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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시 고덕면 일대 개발예정지 539만평. 반대대책위 사무실에 걸린 이 지도에는 '결사반대' 구호가 적혀 있다.
평택시 고덕면 일대 개발예정지 539만평. 반대대책위 사무실에 걸린 이 지도에는 '결사반대' 구호가 적혀 있다. ⓒ 문만식
평택미군기지 확장 예정 지역인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와 도두2리. 기지 확장에 저항하는 이곳 주민들의 촛불행사가 6일 현재로 523일을 맞았다. 이런 와중에 대추리에서 20여Km 떨어진 고덕면 일대 주민들 사이에는 불안한 기운이 몇 달째 감돌고 있다.

지난해 12월 22일 건설교통부는 평택시 모곡·서정·장당·지제동 및 고덕면 일원에 539만 평 규모의 복합 신도시를 조성한다는 평택 국제화계획지구 개발계획을 발표했다.

이곳에 총 6만4000여 가구를 오는 2009년부터 단계적으로 공급해 자연과 사람이 살아 숨쉬는 저밀도 친환경도시를 조성할 것이라고 건교부는 밝혔다. 이같은 계획은 정부가 지난해 12월 6일 '주한미군기지 이전에 따른 평택시 등의 지원에 관한 특별법'(평택지원특별법)에 근거한 평택지역개발계획을 확정한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현지 주민들은 12월 23일부터 1월 9일까지 평택시가 실시한 국제화계획지구개발(안) 주민공람에서 73.5%의 반대 의견을 보였다. 하지만 이같이 높은 반대 의견이 개발사업 보류로 이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기실 이 지역 복합신도시 건설은 이웃한 팽성읍의 미군기지 확장 사업과 한 짝을 이루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고덕면 해창3리 들머리. '강제수용 결사반대' 구호가 담벼락에 선명하다.
고덕면 해창3리 들머리. '강제수용 결사반대' 구호가 담벼락에 선명하다. ⓒ 문만식
고덕면 소재지 삼거리에 걸려 있는 신도시 반대 펼침막들. 한국토지공사에 대한 반감도 표현돼 있다.
고덕면 소재지 삼거리에 걸려 있는 신도시 반대 펼침막들. 한국토지공사에 대한 반감도 표현돼 있다. ⓒ 문만식
그 가운데 지난 5일 기자가 찾은 고덕면에는 '평택미군기지 확장반대' '강제수용 결사반대' 등의 구호들이 뒤덮고 있었다. 오전 10시 대추리에서 승합차를 이용해 고덕으로 출발해 고덕면 해창3·4리에는 20여 분 만에 도착했다.

해창3·4리로 들어서는 마을 진입로에는 '강제수용 결사반대' 등 구호가 적힌 깃발이 줄지어 꽂혀 있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부녀회가 운영하는 듯한 가게가 보였다. 가게 담벼락은 물론 이웃한 다른 집들 담에도 '강제수용 반대' '죽어도 못 나간다' '손학규(경기도지사)·송명호(평택시장) 사퇴하라' 등의 구호가 붉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해창리를 나와 고덕면 소재지까지는 차로 채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면소재지 삼거리에는 개발에 반대하는 구호가 적힌 펼침막이 걸려 있었다. 삼거리에서 모퉁이 면사무소와 우체국 바로 옆에 '평택국제화계획지구반대 대책위원회' 사무실 현판이 보였다.

대책위 사무실에서 만난 좌교2리 이장인 택시기사 임덕선(53)씨. 하얀 철모에 소망글들을 직접 적어서 쓰고 다닌다.
대책위 사무실에서 만난 좌교2리 이장인 택시기사 임덕선(53)씨. 하얀 철모에 소망글들을 직접 적어서 쓰고 다닌다. ⓒ 문만식
대책위는 이날 공식 결성식을 앞두고 있었다. 평택시청 앞에 모여 결성 집회를 갖고 경찰서를 거쳐 평택역까지 행진한 다음 역에서 마무리집회를 가질 계획이었다. 행사 준비로 바쁜 한 임원은 "서탄면 사람들이 1일부터 20일까지 시청에 집회 신고를 해놨는데 어렵게 협조를 받아 하루를 뺐다"고 말했다. 오산 미공군기지 확장이 추진되는 서탄은 기지 건설을 위한 모래 채취로 하천이 심하게 파괴되고 있는 실정이다.

집회 시작 시간은 오후 2시. 아직 12시가 되지 않은 시간이어서 전투기 소음으로 이름난 오산 공군기지 인접 마을인 황구지리, 금각리를 찾았다. 일요일이어서인지 동네는 조용했다. 한국관광고등학교를 스쳐지나가는 동안 미군의 연립주택과 휴일을 즐기는 미국인들만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고덕면 율포리(밤개울) 농기계 보관창고에는 "마을을 지켜내자"는 내용을 담은 이장의 호소문이 눈에 띈다.
고덕면 율포리(밤개울) 농기계 보관창고에는 "마을을 지켜내자"는 내용을 담은 이장의 호소문이 눈에 띈다. ⓒ 문만식
금각리를 빠져나와 고덕면의 또 다른 개발 예정 지역인 율포리에 들렀다. 매끈한 함석으로 커다랗게 지은 농기계 보관 창고에는 마을 이장이 주민들에게 쓴 호소문이 붙어 있었다.

"평생을 밤개울에서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살면서 많이 불러왔던 친근한 들녘의 이름들 뒷머리, 머리돌, 쪽쪽골, 샛반다리, 먼짓물, 검둥이, 방주안, 갈치뱀이, 전용어, 시우지.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들녘의 이름들이 밤개울 주민들의 기억에서 사라질 될 안타까운 실정에 놓여 있게 되었습니다."

기자를 안내해 준 문두식씨가 사는 좌교리를 지나 30여 분 만에 평택시청에 다다랐다. 행사 시작 30분 전인 1시 30분쯤에는 관광버스를 타고 올라온 주민 천여 명이 운집했다. 데모라곤 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 워낙 보수적이어서 농민회 회원이 거의 없다는 고덕 주민들. 미리 도착해 임원들의 안내에 따라 구호 제창을 연습하는 모습이 보였다.

300년 세대를 이어온 삶의 터전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이곳 주민들을 비웃듯 신도시를 수식하는 말은 '평화'다. 고덕면 등 21개 마을 주민 5천여 명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앞날이 어떻게 될지 예측하긴 어렵지만 현재 이들이 분명히 알고 있는 사실은 평택미군기지 확장 계획과 신도시 개발 계획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점이다.

"미군 위한 국제평화도시 기필코 막으리라" "대한민국은 강제수용 공화국" 등 구호들이 등장했다.
"미군 위한 국제평화도시 기필코 막으리라" "대한민국은 강제수용 공화국" 등 구호들이 등장했다. ⓒ 문만식
평택시청에 모였다가 1시간 가량 행진해 평택역 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있는 고덕면 일대 주민들.
평택시청에 모였다가 1시간 가량 행진해 평택역 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있는 고덕면 일대 주민들. ⓒ 문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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