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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히틀러의 최후'는 미스터리에 속해 있었다. '러시아로 끌려가 생을 마쳤다', '유보트를 타고 남미로 탈출했다', '더블린에서 여장을 한 것이 목격되었다' 같은 소문들을 지나 '남극에 기지를 짓고 UFO를 보내고 있다'는 수준에 이르면 세계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쳐간 장본인의 최후치고는 너무 한쪽으로 달려간 것이 아니었는지.

▲ <히틀러 최후의 14일> 표지
ⓒ 교양인
<히틀러 최후의 14일>은 여러 '설'로 둘러싸여 있던 히틀러의 최후를 역사의 무대로 옮겨 놓고 있다. 저자 요하힘 페스트는 역사가이자 저널리스트로 대표작 <히틀러 평전>을 비롯하여 히틀러와 제3제국에 관한 권위자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책 자체는 반나절 남짓이면 읽히는 소품이지만 히틀러의 마지막 나날들을 눈앞에 다큐멘터리 영상이 떠오르듯 정갈하게 묘사해 나가면서 히틀러와 제3제국에 대한 쟁점과 평가들을 알차게 엮어내고 있다. 여기에 지금까지 나온 히틀러 최후에 대한 여러 자료와 견해들을 교차 확인하여 가장 사실에 근접한 것들을 모아 놓았다는 점에서도 이 책이 가지는 가치가 있다.

역사에서 개인이 차지하는 역할을 고려하더라도 히틀러의 광기 때문에 2차대전이 일어났다는 식으로 손쉽게 정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1차대전이 남긴 유산아래 세계 주도권을 놓고 벌이던 강대국들의 갈등이 누적되어 2차대전으로 치달은 것이겠지만 그럼에도 히틀러라는 개인이 가진 강력한 개성은 이런 모든 변수들을 압도하고 그 한 사람만을 보도록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어쩌면 히틀러 최후에 대해 이런저런 공상이 꼬리를 무는 것도 히틀러라는 개인이 가진 그 독특한 개성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지 않은 이들이 매력까지 느끼는 히틀러의 카리스마에 비한다면 '히틀러 최후의 14일'에 묘사된 그의 마지막 나날들은 벙커 속에 갇힌 누추한 시간들이다. 턱 밑까지 다가온 종말을 느끼며 체념하고 죽음을 받아들이려는 마음과 내가 종말을 맞는다면 세상 역시 종말을 맞게 하리라는 광기가 공존한다. 또 존재하지도 않는 병력을 지도 위에 놓고 벌이는 상상 속 작전들과 점성술에 기대보는 부질없는 희망이 안전하긴 하지만 고립되고 닫혀 있는 지하 벙커라는 공간에 응축되어 있다.

흥미롭게도 히틀러는 권력을 잡고 총리가 된 1933년부터 총리 공관 지하에 벙커를 만들라는 지시를 내린 것을 시작으로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던 1940년, 1942년에도 계속 더 깊은 곳에 벙커를 지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처음으로 히틀러 전기를 썼던 콘라트 하이덴은 히틀러의 가장 내적인 본질은 열정, 망상, 공격성 등이 뒤섞인 '도망 중의 허풍'이라고 표현했는데 어쩌면 벙커 속에 도사린 채 오페라 같은 극적인 종말을 꿈꾸며 그 자신이 느끼는 두려움만큼 허황된 승리의 구호와 반격 지시를 밖으로 내 보내는 히틀러야 말로 진짜 히틀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 막강한 전력을 갖춘 소련군 정예 부대에 맞서기 위해 베를린 거리에 배치된 15세 소년과 나이든 병사. 히틀러를 선택한 독일은 그 대가를 처절한 몰락으로 치르게 되었다.
ⓒ 교양인
하지만 비극은 벙커 안에서 스스로 자초한 죽음을 맞이하는 히틀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벙커 밖에서 '지키든지 아니면 몰락하라!'같은 허망한 명령에 이끌려 강력한 소련군 앞에 먹잇감으로 내던져진 한 줌도 되지 않는 소년과 노인들 그리고 패잔병들에 있다. 소련군이 다가옴에 따라 베를린에서는 술과 쾌락 그리고 집단 자살의 종말론적 광기가 번져 나가는데 적극적으로 히틀러를 지지했건 무지 또는 무기력으로 방관했건 간에 히틀러를 택한 독일은 그 대가를 처절한 몰락으로 치러야 했다.

눈을 편하게 하는 편집에 흥미로운 사진들이 삽입되어 읽는 이를 돕는 것은 이 책의 장점이다. 반면 문맥이 매끄럽지 못하고 기존에 통용되던 군사용어를 고려하지 않은 번역은 아쉬운 부분이다. 또 원서가 책을 복잡하게 만드는 각주를 배제한 것은 이런 내용에 대해 이해가 높은 독일에서는 좋은 선택일 수 있었겠지만 한국 독자를 고려하여 각주를 첨가하거나 별첨 자료를 덧붙이는 방안도 고려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요즘 독자들이 자주 느끼는 불만으로 굳이 양장으로 책값을 높였어야 했는가 하는 아쉬움도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동부전선에 대한 책들이 여럿 나왔는데 여기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이 책으로 마무리를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히틀러 개인에 대해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많은 이들이 권하는 <히틀러 평전>에 이 책을 더해 독서목록을 작성해 보아도 좋을 것이고 관심이 군사나 역사에 한정되지 않는 독자라면 정신분석으로 히틀러를 살펴본 책들이나 리더십 관점에서 히틀러를 살펴본 경영서적으로 발걸음을 옮겨 보는 것은 또 어떨까 싶다.

<히틀러 최후의 14일> 책 곳곳에서 전쟁을 바라보는 독일인들의 반성과 다짐을 만날 수 있다. 히틀러가 내 걸고 수행했던 2차대전을 통한 확장 정책은 히틀러 이전에 이미 독일인들 사이에서 그 욕구가 뭉쳐 나가고 있던 것이라는 사실을 지적하며 히틀러 개인의 광기에 모든 책임을 돌리기 보다는 그에 동조하고 그가 이끄는 대로 달려 나갔던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성숙한 입장을 만날 수 있다. 결국 당시 독일에는 히틀러라는 인물과 그의 정책을 검증하고 제어할 성숙한 시민사회가 존재하지 않았고 그 결과 독일 자신은 물론 세계가 큰 대가를 치렀다는 반성에 이르게 된다.

이런 독일의 양심과 비교하여 반성은커녕 객관적인 역사 서술마저 거부하는 요즘 일본의 작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모쪼록 일본인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나 무엇보다 우리 자신을 포함한 같은 시대 사람들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일본 시민사회의 성숙한 입장을 기대해 보지만 전망이 밝지 않아 씁쓸하고 두려울 따름이다.

우리 자신도 지난 시절 일본 침략에 희생자가 되었던 원인은 무엇이었는지 냉정하게 돌아보고 그런 아픔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보다 투철한 역사의식을 가져야 할 때가 아닐지. 국사가 홀대받는 선택 과목인 나라에서 산다는 것을 불안하게 느끼며 필자가 수첩에 적어 놓고 때때로 되새기는 글월 한 자락 소개해 올리며 마칠까 한다.

'역사란 무엇인가. 한 사람이 잘못한 값을 모든 사람이 물어야 하고, 한 시대의 실패를 다음 시대가 회복할 책임을 지는 것이다.' -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 중에서

덧붙이는 글 | 월간 플래툰에 실렸던 기사입니다.

2005년에 출간된 책으로 독일에서는 이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 <몰락>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고 일본에서도 개봉되어 화제를 불러일으켰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영화는 개봉되지 못했고 책도 널리 알려지지는 못했습니다.

최근 어느 모임에 나갔다가 나치 복장을 차려입은 청소년들을 만났는데 히틀러를 우상이라 하더군요. 또 최근 월드컵이라는 유령이 돈다는 비판 글에서 히틀러가 언급된 것처럼 여전히 히틀러는 독재자의 대명사로 쓰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히틀러에 대해 몇몇 이미지만을 가지고 있을 뿐 잘 알고 있지 못한 것도 사실일 것입니다. 히틀러의 최후를 다룬 이 책은 소품이며 제목 그대로 최후만을 다루고 있지만 독재자의 최후야 말로 그를 압축하는 순간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요즘 영화와 드라마로 재연되어 화제를 모았던 고 박정희 대통령의 최후를 떠올렸습니다. 화려한 술 자리에서 최후를 맞았지만 그 역시 벙커 속에 갇혀 대중과 단절되면서 몰락한 것인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히틀러 최후의 14일

요아힘 페스트 지음, 안인희 옮김, 교양인(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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