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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법사·정보위원회 소속의 최재천 의원(서울 성동 갑·열린우리당)이 지난 19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제1차 한·미 장관급 전략대화'에 대한 글을 보내왔다. '전략적 유연성' 문제를 짚은 23일 글에 이어 두번째인 이 글에서, 최 의원은 정부가 지난해 12월 29일 개최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참여키로 결정해 놓고서도 그 결정을 '보안'에 부쳐 놓았다가, 이번에 워싱턴에서 열린 제1회 한·미 전략대화의 공동성명을 통해 워싱턴발(發)로 국내에 공개한 것이라고 밝혔다. <편집자주>
▲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왼쪽)과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19일 워싱턴 국무부에서 제1차 한·미 장관급 전략대화를 갖기에 앞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정부는 미국이 주도하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Proliferation Security Initiative)에 참여키로 결정했다. 지난 19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제1차 한·미 장관급 전략대화'를 택해서였다.

한·미 외교장관이 전략대화에서 합의한 '전략적 유연성'(Strategic Flexibility)이라는 이슈에 묻혀 한국의 PSI 참여는 어물쩍 넘어가고 말았다. 대미 군사외교 당국자들이 바라는 바대로였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29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미국이 같은 해 8월 중순께 요청해온 'PSI 8단계 협력요청'에 대해 대부분 응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이 결정은 '보안'에 부쳐졌다. 그리고는 이번에 한·미 전략대화의 공동성명을 통해 워싱턴발(發)로 국내에 공개되었다.

PSI는 육상·해상·공중에서 핵·생화학 무기·미사일 등 이른바 대량살상무기(WMD: Weapons of Mass Destruction) 관련 물질 및 부품을 불법수송하는 선박·차량·항공기에 대하여 검문·검색을 통해 차단하자는 구상이다.

이처럼 PSI는 그 개념 자체가 북한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2002년 12월, 미 정보기관이 중동을 향해 운항중이던 북한 국적 '소산'호를 포착한 사건이 그것이다. 당시 미국은 스페인 해군에 협조를 요청하여 지중해에서 '소산'호를 나포하여 스커드 미사일 15기 등 다수의 무기를 발견했다. 그런데 공해 상에서 제3국간 교역을 규제하는 국제법규가 없었고 예멘정부가 적재무기의 소유권을 주장함에 따라 이 선박을 풀어줄 수밖에 없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동안 미국 주도의 PSI 해상훈련은 13여회가 열렸다. 지난 2004년 10월에는 일본 도쿄만에서, 2005년 8월 15일에는 싱가포르만에서 훈련을 실시했다. 당시 미국은 우리 정부에 PSI 참가를 요구하였으나 북한과의 관계를 들어 불참했다. 훈련 직후 미국은 우리 정부에 다시 공식적으로 PSI 참여를 요청했다. 그 요청에 따른 정부 내 결정이 12월 29일이었고, 그에 따른 발표가 이번 공동성명이었다.

이번 동참 결정이 갖는 일반적인 문제점은 '전략적 유연성'의 수용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간의 참여정부 외교안보정책과 전적으로 모순된다는 점, 미국의 세계전략 차원으로 한국의 외교안보전략이 포섭되고 만다는 점, 국민의 참여가 사실상 보장되지 않고 밀실외교의 형태로 결정되었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이 부분은 이미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비판적 기고에서 지적한 바 있기 때문에 자세히 거론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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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자회담은 여전히 표류할 가능성이 높다

대량살상무기는 단순히 미사일 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 지난 2004년 10월 26일 일본 사가미만에서 펼쳐진 미국-일본-호주-프랑스 4개국 대량살상무기해상압수기동훈련중 일본 해상보안청 헬기한대가 해골마크가 그려진 가상 대량살상무기 운반선위로 줄사다라를 내려 정예 대테러요원을 낙하시킬 준비를 하고있다.
ⓒ AP/연합뉴스
다만 두가지의 근본적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이 생각하는, PSI의 전제되는, 대량살상무기(WMD)의 개념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되는 문제가 그 첫째이다.

주로 미국 쪽 언론에 따르면 부시 미 대통령의 PSI 발표 이후 북한은 불법무기 수출 길이 막혀 외화 수입이 크게 감소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마약 밀매와 위폐·위조담배·위조비아그라 제조 등 불법행위를 통해 외화획득을 시도하는 쪽으로 방향전환을 했다는 것이다. 의미 있는 분석이다.

로버트 조지프(Robert Joseph) 미 국무부 군축·국제안보 담당 차관의 2005년 12월 9일 '대량살상무기 확산대책'이라는 제목의 연설이 문제의 핵심을 제시한다. 조지프 차관은 "지난 7월, 조지 부시 대통령의 행정 명령에 따라 북한 11개, 이란 4개, 시리아 1개 법인에 대해 자산을 동결하고 거래를 차단했다"고 밝히고, 미국은 금융수단을 통해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막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었다.

이 연설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미국이 WMD의 개념을 변환 또는 확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대량살상무기를 단순히 미사일 등 하드웨어적인 무기만을 지칭했던 것을 넘어, 넓게는 한 나라의 질서, 혹은 공정한 경제 질서를 해치는 것까지도 포함시키기로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미국은 해상이나 공항 봉쇄를 통해 재래식 대량살상무기 수출의 차단에는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루었다고 판단하고 각종 위조나 밀매, 돈세탁 등은 물론 해외성 범죄의 '젖줄'인 금융을 제재하는 또다른 수단을 통해 북한에 대한 압박을 가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잘 알려지지 않은 '불법행위방지구상(IAI)'을 통해 북한이 마약, 위조담배, 위폐 판매로 벌어들이는 수억 달러 규모의 외화 수입원을 봉쇄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달러 위폐문제에 대한 미국의 강경한 압박도 이런 관점에서라면 손쉽게 이해될 것이다.

우리의 비극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전략적 유연성'의 개념에 대한 이해도 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전략적 유연성'을 수용했던 것처럼, PSI에 전제되는 WMD에 대한 이해부족이 결국 PSI 수용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필자는 판단하기 때문이다.

단순한 '우회전'이 아닌 'U턴'에 가까운 정책 변화... 왜?

▲ 이종석 통일부장관 내정자. PSI 참여를 결정한 지난 12월 29일 당시는 NSC 상임위원장인 정동영 통일부장관은 사의를 표명한 뒤였고, NSC의 실무책임자인 이종석 NSC 사무차장은 통일부장관으로 내정된 시점이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이런 관점에서 볼 때 PSI에 대한 참여는 곧 미국의 북한 압박에 대한 우리 정부의 동의 또는 참여를 의미한다. 그동안 정부는 '북한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며 PSI 참여를 일관되게 반대해 왔다. 그런데 왜, 어떤 이유로 급속하게 정책변환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외교당국자들의 설명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NSC는 2004년 3월 1일 펴낸, 참여정부의 외교안보정책 구상을 담은 <평화번영과 국가안보>라는 책자에서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한반도 평화체제구축이 대북 외교안보정책의 핵심'이라고 정리했다. PSI 참여는 이런 참여정부 외교안보정책의 근간을 뒤흔드는 행위이다. 단순한 '우회전'이 아니라 'U턴'에 가까운 행위이다.

'남북공조'와 '한미동맹'이라는 이분법의 차원을 넘어 앞으로 이 두가지 모순을 어떻게 전략적으로 관리하고 이끌어 나갈지에 대한 어떠한 비전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두 번째 문제이다. 북한이 이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우리의 남북화해협력정책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해명이 없다.

왜 이런 핵심사안에 대해 NSC의 기획·조정 책임자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만 있는가. 더이상 이것은 인사문제가 아니라 정책의 문제이다. 인사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참여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의 문제인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나라당의 대북정책과 무슨 차이가 있게 되는가. 대북정책 차원에서는 이미 양당의 차이는 없어지고 말았다. 사실상 참여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을 주도해온 NSC가 지금이라도 나서서 국민에게 이해를 구하고, 왜 U턴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정확한 해명이 있어야만 한다.

위기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참여정부는 북핵 위기 속에서 출발했다. 그래서 북핵 위기 해결이 외교안보정책의 최우선 과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북핵 위기 해결이라는 대명제 아래 여타 외교안보영역에서의 국익은 사실상 포기될 수밖에 없었다. 그 현실적 역학관계와 그로 인한 '약자의 슬픔'은 백번 공감한다.

하지만 지금 참여정부의 외교안보정책 분야는 동북아 평화와 번영이라는 총론적 차원의 비전만 요란할 뿐, 실천적 각론에서의 구체적 진행상황은 '문민정부' 시절로 되돌아가고 있다. 외교적 부실과 전략적 오판으로 인해 줄 것은 필요 이상으로 주고, 실리는 차지하지 못한 채 국민의 부담은 가중되고 한반도는 다시 불안상태로 회귀하고 있다.

오는 1월 31일로 예정된 부시의 국정연설에서는 PSI와 위폐문제에 대한 강경입장이 발표될 가능성이 높다. 다음달로 예정된 미국의 4개년 국방계획(QDR)에서도 역시 이런 입장이 강조되고 WMD 보유국가에 대한 봉쇄 혹은 '체제변환'이 거론될 수도 있다. 물론 필자는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렇게 될 경우, 북한의 반응과 한반도에 미칠 불안한 영향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 최재천 의원
필자는 지난해 12월 5일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에서 "지금은 국가정보원과 외교통상부·국방부의 해외정보 수집·분석 능력, 외교부·통일부·국방부의 외교안보 정책 집행 능력, 그리고 NSC의 외교안보 정책에 대한 기획·조정 능력에 대해 총체적인 의문을 던지고 그 해결책을 모색할 때"라고 적었다. 그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나아가 총론과 각론의 불일치에 따른 위험성을 어떻게 완화시켜 나갈지가 지금은 더 큰 문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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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영남대, 전남대 로스쿨 및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중입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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