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사람이 떠난 빈집. 담장이 반쯤 무너져 내렸다. 수리되기 전 모습.
사람이 떠난 빈집. 담장이 반쯤 무너져 내렸다. 수리되기 전 모습.
"이삿짐 싸면 바로 따라붙는 게 고물상이에요. 사람 사는 동네가 폐허가 되고 저녁에 귀신 나올까봐 지나다니지를 못해요."

"지난 여름부터 한 집 두 집 사람들이 마을을 떠나고 있어요. 동네를 지키는 건 사람인데 앞으로 떠날 사람들은 더 많아질 거예요."

정부가 미군기지 확장을 추진하면서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는 경기도 평택의 농촌마을 대추리. 그 이름만큼 풍성한 수확으로 사람들이 북적이던 이 마을의 뒤숭숭한 풍경을 전해주는 주민들의 말이다.

140여 가구가 살던 마을이지만 국방부에 집과 논을 팔고 이사를 떠난 집이 스무 가구가 넘는다. 하루에도 두어 차례 고물상이 마을에 들고나면서 창틀부터 해서 쇠붙이란 쇠붙이는 다 뜯겨나간다. 집안이 훤히 들여다뵈는 모습이 흉측하다. 거기에 계량기가 철거되고 전기가 끊기면서 물도 사용할 수 없다.

군사기지가 될 땅, 어차피 누가 들어와 살 것도 아니라 생각하며 떠나는 사람들에게 담이 무너지는 일쯤은 신경 쓸만한 일이 아니다.

버려진 빈집에 황토를 바르고 '안내소' 현판도 내걸었다.
버려진 빈집에 황토를 바르고 '안내소' 현판도 내걸었다. ⓒ 문만식
하지만 병들었기에, 평생 농사지으며 살던 고향땅이기에, 군사기지에 쫓겨다녀온 삶이 진절머리가 나서, 외로운 도시생활을 견딜 수 없을 것 같기에 끝내 집과 땅을 팔지 않고 있는 주민들도 많다. 불규칙적으로 드나드는 시내버스를 한두 사람씩 서서 기다리는 풍경만 눈에 띄던 마을 어귀에 주민들이 11일 오전 모여들었다.

같은 시간 녹두밭머리라 불리는 이 마을 1반뜸에 사는 황 할머니 집에서는 솥단지 두 개에서 팥죽이 끓고 있었다. 할머니는 한국전쟁 동짓달피난 당시 미군기지가 들어서면서 옛 대추리에서 쫓겨나와 기지 철조망 바로 바깥에 터를 잡았다.

척박한 땅에서도 그저 잘 자라준다는 녹두. 1반뜸은 전시에 쫓겨나온 가난한 농민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녹두밭머리다. 빈집을 고쳐 쓸만한 곳으로 만든다기에 황 할머니는 반가운 마음에 기꺼이 팥죽 선물을 준비했다.

앉아서 기다릴 수 있도록 한 버스정류장. 아직은 공사중.
앉아서 기다릴 수 있도록 한 버스정류장. 아직은 공사중. ⓒ 문만식

빈집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

빈집에서는 '빈집을 평화문화 공간으로' 만든다는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었다. 일찍부터 대추리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시민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준비하면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지붕에는 '우리 동네 지킴이 안내소 : 사진관, 법률사무소, 찻집, 헌옷가게'라고 쓰인 현판이 걸리고 집 공터에 설치된 투명 비닐 천막 위에는 '공사 중 : 간이 버스정류장'이라는 알림판도 걸렸다.

대추리를 평화마을로 만들자는 긍정적인 캠페인을 벌이는 이유 때문인지 기자회견을 준비한 다산인권센터, 미군기지확장반대 평택대책위, 민변, 평화바람 회원들과 주민들 얼굴은 밝아보였다. 평화유랑단 평화바람의 반지씨는 "버리고 간 집이어서 청소하기가 두 배로 힘들었다"면서 "고생은 했지만 결과물이 오늘 공개돼서 너무 좋다"고 말했다.

간이 버스정류장 설치를 맡아 일한 평택대책위 이은우씨는 "새 정류장을 '행복정류장'이라 부르고 싶다"며 "많은 사람이 이 정류장에 내리면 행복해지도록 대추리를 진정한 평화마을로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평택미군기지 확장 저지, 대추리 평화마을 만들기 펼침막을 든 참가자들
평택미군기지 확장 저지, 대추리 평화마을 만들기 펼침막을 든 참가자들 ⓒ 문만식
집은 언제 버려졌었느냐는 듯이 깨끗하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졌다. 주민들이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셔 건강차를 대접한다는 뜻으로 차린 전통찻집이 거실 한쪽을 장식했다. 작은방은 빈집들에 버려진 쓸만한 옷들을 모은 헌옷가게, 또 다른 작은방에는 영사기를 갖춰놓은 상영관이 들어섰다.

사진가 노순택, 하루 사진관 열어

거실 한쪽 벽면은 사진가 노순택씨가 '너른 못'이라는 표제 아래 찍어온 주민 사진들이 걸렸다. 지난 가을 대추초등학교에 하루사진관을 열어 주민들의 영정사진과 가족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던 그는 "땅을 지키려는 주민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더 많이 찍어드리기 위해서 오늘부터 잠깐 이사 왔다"며 "대추리 상설사진관을 많이 애용해 달라"고 말했다.

평화바람 단원의 오카리나 반주에 맞춰 '고향의 봄'을 부르는 주민들
평화바람 단원의 오카리나 반주에 맞춰 '고향의 봄'을 부르는 주민들 ⓒ 문만식
다산인권센터 등은 이날 기자회견문을 통해 "빈집을 문화공간으로 만드는 운동은 군사기지를 확보하기 위해 사람을 내모는 국방부에 항의하고 빈집을 평화로운 용도로 이용한다는 의미를 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대추리 평화마을 만들기 운동은 전쟁위기 고조에 반대하고 미군기지로부터 생명의 논을 지키려는 팽성 주민들의 염원을 반영한 비폭력 불복종운동"이라고 밝혔다.

현재 대추리에는 이날 기자회견이 열린 '평택지킴이 안내소 및 대추리 문화갤러리'와 '평택지킴이네 집', 그리고 재활용품전시장은 '나눔공작소-부활'과 어린이놀이방 '생각을 키우는 놀이방' 등 네 곳이 공공시설로 이용되고 있다. 또 수원여성회와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등 다섯 개 시민단체, 그리고 뜻을 가진 개인들이 빈집 입주를 준비하고 있다.

한편 정부는 지난해 11월 23일의 수용재결에 이은 12월 22일의 공탁으로 농민들의 집과 농토에 대한 소유권을 강제로 이전해갔다. 따라서 주민들이 반발하는 한 강제철거 절차만이 남겨진 셈이다.

트랙터 전국순례 이어 평화콘서트 계획

지난 3일 팽성주민 트랙터 전국 평화순례가 시작되면서 트랙터들이 마을을 벗어나고 있는 모습
지난 3일 팽성주민 트랙터 전국 평화순례가 시작되면서 트랙터들이 마을을 벗어나고 있는 모습 ⓒ 문만식
지역 주민들로 구성된 미군기지확장반대 팽성대책위는 이에 항의하며 지난 3일부터 11일 동안의 일정으로 트랙터 일곱 대를 몰고 전국 순례를 벌이고 있다. 또 16일에는 국방부가 봄 농사를 못 짓게 할 것에 대비해 논에 천막을 치고 생활하는 '평화텐트' 기자회견이 예정돼 있다.

다음 달부터는 수용예정지가 고향인 가수 정태춘씨를 비롯한 문화예술인들이 기지 확장 반대 선언을 시작으로 주마다 한 차례씩 대추리에서 평화콘서트를 연다는 계획이다.

덧붙이는 글 | 문만식 기자는 평화유랑단 평화바람 활동가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