한미군의 지역적 역할'(regional role)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러나 용산기지 이전 협상을 비롯한 현안들이 주한미군의 지역적 역할 변경을 통한 세계군사전략 변환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을 비밀에 부쳐야만 했다. 그래서 곧 지역적 역할 변경은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애매한 표현으로 대체됐다.

전략적 유연성은 세계적 차원의 미군재배치(GPR)와 직결되고 한국에서는 용산기지 이전의 전제가 되는 개념이었다. 용산기지 이전 협정이 먼저가 아니라 GPR과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개념 정립 및 이해가 선행돼야만 했다.

지금도 전략적 유연성은 주한미군의 전출(Flow-out)로만 여겨진다. 하지만 전략적 유연성은 넓게 볼 때 ▲전입(Flow-in)과 전출(Flow-out)을 포함한 병력의 이동 ▲기지(시설과 구역) 공동 사용 ▲장비의 사용 등 세 가지를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동북아시아에 급변 사태가 발생했을 때 한미연합 장비나 기지를 공동으로 혹은 주한미군이 사용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평택기지에서 동북아 특정지역으로 전투기나 항공모함을 출격할 수도 있고, 되돌아와 정비를 받을 수도 있다. 평택기지가 한반도 방위를 위한 기지가 아니라 미군의 '세계 전략기지'로 바뀌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평택으로의 용산기지 이전비용을 전부 부담했다. 더 나아가 북한에 급변사태가 발생했을 때 한반도 밖에 있는 미군을 한국으로 '전입'시키는 것은 전적으로 미국의 자유이다. 과연 이때 우리에게는 절차적 제한을 가할 수단이 있을까? 전혀 없다. 정부 스스로도 동북아 분쟁을 중국과 대만간의 양안 분쟁만을 염두에 두고 설명하는 수준이다.

일각에서는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했을 때 미군이 개입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론을 펼지 모르겠다. 물론 전면전 때의 개입은 당연하다. 그리고 이는 전략적 유연성과는 무관하다. 이미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수십만에 이르는 미군의 증원은 예정돼 있다. 하지만 특정한 우발사태나 급변사태 발생시 미국이 작전계획이건 개념계획이건 간에 상황을 현실화시켜 군사적으로 개입하고자 할 때 과연 우리는 이런 상황을 전제로 한 미군의 추가 배치를 용인해야하는가.

극단적으로 북핵 위기나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통제를 이유로 부분적 군사개입을 결정하고 미군이 한반도에 전진배치될 때 미군은 전략적 유연성 합의를 근거로 삼으려 한다면 과연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여기에 대항할 수 있을 것인가. 다시 강조하지만, 국제관계는 국가간 계약의 문제인 것이다. 과연 우리 대미 군사 외교 담당자들이 최소한 이 정도의 문제의식과 개념의 혼란까지도 충분히 검토하고 협상에 임했을지에 대해 깊은 회의를 갖고 있다.

6. 지금까지의 참여정부 대미외교 정책과도 모순된다

▲ 녹색연합, 민교협, 민중연대, 참여연대, 평화네트워크, 평통사, 황경운동연합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 20여명은 23일 오전 청와대앞 합동청사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로 인해 한반도가 미국의 군사행동을 지원하는 전초기지가 될 것이라며, 동맹 재편에 관한 국민적 토론과 의견수렴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얼마전까지 참여정부는 전시작전통제권 회수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전략적 유연성의 인정은 한미군사동맹 체제가 한반도를 넘어서 전세계적 차원에서 더욱 공고해짐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전시작전권 환수 논의는 계속될 수 있을 것인가. 정부는 주한미군의 주둔에 따른 방위비 분담을 당연시 해왔다. 그런데 주한미군의 주둔 목적이 물론 한반도 방위에도 있지만 전세계적 전략 차원에서 배치되고 있음이 분명하게 확인되고 있다.

그럼에도 주한미군에 대한 주둔비 분담은 합당한 논리적 근거를 가질 수 있는가. 한반도 방위에 기여하는 비율을 어떻게 평가하고, 앞으로 어느 정도 비율을 분담 혹은 감액시켜 나갈지 계산은 해두었는가. 이 부분에 대한 한미간의 양해는 이루어졌는가. 주한미군에 대한 민·형사상의 특권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한반도 방위를 위해 와 있다는 이유로 특정 범죄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형사상의 면책 특권을 인정해온 것이 현실 아니었는가. 그렇다면 이제 이 부분도 재조정돼야 하지 않을까.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은 주한미군의 법률적, 외교적, 행정적 지위 변경이 뒤따라야 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정부는 이런 심각한 문제들을 알고 있었다는 근거가 있다. 그래서 전략적 유연성의 인정 여부를 '조약'이 아닌 '공동성명'의 형식을 택했다. 조약으로 하게 되면 공론화 과정에서 한미동맹이나 주한미군의 지위에 대한 근본적 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염려했고,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만 된다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주한미군은 이미 장소적으로만 한국에 존재할 뿐 사실상 주(駐)세계미군이 되고 말았다. 최소한 아시아 분쟁을 대비하는 전략적 기동군화 한 것이다.

이와 관련 한미연합토지관리계획(LPP) 협정이나 용산기지이전 협정이 갖는 심각한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용산기지이전 협정시 한국측 전액 비용 부담의 전제는 미국의 의사에 반하는 한국측의 일방적 기지 이전 요구에 있었다.

그런데 이제 미국의 GPR이나 전략적 유연성 정책에 따라 주한미군이 평택으로 이전하게 됐음이 분명히 밝혀졌다. 이를 알고도 용산기지이전 협정을 주도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실무 책임자에 대한 책임 추궁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몰랐다고? 그렇게까지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미 방대한 증거가 외교 문서 등을 통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7. 식량주권만 주권인가 안보주권도 주권이다...비공개 청문회가 해법

심지어 이런 외교문서가 존재한다는 확증도 갖고 있다. '전략적 유연성이 국내에서 논란이 될 경우 용산기지이전 협상이 어려워질 수 있다. 따라서 GPR과의 관계를 부정하고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합의를 용산기지이전 협정의 국회 통과 이후로 설정하겠다는 내부 계획'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일관되게 용산기지이전 협정의 비공개 청문회를 주장해 왔고, 2004년 협정이 국회 비준을 받을 때 필자의 중재하에 정부와 국회 통일외교통상위 간에는 이미 합의까지 됐었다. 쌀 협상은 청문회까지 해놓고도 왜 상임위 차원에서까지 합의된 용산기지이전 협정에 대한 청문회는 아직까지 실시하지 않고 있는가.

식량 주권이 중요한 만큼 국가안보 주권 역시 중요한 요소 아닌가. 국회는 지금이라도 전략적 유연성 문제를 포함한 GPR과 용산기지이전 협정 등에 대한 한미군사외교 청문회를 시작해야 한다. 다만 비공개로 하자. 도대체 못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어려움도 각오해야 한다. '제로섬 게임'적인 냉엄한 구도하에서 자국의 국익을 추구하며 우리 협상팀의 행태 등 그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미국이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는 점도 협상 과정의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기 어려운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현실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황우석 사태' 그 이상의 엄청난 충격을 우리에게 초래할 위험성이 있는 이번 협상 전반에 대한 실태를 광범위하게 검토하고 역사적 교훈으로 남겨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번 ‘한미 장관급 전략대화’ 공동발표문의 또 다른 핵심 쟁점인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동의에 따른 문제점에 대한 글이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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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영남대, 전남대 로스쿨 및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중입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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