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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소에 모셔진 김순례 할머니 영정
ⓒ 심은식
2일 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막 옷을 갈아입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오마이뉴스> 직원의 전화였다. 그는 혹시 신희철 시민기자의 어머니 사진이 있는지 물었다. 다른 기사에 사진이 필요한 모양이라고 생각했는데 영정 사진이 필요하다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야기가 이어졌다.

지난 기사를 본 분들이라면 알겠지만 나에게도 치매를 앓던 할머니가 계셨다. 당시 어렸던 나는 가끔씩 치매 할머니가 무섭고 두려웠다. 그리고 가끔은 그런 할머니를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 할머니에게 마음을 다하지 못했다는 불편함이 여전히 가슴에 남아 있다.

그러던 중 알게 된 신희철 기자님의 기사는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치매 노인을 다시 바라보게 했고 또 용기를 심어줬다. 나는 김순례 할머니의 이야기를 읽어가며 웃고 울었다. 비록 기사 취재를 통해 맺어진 인연이었지만, 할머니는 내게도 참으로 각별한 분이셨다.

영정으로 쓸 사진을 찾느라 황급히 컴퓨터와 필름들을 뒤적였다. 그러나 손은 저 혼자 분주할 뿐 머릿속은 멍했다. 지난해 신희철 기자님과 김순례 할머니에 대한 기사를 쓴 인연으로 그동안 때때로 찾아 뵙고 할머니의 사진을 찍어왔다. 할머니 사진은 많고 많았지만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럴 수는 없는데, 이럴 수는 없는데…. 몇 달 전 생신날 인사드리고 아직 한 번도 못 찾아뵈었는데 이렇게 가시다니. 생신날 시간을 잘못 알아 촛불 끄는 모습도 못 찍어드렸는데, 내년에는 꼭 찍자고 약속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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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섬주섬 짐을 챙겨 장례식장으로 달려갔다. 도착해보니 너무 늦은 시간이라 주변에 연락을 못해서인지 빈소에는 가족들만 계셨다. 신희철 기자님을 만나 인사를 하는데 얼마나 충격이 컸는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였다.

흔히 불효한 자식이 부모님 돌아가신 후 가장 많이 운다고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다. 나는 신희철 기자님이 얼마나 헌신적이고 큰사랑으로 어머니를 대했는지 예전부터 지켜봤다. 그래서 신 기자님의 눈물이 얼마나 무겁고 아픈지 그리고 얼마나 뜨겁고 비통한지 알 수 있었다. 그 건 이 세상 전부보다 무겁고 불보다 뜨거운 눈물이다.

그리고 나에게도 김순례 할머니의 부음은 슬픔이다. 아무리 이제 편해지셨다고 한들, 호상이라 한들,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이제는 영영 이별이다. 다시는 할머니의 웃는 얼굴을 볼 수도, 주름지지만 보들보들하고 따뜻한 손을 잡아볼 수 없다.

▲ 지난 생신날 환하게 웃으시던 할머니. 할머니를 찍은 마지막 사진이다.
ⓒ 심은식
사는 일도 떠나는 일도 자연의 순리라지만 인사도 없이 왜 그리 급히 가셨는지. 빈소에 올려놓은 사진 속에서 할머니는 웃고 계시다. 사진을 찍을 땐 할머니의 영정 사진이 되리라고 상상도 못했다. 그때 할머니는 당신의 어머니와 아버지 이야기를 했다. 어쩌면 지금쯤 할머니는 그렇게 보고 싶어하시던 부모님을 만나고 계실지도 모른다.

습관적으로 카메라를 챙겨가기는 했지만 도착해서는 이걸 왜 들고 왔나 싶었다. 혹 누군가 기사라도 쓰라고 하면 큰일이다 싶었다. 우려 대로 장례식장을 떠나려는 순간 부고 기사 정도라도 써보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그러나 쓸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동안 할머니를 만날 때마다 영정사진을 미리 찍어둔다고 하면서도 막상 할머니의 웃는 얼굴을 마주하면 차마 찍을 수 없었다. 그런데 부고기사라니, 못 쓸 게 뻔했다. 그러나 나는 택시를 탔다가 다시 내리고 말았다. 그리고 장례식장으로 달려가 빈소에 모셔진 할머니 영정을 찍었다. 그리고 이렇게 기사를 쓰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떠나간 분을 위해 함께 기도해줬으면 좋겠다. 남은 가족을 함께 위로해주면 좋겠다. 6월의 새벽 공기가 쓰디 쓰다. 그리고 춥다.

"할머니 안녕히 가세요. 그리고 신희철 기자님 힘내세요."

부 고

슬픈 소식을 전합니다. 6월 2일 저녁, 신희철 기자님의 어머니 김순례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2주전 심근경색으로 입원하셨다가 다행히 고비를 넘기고 어제(2일) 저녁 퇴원예정이셨는데 갑자기 상태가 악화되어 그만 유명을 달리하셨습니다. 고비를 넘기고 마음을 놓던 차라 안타까움이 더 큽니다. 향년 80세.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빈소 : 분당 서울대 병원 장례식장 1호실.
- 발인 : 2006년 6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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