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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야구대표팀이 지난 15일, WBC에서 미국을 이긴 것을 축하하는 한나라당의 논평이 구설수에 오르면서 결국 이계진 대변인이 전격적으로 사과했다. 이 대변인은 미국과 일본을 우리가 이긴 것을 두고 "이는 선린을 중시해야 하는 외교무대에서 매우 우려되는 일로, 일본과 미국을 자극해 새로운 무역장벽이 생기거나 동북아 안보에 구멍이 생기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면서 "외교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대국만을 골라 꺾은 것이 우발적인 것인지 아니면 정부의 지시였는지 의혹이 있으며, 이런 의혹은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며 '개그성' 논평을 했다. 이에 대해 누리꾼을 비롯한 많은 이들은 한마디로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고, 결국 이 대변인은 17일 이에 대해 사과한 것이다. 게다가 그는 "소변인(笑辯人)의 뜻을 접겠다"고도 말했다.

이 대변인은 지난해 11월부터 한나라당의 '대언론 창구'를 맡고 있다. 그는 취임 첫 브리핑에서 "웃을 소(笑)자를 써 소변인(笑辯人) 시대를 열까 한다"며 대여관계의 부드러움을 강조한 바 있다. 논평이라고 해서, 꼭 정색을 하고 근엄한 톤으로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이번 논평은 그런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이 대변인 스스로도 특별하게 축하하고 싶은 뜻이 있었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웃자고 한 얘기라는 것이다. 유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대변인의 '특별한 축하'는 현재의 외교상황을 풍자함으로써, 게임에 이겨 한 번 웃고 풍자로 한 번 더 웃어 보자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 대변인의 진의를 비틀어 버린 것은, 그런 논평을 보는 우리의 시각이었다. 그의 논평을 두고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인 것이다. 하지만 사실 그런 반응 자체가 어이없는 것이다. 선거를 앞둔 정당의 대변인이 자국의 스포츠 승리를 깎아 내리는 논평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마디로 난센스다. 뿐만 아니라 일관성도 없는 행태다. 잘 아는 바와 같이 평소 정치권은 날선 말들을 쏟아냈다. 이런 것에 누구보다도, 염증을 느낀다는 반응을 보인 것이 지금까지의 우리 자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논평에 대해 갑자기 표변해서 이 대변인이 마치 몹쓸 짓을 했다는 듯이 두들겨 패는 것은 '패거리 문화'와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

물론 그의 개그감각이 많이 떨어지는 것은 인정한다. 그 스스로 평소에 개그프로그램을 많이 본다고 얘기하기는 하지만, 그의 '개그논평'을 보면서 그가 개그맨이 안 된 건 그나마 우리에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낯을 바꾸어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서로 민망한 일이다. 그의 개그가 우리의 감각에 많이 모자란다고 해서 진의마저 무시하는 것은 우리의 정치문화 발전에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이는 마치 개그콘서트의 '고음불가'를 보고, "실력 없는 가수" 운운하는 것만큼이나 어이없는 짓이다.

그게 아니라면 혹시 전여옥에 대해서 향수를 느끼고 있는 것인가.

영국의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의원이 본회의 단상에 나와서 발언하는 와중에 너무 흥분한 나머지 해서는 안 되는 발언을 해버리고 말았다. 상대 당 국회의원들을 향해서 "절반은 당나귀"라고 발언한 것이다. 영국에서 '당나귀'라는 단어는 우리의 "개××"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국회의원이, 그것도 본회의 발언도중에 쓸 수 있는 단어는 아니다. 예상대로 국회가 난리가 났다. 결국 그 의원은 국회의장의 엄중한 사과요구에 마지못해 단상에 올라가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자세히 보니까, 나머지 절반은 당나귀가 아니었습니다." 웃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바인스(www.byins.com)에서 송고했습니다.
이 기사는 <한겨레> '왜냐면'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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