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난 몸이 아파도 아프다는 말을 잘 하지 않는 편이다. 오랜 사회 생활로 씩씩함이 몸에 밴 이유도 있겠지만 '연약함'이라는 단어와 행위가 내게는 그리 익숙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 내가 얼마 전 몸이 많이 아팠다. 감기와 몸살이 함께 오는지 몸이 으슬으슬하고 좀처럼 정신이 들지 않았다.

놀아주지 않으면 짜증을 내고 달달 볶아대던 엄마도 힘없이 소파에 누워 있는 내가 안스러웠던지 옆에 앉아 머리를 쓸어주었다. 엄마가 내 머리를 쓸어주자 몸도 아프고 많이 지쳐 있던 난 엄마에게 응석과 엄살을 부리고 싶어졌다.

"엄마, 나 많이 아파. 감기 몸살걸렸나봐. 엄마 내 머리 좀 만져봐. 열 많이 나지?"

귀가 어두운 엄마를 위해 큰 소리로 말해야 했지만 기운이 없는 난 혼잣말하듯 힘없이 말했다. 그런데 엄마가 나의 말을 알아들었다.

"아퍼?"
"응, 엄마 나 많이 아파."

아프다는 나의 말에 엄마는 걱정스레 내 얼굴을 바라본다.

"우리 딸 아프면 어떡하냐? 니가 아픈 거 다 나 주고 넌 아프지 마라"

따뜻한 위로의 말이 듣고 싶었던 터였지만 엄마의 그 말에 난 무엇인가 얻어맞은 듯 멍해졌다. 이 세상에 누가 내 아픈 것을 대신 아프고 싶어할까? 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80평생을 고생만 하고, 지금은 신경통은 물론 치매와 파킨슨씨라는 병마저 얻은 힘없는 노인이 되어버린 엄마, 혼자서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정신마저 온전하지 않은 노인이 아직은 젊디 젊은 당신의 딸이 걸린 가벼운 감기몸살까지도 자신에게 모두 주라고 한다. 그리고는 '내 딸아, 너는 제발 아프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

약 한 봉지 사다줄 힘도 없는, 늙고 병든 엄마가 아픈 딸에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파줄 수 있다면 대신 아파주는 일이라고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자신의 지난 인생마저 잊어가는 병에 걸린 엄마가 자신의 딸을 잊지 않고 그 깊은 사랑도 잊지 않았던 것이다. 엄마의 가슴 시린 자식 사랑에 난 이불을 뒤집어 쓰고 한참을 울었다.

여섯 자식 병수발에 다 녹은 어머니의 가슴

엄마가 건강하던 그 시절, 여섯명의 자식들을 키우며 겪어야 했던 크고 작은 병수발은 내 기억 속에 무수히 남아 있다.

오빠는 대수술을 여러번 했을 정도로 유독 큰 병을 자주 앓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수술을 하기 시작한 오빠는 이후 대학병원에서 받은 대수술만 해도 수없이 많다. 작은 언니 역시 대학병원에서 몇 번씩 대수술을 받았을 정도로 병원신세를 많이 졌다. 나 또한 급성 신장염과 교통사고 등으로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다리가 아프다는 자식의 다리를 밤 새도록 주물러 주기도 하고 배가 아프다는 자식들의 배를 쓸어주며 '내 손은 약손'이라며 또 한 밤을 새기도 했다. 배탈이 난 자식에게 흰죽을 쑤어 먹이기도 하고 독감에 걸린 자식의 약을 사기 위해 문닫힌 약국의 문을 수없이 두들기기도 했다.

엄마는 그렇게 여섯 자식들을 키웠다. 자식들의 크고 작은 병수발을 들던 엄마의 가슴은 그때 어떠했을까? 치매에 걸린 지금도 딸의 감기몸살마저 자신이 대신 아파주고 싶어하는 엄마가 자식들이 간을 떼어내고 심장 혹은 손을 이식하는 대수술을 할때 엄마의 가슴은 혹시 그때 다 녹아 내린 것은 아닐까?

얼마 전 용인으로 놀러오신 아저씨를 서울로 모셔다 드렸다. 아저씨는 차 안에서 이웃집 할머니가 '제때 잘 죽은 사연'을 열심히 말씀하셨다.

고급 공무원인 아들이 효도하는 모습은 옆에서 보기에도 부럽기까지 했다던 그 이웃집 할머니는 아침 일찍 산에 오르다 갑자기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런데 아들이 현직에 있을때 죽었으니 부의금이 엄청나게 들어왔을 것이고 그러기에 '때를 잘 맞춰 잘 죽었다'는 것이다.

아저씨의 말씀이 부모님 돌아가신 것에 대한 슬픔보다는 부의금 들어오는 것을 중요시 하는 듯하여 다소 겸연쩍었다.

"아무리 돈도 돈이지만 부모님이 갑자기 돌아가시면 자식들이 너무 허무할 것 같다"고 하자 아저씨는 손까지 내저으며 말씀을 이었다.

"아냐, 늙은이들은 죽을때 잘 죽어야 자식들한테 그나마 짐이 안돼."

"그 할망구 자식이 지금 현직에 있으니 조의금도 많이 들어오니깐, 부모가 갑자기 죽어도 자식들한테 짐이 안 되잖아. 만약 회사 그만두었을때 죽어봐. 어디 사람들이 찾아 오기나 해? 그럼 장사 치른다고 이리저리 돈이나 꾸러 다니고 그럼 자식들한테 뭐 좋은 게 있어? 그저 늙은이들은 때를 잘 맞춰 죽어야 나 죽은 다음에 자식들 욕 안 맥이는 법이야."

때 맞춰 잘 죽으려는 부모의 자식 사랑

부모 마음이란 것이 이런 것일까? 죽는 날도 때를 잘 맞춰 죽어야 자식들에게 부담주지 않는 것이라는 아저씨의 깊은 자식 사랑에 난 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 자식들은 자신의 죽음마저 자식들에게 부담이 되고 싶지 않은 부모의 마음을 알기나 하는 걸까?

내가 엄마의 깊고 한없는 사랑을 이처럼 가슴 속 깊이 느꼈다 해도 난 빈말이라도 '엄마 아픈 거 다 나 주고 엄마는 아프지마'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대신 내가 하는 말이라고는 고작 "엄마 나랑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자" 이 정도뿐이다. 이것이 부모와 자식의 차이가 아닌가 싶다.

엄마와 딸이라는 인연만으로 만난 나에게 엄마는 지난 사십여년 자신의 작은 기운마저 아낌없이 다 내주고 지금은 빈껍데기의 몸으로 남아 있다.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 엄마의 사랑을 그대로 채워 돌려드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엄마가 내게 한 그 말을 결코 잊지 않으리라.

"너 아픈거 다 나 주고 넌 아프지 말아라..."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시민 누구나 기자가 될 수 있다는 오마이뉴스의 정신에 공감하여 시민 기자로 가입하였으며 이 사회에서 약자에게 가해지는 차별을 글로 고발함으로써 이 사회가 평등한 사회가 되는 날을 앞당기는 역할을 작게나마 하고 싶었습니다. 여성문제, 노인문제등에 특히 관심이 많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