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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 털이 마르지 않은 꺼병이 한 마리가 어미 날개 깃 사이로 쑥 빠져나와 어미를 부르고 있다.
ⓒ 최성민
산절로야생다원의 알품은 까투리 날개깃 사이로 꺼병이(꿩의 어린새끼) 한 마리가 고개를 푹 솟구쳐 낸 것은 16일 오전 8시 무렵이다. 나는 오늘도 다름없이 카메라를 목에 메고 꿩둥지 주변 차나무 사이의 풀을 뽑고 있었다. 그런데 까투리의 몸짓이 영 수상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죽은 듯 엎드려 있던 까투리가 오늘은 180도 방향을 바꾸어 앉아서 가끔 눈을 껌벅거리는가 하면 허리춤을 간간이 들썩거리기도 한다.

▲ 알을 품은 까투리 등에 비온 뒤 햇볕이 들고 있다.
ⓒ 최성민
▲ 오늘 아침 까투리는 평상시와 달리 방향을 돌아 앉아 무언가 각별한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 최성민
그러기를 얼마 가지 않아 이번엔 까투리 오른쪽 날개 깃 사이 털 한둘이 밑에서 무엇이 위로 들쑤시듯 쑥쑥 들썩였다. 1분 간격으로 한 5분쯤 그러다가 갑자기 어미 오른쪽 다리 뒤쪽으로 꺼병이 한 마리가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그놈도 세상을 처음 구경하는 순간이고 나 역시 그런 꺼병이를 난생처음 봤다.

이놈은 아직 털이 채 마르지 않았다. 별 힘도 정신도 없어 보였는데 어미 머리 쪽을 향해 삐악삐악 하고 낑낑거리다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는 중에도 어미는 몸을 조금씩 들썩거렸다. 틀림없이 알에서 깨인 꺼병이들이 둥지 밖으로 나오려고 하자 위험을 느껴 품안에 추슬러 안는 것이리라. 나는 밖으로 나온 꺼병이의 사진을 찍고 인부들과 점심을 하러 집으로 들어왔다.

▲ 둥지 안 꺼병이들
ⓒ 최성민
오후 2시쯤 다시 꺼병이들 곁으로 갔다. 그런데 멀리서 망원렌즈로 보니 어미는 둥지를 비웠고 꺼병이들만 옹기종기 앉아 있거나 움직인다. 숫자는 모두 일곱 마리, 알 세 개는 사산했거나 부화에 실패한 모양이다. 한참 후에 산 위쪽에서 "쩍~쩍~"하는 소리를 내며 까투리가 모습을 나타냈다. 입에는 지렁이 한 마리를 물었다. 아기들에게 줄 먹이이거나 "쩍~쩍~"하는 소리를 내는 것으로 보아 '이소'(둥지 떠나기)를 위한 어미 목소리 각인 훈련용 미끼인 듯했다.

▲ 지렁이를 문 어미가 꺼병이들을 부르고 있다.
ⓒ 최성민
까투리는 한참 후 둥지로 돌아와 새끼들과 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가장 더운 시간이어서인지 까투리는 나무 등걸 뒤 그늘에 푹 퍼져있고 꺼병이들도 저희끼리 장난을 치며 논다. 그러기를 서너 시간쯤, 갑자기 까투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더니 한 20m쯤 떨어진 곳에서 연거푸 '쩍~쩍' 하는 소리를 질러댄다.

이윽고 꺼병이들의 이소가 시작됐다. 까투리와 이미 낯이 익은지라 나는 둥지 앞 3m 거리까지 다가가서 꺼병이들의 집 떠나기를 관찰했다. 그런데 깨어난 순서대로 원기가 왕성한 모양이다. 꺼병이마다 몸 움직임이 약간씩 차이가 난다. 그런데 꺼병이들의 이동이 시작되자 산 까치 서너 마리가 와서 짖어대며 소란을 피우는가 하면 새매 한 마리가 어디서 날아와 노리고 있다.

▲ 까투리가족의 망중한. 어미는 나무 등걸 뒤 그늘에서 쉬고 있고 그 아래쪽 둥지 안팎에서 새끼들이 놀고 있다.
ⓒ 최성민
이소가 시작된 지 10분쯤 뒤 둥지는 완전히 비워졌다. 알에서 나온 지 네댓 시간밖에 되지 않는 꺼병이들이 그렇게 동작이 빠른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꺼병이 한 마리가 낙엽 더미에 걸려 더는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가끔 고개를 떨어뜨리며 잠을 못 이기는 것으로 보아 가장 늦게 난 놈인 모양이다.

큰 개미 두 마리가 달라붙어 꺼병이 털 속으로 파고든다. 꺼병이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부르르 턴다. 저러다가 눈이라도 물리면 낙엽 속에 영영 묻히고 말 일이다. 아니 새매란 놈이 또 노리고 있지 않은가. 어미의 '쩍~쩍~'소리는 산 속 저쪽으로 멀어져 가고 있다. 따라가기가 힘겨운 이 막내는 포기한 채 다른 여섯 마리만 데려가는 조짐이 느껴진다.

아마 이 막내가 기운을 얻기를 기다려 이소 시기를 연기하다가 하는 수 없이 밤이 되기 전에 이소를 감행했을 것이다. 밤이면 가끔 부엉이가 산토끼를 잡아먹을 정도로 산절로야생다원의 생태는 왕성하다. 어치, 살쾡이, 오소리 등 맹금류도 많이 산다. 야생의 세계, 그곳은 인간의 세계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긴장과 긴박감 속에 냉철하고 신속한 판단을 요하며 삶과 죽음이 교차하고 있는 곳이다.

나는 막내 꺼병이의 운명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그를 안고 집으로 왔다. 꺼병이는 내 방에 와서도 잠에 겨워 다른 소리엔 반응하지 않으면서도 내가 '꿩~꿩~'할 때마다 저도 '낑-낑' 하면서도 한사코 대답한다. 적당한 시기에 산절로야생다원 안 어디엔가 돌아다니고 있을 자기 가족들에게 데려다 주고 싶으나 쉽지는 않을 것 같다.

▲ 어미가 "쩍~쩍~" 소리로 새끼들을 불러 이소(둥지 떠나기)를 재촉하고 있다.
ⓒ 최성민
▲ 꺼병이들의 둥지탈출(이소)
ⓒ 최성민
▲ 막내 꺼병이. 엄마와 형들이 다 떠났는데도 힘이 부쳐 허둥대고 있다.
ⓒ 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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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창간발의인, 문화부 기자, 여론매체부장, 논설위원 역임. 곡성 산절로야생다원 대표. (사)남도정통제다다도보존연구소 소장. 철학박사(서울대 교육학과, 성균관대 대학원 동양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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