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자초지종은 이랬습니다. 그날 아침 늘 그렇듯 나는 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출근을 서두르고 있었습니다. 그때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시는 장모님이 전화를 걸어오셨습니다.
"아침은 먹었는가? 식전이면 건너와서 먹고 가게."
전에도 처가로 건너가 아침을 먹고 출근하는 일이 종종 있었기에 나는 그리하겠노라 대답을 하고 장모님 댁으로 건너갔습니다. 아내는 아이들 등교 챙기고 좀 있다가 가겠노라 해서 나 혼자만 먼저 갔습니다.
그런데 그날 아침상 차림새가 여느 때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제법 큰 굴비에 각양각색의 나물에다 고깃국까지 나왔습니다. 그래서 나는 넉살 좋은 사위인 척 이렇게 말했지요.
"장모님, 어제 집안에 제사 있었어요? 상다리가 부러지겠습니다. 하하."
"아니, 이 사람 보게. 오늘이 우리 딸 생일날이잖아. 몰랐어? 그러게, 바깥일만 한다고 나돌지만 말고 집안에도 신경 좀 쓰게…."
"……."
아뿔싸, 전날 저녁까지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는데 밤샘회의에 그만 아내의 생일을 새까맣게 잊어버리는 사태를 맞게 된 겁니다. 그날도 나는 편치 않은 표정의 장모님 충고를 뒤로하고 허겁지겁 출근길에 올라야 했습니다. 물론 아내는 아침 생일상 받으러 왔다가 장모님한테 무심한 내 얘기를 들었을 테고요. 그리고는 그날 저녁 나의 가슴을 후벼 파는 말 한마디를 날린 것이었습니다.
"당신 정말 '나뿐' 놈이야!"
결혼 생활 십여 년, 아내는 머슴이 됐습니다
내가 식구들로부터 집안일에 이렇듯 무심한 '불량 가장'으로 낙인찍힌 지는 꽤 오래됐습니다. 집안 식구들은 그 모든 원인을 10여 년째 일하고 있는 노동조합과 지역 시민단체 탓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심지어 저의 모친께서는 "실속 없는 일에 정신 팔려 다니는 한량"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표현하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 내 자신은 주변 사람들의 불만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저 '이해심 많은 우리 가족이 나를 든든히 후원해 주고 있구나',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10여 년 이상을 맞벌이하며 살아온 직장인입니다. 다행히 생각하는 거나 행동양식도 비슷해 별 다른 의견 충돌은 없었습니다. 뉴스를 봐도 대부분 같은 시각으로 해석하고 사회 현실에 대해서도 서로 비슷한 생각을 하는 편입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아내는 나의 '사회참여 활동'을 어느 정도 인정해 주었고 나의 활동 때문에 부부 사이에 의견 충돌이 있거나 불화가 생긴 적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얼마 전부터 아내의 행동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 그날도 역시나 늦게 귀가한 나를 앉혀 놓고는 "참다 참다 못 참아서 한마디 한다"며 이러더군요.
"사람들 얘기 들어보면, 당신은 밖에선 참 '좋은 사람'이더라. 남들 고민도 다 들어주고 억울한 민원 생기면 앞장서서 해결해 주고 게다가 자상하기까지…. 그런데 왜 나한텐 그렇게 무관심한 거야? 왜 아이들 아플 때 당신은 항상 없는 거야? 내가 당신 '머슴'이냐고~."
아내의 갑작스런 행동에 나도 혼란스러워져 급기야 해서는 안 될 말을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니, 내 사정을 당신이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왜 자꾸 그래? 내가 밖에 나가서 술이나 먹고 허튼짓 하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당신이 이해해 줘야지?"
"……."
하지만 그건 아내에게 이해를 구하는 것도 아니었고 단지 내 자신을 합리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집 밖에서는 민주적 절차와 평등을 말하면서 집에만 들어오면 피곤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내 편의만을 찾았고 그것을 이해 못해 주는 아내에게는 불만을 늘어놓았던 거죠.
그 후로 아내가 불평을 표현하는 횟수도 늘었습니다. 가끔은 반대로 말수가 적어졌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새벽까지 잠 못 이루다 그냥 출근하는 횟수가 잦아졌습니다. 아내는 그렇게 지쳐가고 있었던 겁니다.
늘 바쁜 아버지, 늘 청소하는 어머니?
급기야 올해 초 우리 집에는 두 가지 큰 일이 터졌습니다. 그리고 저는 큰 충격을 받고 그동안 하던 외부 단체 일을 대부분 정리했습니다.
그 첫 번째 일은, 아내를 "내가 당신 머슴이냐"면서 울먹이게 했던, 둘째 아이의 교육 문제였습니다. 둘째 딸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 중반을 넘기고도 읽기와 쓰기, 수학 등에 유난히 취약했습니다. 그날도 아내는 딸아이의 30점짜리 받아쓰기 시험지와 0점짜리 수학 평가지를 놓고 몇 시간 동안 아이와 씨름하다가 자신의 처지가 너무 서러워서 아이와 함께 울어버렸답니다. 그리고 울다 지쳐 잠든 아이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아내가 내린 결론은 이것이었습니다.
'정작 딸 아이 교육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하면서 이 나라 교육을 살리겠다고 밖으로만 나도는 남편을 이제는 더 이상 이해하고 도와줄 수 없다!'
아내의 이 말을 듣고 나니 나는 더 이상 변명할 말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습니다.
두 번째 사건은 우연히 들여다 본 아들 녀석의 숙제에서 시작됐습니다. '우리 집 식구 소개하기'라는 숙제였는데 그 중에 '우리 식구가 고쳐야 할 점'이란 것이 있었습니다.
아버지: 너무 늦게 들어오시는 점. 늘 바쁘시다.
어머니: 잔소리가 너무 많으시다. 늘 청소만 하신다.
아이들 눈은 가장 정확하다고 했던가요? 어느새 아들의 눈에 우리 부부는 '늦게 들어오는 아버지, 청소만 하는 어머니'로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사실 밤늦게 퇴근해 들어왔을 때 깨끗하게 청소된 집안을 보면서 '여기가 바로 내 안식처구나'라는 생각만 했을 뿐 퇴근 후 힘겹게 걸레질을 하던 아내의 모습을 떠올린 적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없어도 시댁에 들러 이것저것 챙기는 아내를 볼 때마다 속된 표현으로 '거참, 마누라 하나 잘 얻었네'라며 천박한 만족감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아들의 숙제는 그런 제 모습을 아프게 꼬집고 있었습니다.
나 나쁜 놈 맞어, 그래도 그래도...
그렇게 활동을 자제한 지 몇 달…. 그런데 저는 다시 고민하고 있습니다. 여기저기 단체에서 다시 연락이 오고 심지어는 갑작스런 잠적(?)을 무책임하다며 나무라는 사람도 생겨났습니다. 솔직히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내막을 설명하는 것도 힘들고 고민스럽습니다. 아무래도 다시 복귀(?)해야 할 상황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 아내에게는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최근 가족 여행을 몇 번 다녀오고 예측 가능한 일정을 보내고는 있지만 여전히 가사 분담이나 아이들 교육 문제는 똑 부러지게 해결된 것이 없습니다. 이런 마당에 내가 다시 예전 생활로 되돌아가겠다고 하는 걸 가족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요즘 아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느낀 것이 하나 있습니다. 나와 식구들 사이에서 벌어졌던 갈등은 피곤하고 바쁘다는 핑계와 이해해 줄 것이라는 착각이 빚어낸 '소통의 부재'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아내는 가사의 물리적 어려움보다 혼자서만 왜 이런 부담을 해야 하나 하는 일종의 외로움 때문에 더욱 슬프고 힘들었다고 합니다.
이제부터 아내와 가사를 분담하고 아이들 교육을 위해 내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사회 활동과 좋은 가장 역할 모두 지혜롭게 잘할 수 있다는 자신이 서는 날 아내에게 다시 말할 겁니다.
"그래, 당신 남편 나쁜 놈 맞아. 그래도 당신이 좀 이해해 주면 안 될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저의 솔직한 고민을 말하기 위한 것입니다. 열심히 생활하시는 활동가 분들에게 누가 되지 않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