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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씨, 농담이 무엇을 말합니까? 장난으로 하는 말을 의미합니다. 장난을 그 상황과 맞지 않을 때 게다가 그 상대방과 그다지 친하지 않을 때 한다면 그걸 받아들이는 상대방은 기분 좋게 받을 수 있을거라 생각하십니까?

상황에도 어울리지 않고 친하지도 않은 친구의 농담

간단히 생각해보십시오. 전 다리가 긴 편이 아닙니다. 그 사실을 가지고서 저와 친한 친구들이 '다리가 짧아서 안 닿는 거 아냐'라고 놀리면서 웃는다면 저는 얼마든지 같이 웃어줄 수 있습니다. 저 역시 그들의 단점을 알고 그저 웃자고 한 번 한 말인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그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도 상황에 따라 그 농담이 상처가 되기도 하고 싸움이 되기도 합니다.

하물며 상황에 어울리지도 않고 친하지도 않은 상대방이 제게 농담이라며 '다리가 짧아서 그래요'라고 웃었다면 제가 과연 기분 좋게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자연스레 농담을 한 것도 아니고 뒤에 '하하하'를 무미건조하게 붙인다면 제가 그 말을 농담으로 듣겠습니까? 아니면 모욕적 언사로 듣겠습니까?

저는 진중권씨 이야기처럼 이계진 대변인 논평이 나름대로 평가받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논평에 대해 진중권씨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누리꾼들이 반어법을 보고 직설법으로 이해한다고 하신 것은 아닙니까?

반어법을 직설법으로 들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저는 비록 그리 좋은 대학교도 아니고 정말 목숨을 걸고 공부한 것도 아니지만 책을 좋아해서 국문과에 간 만큼 그 정도 뉘앙스는 구분할 줄 아는 정상적인 사고 방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 논평이 기분 나쁠 수 밖에 없었던 건 이계진 의원의 의도가 어떠하든 그가 속해 있는 정당이 한나라당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한나라당과 보수 언론들 사이에서 작은 일로 한미 관계에 대해 침소봉대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때문에 지적하신 것처럼 이계진 대변인이 자기 풍자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대변인은 그 당을 대표하는 '입'입니다. 설령 그런 식으로 날카롭게 자신을 풍자했다 하더라도 어쨌든 당을 대표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결국 이계진 의원과 한나라당을 따로 떼어놓고 보라는 건 무리가 아닙니까?

물론 우리나라는 중학교 교과서에 나온 것처럼 이념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정당에 모인 것이 아니라 표를 위해 모이는 경향이 더욱 강하긴 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한 보수 언론의 말처럼 비슷한 코드끼리 모이는 성향이 강한 것은 사실이 아닐런지요?

그렇다면 한나라당 소속인 이계진 의원도 기본적으로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생각에 동조하고 있을 것이라는 게 보통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즉, 지금껏 무슨 일만 일어났다 하면 한미동맹에 균열이 생긴다고 경직적으로 주장하던 당에 속한 이가, 그와 관련해 반어적 농담을 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그를 '아 재미있네'하고 받아주길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가 아닐까요?

속은 그대로인데 겉만 번지르해졌다고 해서 박수를 칠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전 진중권씨 말처럼 이계진 의원이 반어법으로 하는 말이겠거니 하면서도 막상 논평 끝에 '하하하를 붙여주세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마치 우롱당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그걸 직설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더라도 정서상으로 불쾌할 요소가 충분했다는 얘기입니다.

반어법인 것을 알면서도 직설법으로 들리게 하고 있는 사회

표준적인 국어 실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직설법과 반어법을 구분하지 못해 일어난 일이라기보다 제 생각은 이런 표현이 더 적절한 것 같습니다. 그 말을 한 이계진 대변인은 그렇다치다 하더라도 한나라당 의원들 중에는 진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불쾌한 생각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쉽사리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말입니다.

진중권씨가 지적한 것처럼 그 당의 대변인마저 소속 당의 경직성을 풍자하겠다고 그런 논평을 냈다면 그 당을 밖에서 바라보는 다른 사람의 심정은 어떻겠습까? 그게 과연 시의적절한 농담으로 들렸을까요? 들렸다 하더라도 그리 기분 좋지 않은 농담이었을 것입니다. 중요한 건 누리꾼들이 직설과 반어를 구분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누리꾼들이 이 농담을 경직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아닌 진중권씨가 마지막에 지적한 것처럼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든 원인, 그것을 찾아내어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 아닐까요? 그리고 앞으로 그것을 개선하기 위해서 다 같이 노력하는 게 시급한 문제인 것이지, 누리꾼들의 경직된 사고를 비판할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계진 대변인이 전여옥 대변인에 비해 훨씬 더 바람직한 모습이라는 것은 인정합니다. 다만 사람들이 보는 건 이계진이라는 한 사람뿐만이 아닌 이계진 의원이 속한 한나라당까지 같이 보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활동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에 있는 이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까지 연결되는 문제이겠지요.

제 다음 블로그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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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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