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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저러니? 박해일은 완전히 발정난 개 같네. 저렇게 못 참겠어?"
"아휴, 엄마도 참…. 그냥 영화에 집중하세요."
"봉태규 좀 봐라~ 자나 깨나 오로지 그 생각밖에 없잖아. 근데 아들아, 다 좋은데 엄만 낙태반대론자거든. 혹시라도 여자친구가 임신이라도 하면 바로 결혼이다, 알지?"
"엄마, 제발 좀! 한 번만 더 들으면 백 번째예요. 엄만 다 좋은데 아들의 성문제에 호기심이 지나쳐요. 관심 좀 꺼주세욧!"
얼마 전 대학생 아들과 함께 <연애의 목적>과 <광식이 동생 광태>를 비디오로 보면서 나눈 대화입니다. 호시탐탐 자신의 성 문제에 관심을 표하며 협박(?)까지 일삼는 엄마에게 질렸는지 아들은 이렇게 내뱉습니다.
"물론(!?) 저도 그러고 싶지요. 펄펄한 이십 대 청년이 그런 생각이 없다면 거짓말이잖아요? 하지만 걱정 마세요. 엄청난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으니까요. 고등학교 때 교회에서 '순결서약'한 거 잊으셨어요?"
교회에서 금연서약서까지 쓰고도 담배를 피우는 아들이지만, 서약서 운운하며 세게 나오니 꼬리를 내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 내 한 번 믿어 주지', 이러면서 말이죠.
아들 책상 서랍 속의 '그것'... 외마디 비명을 지르다
얼마 후 겨우내 쌓인 먼지를 털기 위해 대청소를 했습니다. 냉장고와 옷장 위, 책꽂이의 먼지를 구석구석 털어내다 보니 심하게 늘어놓은 아들의 책상이 영 눈에 거슬립니다. 일전에도 아들 책상을 정리했다가 중요한 영수증과 자료를 버렸다며 잔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뒤로는 아들 책상에서 구더기가 나와도 안 건드린다고 다짐했지만 제 손은 이미 책상 위를 주섬주섬 치우고 있었습니다.
책상 위에는 아들의 어릴 적 사진이 놓여 있었습니다. '요렇게 아기처럼 귀여웠던 녀석이 어느새 스무 살이 됐네…. 세월 참 빠르다.' 이런 생각을 하며 사진을 간추려 서랍 속으로 넣으려는 순간, 전혀 예상치 못한 물건이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 이게 뭐야? 이게 어디서 난 거지? 이게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제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게 한 '그것'은 바로 콘돔 박스였습니다. 남편이 정관수술을 한 이후 집안에서 콘돔 박스를 보기는 거의 10년 만이었습니다. 스무 살 아들 서랍에서 '그것'을 보다니…. '대략' 난감한 상황이었습니다.
모름지기 콘돔이라 함은 성관계 때 사용하는 물건인데… 생각이 여기에 미치고 나니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얼얼했고 오만 가지 상상이 다 들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놀라서 기절하기 일보 직전에 그것이 왜 아들 서랍에 있는지 기억해 냈다는 겁니다. 지난 해 봄 아들은 명동길에서 공짜로 콘돔을 나눠주는 '콘돔축제'가 열렸다며 집으로 콘돔을 가져왔고 저에게도 콘돔과 러브젤을 보여주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그때 받았다는 그 상표가 맞습니다.
'아휴, 내 정신 좀 봐. 그때 받았다고 했는데 그새 잊어버리고…. 그럼 그렇지. 휴우, 공연히 놀랐네.'
평소에는 아들에게 굉장히 열린 척 "혹시라도 그런 상황이 생긴다면 반드시 콘돔을 사용하라"고 조언하는 '신세대' 엄마지만 솔직히 고백하건대 그건 모두 콘셉트입니다. 자식들이 부모와 성 문제를 상의하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그럴싸하게 말했던 거지요.
사라진 콘돔, '얘들이 미쳤어, 정말!'
저는 엄한 사람 잡을 뻔했다며 마음 편히 아들 책상 서랍을 닫았습니다… 이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비극은 호기심에서 시작된다고, 아들의 사생활에 대한 지나친 호기심이 문제였습니다. 서랍을 닫다가 '혹시?'하는 궁금증이 발동한 거지요.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손은 어느새 서랍 속의 콘돔 박스를 열고 있었습니다. 마치 나쁜 짓을 하는 사람처럼(솔직히 착한 일은 아니지요) 가슴까지 두근거렸습니다.
'어머머...... 하나가 없네?'
겉봉에 적히기로는 박스 안에는 콘돔 12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분명 남아있는 것은 11개뿐. 방금 전 '그럼, 그렇지'하던 아들에 대한 신뢰는 어디로 가고, 순간 아들 주변을 맴돌던 여자친구들의 이름과 면면이 차르르 슬라이드처럼 지나갑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등줄기로 식은 땀 한 방울이 주르르 흘러내립니다.
'아니, 얘들이 미쳤어, 정말!'
사라진 콘돔에 대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에 소설적 상상력이 더해져 드라마 열 편은 쓸 정도의 시나리오들이 머릿속에 가득 차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며칠을 혼자서 끙끙 앓다가 먼저 남편에게 말을 꺼냈습니다.
"저어기 큰 아들 서랍에서 콘돔이 나왔는데… 그런데… 하나가 없어진 거 있지? 어떻게 해야 하지?"
이 말을 들은 우리 남편, 벌레 보는 듯한 눈을 하더니 대뜸 훈계부터 시작합니다.
"어떡하긴 뭘 어떡해? 당신 양식 있는 부모 맞아? 아들 서랍은 왜 뒤지나? 스무 살 먹었으면 이젠 성인이야. 서랍 뒤지다가 그거 발견했다고 할래?"
"그러니까 당신이 어떻게 좀 돌려서 물어 보면…."
"당신이 항상 콘돔 사용하라고 가르쳤잖아. 그 말은 다 뭐야? 그래서 썼다고 하면 뭐라고 할 건데?"
"뭐라고 하긴… 궁금해서… 아휴~ 속 터져. 당신까지 왜 이래?"
남편을 지원군으로 확보하지 못한 저는 결국 정면 돌파를 결심했습니다.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지만 도대체 어디에 썼는지(?) 알지 못하면 아무 일도 못할 것 같았답니다.
"착용감 알아보려고 썼어요, 뭐가 잘못 됐나요?"
마침내 날을 잡아 아들과 단 둘이 텔레비전을 보다가 아무 일도 아닌 듯 가볍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너 저번에 받았다던 콘돔 아직도 가지고 있니?"
"콘돔? 무슨 콘돔이요?"
"작년에 명동에서 받았던 거, 그거 말야…."
"명동… 아! 그거, 아마 어디 있을 거예요. 그런데 왜요?"
"안 쓰면 이모 주면 안 될까? 이모가 슈퍼 가면 하나 사달라고 했는데 못 사왔거든."
"그렇게 해요. 그런데 이모도 그거 쓴대요?"
"당분간 아이 낳지 않으려고 한대..."
아들은 방에 들어가 서랍을 뒤지더니 문제의 콘돔박스를 들고 와 저에게 줍니다. 박스를 열어본 저는 '각본대로' 새삼 놀란 시늉을 합니다.
"어머, 하나가 없네? 하나가 없어~ 니가 썼니? 설마 니 여자친구?"
우리 아들, 엄마의 추측이 기가 막힌다는 표정입니다.
"내참, 아들을 그렇게 모르나? 걱정 마세요. 그런 일 없으니까. 하나 쓰긴 썼어요."
"어… 디… 다? 그러니까 그걸 어디다 쓰냐고?"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거예요?"
"당연히 모르지. 이걸로 풍선을 불었을 리도 없고…."
"나 참 창피하게… 착용감 알아보려고 한 번 해봤어요. 느낌이 어떤가 궁금해서요."
"착용감? 정말?"
"다들 한 번씩 해본다던데. 아빠나 이모부한테 물어보세요. 다들 경험 있으실 걸요. 하하."
"착용감이라고? 히히. 정말 웃긴다."
며칠 동안 저를 고민하게 했던 사라진 콘돔 하나는 결국 시착용,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옵니다. 아들은 아직도 엄마가 자기 책상을 뒤지고 혼자 이상한 상상을 했다는 사실을 모른답니다. 평소 아들의 성 문제에 쿨한 척, 개방적인 척 하던 엄마가 그랬다는 걸 알면 얼마나 실망할까요.
내 아들이 설마? 이젠 아들을 믿으렵니다
스무 살 넘은 장성한 아들과 사는 엄마들이 가장 걱정하는 게 뭔지 아세요? 어느 날 갑자기 아들이 여자친구 데려와 "엄마, 얘 임신했어요", 이러는 거랍니다. 그래서 '다른 아들이면 몰라도 내 아들이 설마?'라면서도 엄마들은 때때로 아들의 방을 뒤지기도 합니다.
저 역시 스무 살 아름다운 청년이 된 아들을 지켜보면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기쁘고 행복해서 일 때도 있지만 가끔씩은 뭔가 불안해서이기도 합니다. 이런 엄마의 걱정을 너무나 잘 아는 아들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만큼은 절대로 힘들게 하지도 아프게 하지도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또 하나님과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짓은 하지 않을 거라고도 합니다. 그러니 더 이상 자기 방 물건을 들추지 말라고 합니다.
이쯤이면 아들을 믿어줘야겠지요? 저도 약속합니다. 다시는 아들 방을 몰래 뒤지는 일은 없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