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들은 지금 어떤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일까? 지난 14일 서울 D외고는 학원 원장과 강사들을 불러들여 입학시험지를 나눠주고 내부 채점 정보를 빼줬다. 이 학교 입학관리팀장이 지난해 치러진 2006학년도 영어듣기 입학시험 오답문항을 설명하고 있다.
이들은 지금 어떤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일까? 지난 14일 서울 D외고는 학원 원장과 강사들을 불러들여 입학시험지를 나눠주고 내부 채점 정보를 빼줬다. 이 학교 입학관리팀장이 지난해 치러진 2006학년도 영어듣기 입학시험 오답문항을 설명하고 있다. ⓒ 윤근혁

14일 오후 2시 자동차 수십 대가 서울에 있는 특수목적고(특목고)인 D외국어고(외고) 운동장에 들어섰다. '교육관계자 설명회'란 팻말 앞에서 방문객들을 맞은 이들은 다름 아닌 이 학교 학생들.

방문객에게 장소를 안내한 학생들은 이날 손님들이 모조리 사설학원 원장이나 강사들이라는 사실을 알고나 있을까.

외고 설명회에 모인 사설학원장들

행사가 열린 강의실 앞에서는 교직원들이 참석자들의 이름을 미리 준비한 명부와 일일이 대조했다. "어느 학원에서 오셨나요?"하고 물어본 뒤, 사전 예약자에 한해 들여보내는 치밀함을 보였다. 이들은 명부에 표시한 뒤 쇼핑 가방 크기의 종이가방을 학원 관계자들에게 나눠줬다.

이 종이가방에는 지난해 치러진 '2006학년도 D외고 신입생 선발고사 영어듣기 문제지'와 CD가 함께 들어 있었다. 선발고사 문제지를 이날 참석한 학원 관계자들에게만 빼준 것이다. 이 학교는 행사에서 영어 듣기 문항 가운데 오답률이 높았던 문항 등 내부 채점 정보도 알려주었다.

이들은 더 나아가 자신들이 올해 ○○○신문사와 함께 치르는 외국어경시대회 문제는 내년 본교 입시 문제와 거의 비슷한 유형이라고 귀띔해 주기도 했다.

이 밖에도 가방엔 올해와 지난해 신입생 전형요강 비교 용지, 2006학년도 모집요강, 그리고 수건이 들어있는 선물상자도 있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입시설명회 참가자 명단'이라고 적힌 A4용지 한 장짜리 문서. 이 용지에는 학원의 특목고 담당자 직통전화와 참가한 학원강사 전자메일, 건의사항 등을 적는 난이 있었다.

교장 "여러분은 일반고에서 받지 못한 서비스를 받을 것"

이날 학원 관계자들에게 나눠 준 종이 가방 속에 들어 있는 내용물.
이날 학원 관계자들에게 나눠 준 종이 가방 속에 들어 있는 내용물. ⓒ 윤근혁
100석 크기의 계단식 강의실엔 서울시내 학원 강사들로 꽉 찼다. 이날 오전 11시 똑같은 형태의 1차 행사가 있었는데, 오후 참석자들도 빠짐없이 참석한 것이다.

"우리 학교의 화두는 변화입니다. 고객 만족이 아니라 감동까지 가야 하는데… 여러분은 일반고에서 받지 못한 서비스를 (우리 학교에서) 받을 것입니다."

오후 2시 6분. 이 학교 교장의 인사말이 시작됐다. 교장은 "정부는 특목고, 외고가 크지 못하게 견제하고 있다"면서 "학원장님들께서 외고가 성장 발전하는데 일조해주시길 바란다"고 힘주어 말했다. 학원관계자들은 너 나 없이 박수를 보냈다.

이 학교 교감도 연단에 섰다. '구술면접 공동출제 방향'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그는 1분30초쯤 새가 나온 영화를 보여준 뒤, 다음처럼 극적으로 말했다.

"여기에 있는 선생님들이 선두에 서는 기러기 역할을 하신 지도자들입니다. 저희들의 노력이 20%였다면, 나머지는 여러분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평준화라는 척박한 현실에서 이끌어주셨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선생님들이 먹여준 사료를 먹고 (학생들이) 우리 학교에 (새들처럼) 들어왔습니다."

김 교감은 이 학교의 서울대 입학생들을 거론하는 부분에서 목소리 톤을 더 높였다. 하지만 내용은 공교육을 담당하는 교원으로서 기본 상식을 벗어난 것이었다.

"올해 서울대 입시는 실패했습니다. 형편없이 들어갔습니다. 내년부터는 과를 낮춰서 서울대에 많이 갈 수 있도록 우리가 과감하게 영향을 주기로 했습니다. … 논술, 학교에서는 한계가 있습니다. 교무회의에서도 (학교에서) 나가서 (학원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결정했습니다."

교감 "(학원) 여러분들이 평준화라는 척박한 현실에서 이끌어주셨기 때문에..."

참석자들이 대부분 김 교감의 발언에 귀를 쫑긋 세웠다. 김 교감은 약간 흥분한 말투로 다음과 같이 이번 행사의 취지를 설명했다.

"오늘 이렇게 초청한 이유도, 수많은 학원에서 (저를) 초청하는데 다 가면 저는 구속될 겁니다. 그래서 다 모셔서 하는 것입니다."

이 학교 입학관리팀장은 이날 "작년에도 (학원관계자 초청 입시설명회를) 봄 가을 두번 했는데, 50개 학원에서 100명이 와주셨다"면서 "올해는 80개 학원이 넘게 와 주셨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2학기 때 이런 모임을 한번 더 가질 것"이라면서 "나눠드린 참가자 명단을 적어주시면 입학전형자료를 보내드리고 연락드리겠다"고 덧붙였다.

'올해 전형요강'을 설명하기 위해 마이크를 잡은 교무부장은 다음과 같이 귀를 의심할 정도의 말을 뱉어냈다.

"올해 입시전형에서 성적우수자를 1단계에서 50명, 2단계에서 50명으로 뽑을지, 아니면 다르게 뽑을지, 선생님들이 의견을 적어주시면 적극적으로 반영하겠습니다."

그가 의견을 적어달라고 한 곳은 바로 '입시설명회 참가자 명단' 용지에 있는 '건의사항란'이다. 학원 업자 또는 강사들의 입김을 적극 받아들이겠다는 태도를 그대로 나타낸 셈이다.

입시설명회는 오후 3시42분에 끝났다. 학교 쪽이 신설 기숙사를 보여주겠다고 했지만 참석자들은 대부분 그대로 빠져나갔다.

다음날 교감에게 전화를 해봤더니...

다음 날인 15일 이 학교 교감과 전화통화를 했다. 김 교감은 행사 성격에 대해 "학원관계자 입시설명회는 전연 아니었고 기숙사를 새로 오픈했기 때문에 기숙사 안내 차원에서 마련한 자리에 불과하다"고 잡아뗐다.

하지만 이날 기숙사에 대해 설명한 시간은 5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나머지 1시간35분 정도는 모두 이 학교 입시에 대한 설명이었다.

교감은 '학교 발전이 학원 덕분'이라고 말한 것과 관련해서도 "인사치레로 한 말"이라고 했고, '학원에서 설명회 하면 구속될 것'이라고 스스로 말한 것에 대해서는 "국가에서 사설기관과 연계해 입시설명회를 할 수 없도록 했으니까 그렇게 표현했다"고 밝혔다.

교감의 말대로 사설 학원과 연계해 입시설명회를 하는 것은 명백한 교육 지침 위반 행위다. 교육부가 발표한 '특목고 정상화방안'에 따르면, "학원과 연계한 입시설명회 개최 등 직간접적인 사교육 조장행위에 대해서는 철저히 장학지도할 것"을 못 박고 있기 때문이다.

마침 이번 주부터 전국 외고에 대한 실태조사에 나서기로 한 교육부는 이 같은 위반 행위에 대해 과연 어떤 태도를 보일 것인지 주목할 대목이다.

'특수목적' 외국어고등학교는 어떤 곳?

"고교 때부터 과학, 영어 등 경쟁력 교육이 필요하다."
"명문대학을 입학하기 위한 귀족 명문고일 뿐이다."

이처럼 특수목적고의 '특수목적'을 놓고 교육계 보혁 세력 사이의 갈등은 뿌리 깊다.

지난해 말 현재 우리나라 특목고는 모두 122개교에 달한다. 이 가운데 신종 대입 명문고로 꼽히는 과학고와 외국어고는 각각 17개와 25개가 있다. 특히 외고는 서울 지역의 경우 6개 학교 모두 사립학교다.

또한 특성화고 95개와 자립형사립고 6개까지 합치면 '일반적이지 않은 고등학교'는 모두 223개로 늘어난다. 이는 전체 고교의 10.6%에 달한다.

이들 학교는 대부분 근거리 배정방식인 고교평준화 체제를 벗어난 고입 시험을 치르고 있다. 현재 비평준화 고교가 전국 고교의 절반가량인 점에 비춰보면 특목고의 '우후죽순'식 신설이 곧 평준화 해체로 이어질 가능성은 무척 높다는 게 교육시민단체의 시각이다.

서울대 등 명문대 입학에 유리하다는 소문을 타고 특목고 열풍이 과열 과외를 불러오고 있는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다. 적지 않은 학원들이 특목고 진학반을 만들고 초등학생까지 받고 있다.

외국어고의 경우 외국대학 진학반도 있지만 대부분의 학교가 국내 명문대 진학을 목표로 과육 과정을 짜고 있기도 하다.

김홍렬 서울시교육위원은 "외고 등 서울지역 특수목적고의 수업료가 자사고처럼 일반고의 3배에 이르고 있다"면서 "일부 특목고는 귀족학교인 자사고와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