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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하의 화두-화남출판사
ⓒ 화남출판사
2002년 한일월드컵을 기억하는가. 지금으로부터 4년 전 한 달 동안 대한민국을, 아니 전 세계를 붉은 함성의 물결로 뒤덮은 그 때의 감동을 잊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믿어지지 않는 4강 신화를 우리 나라가 만들었다. 그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11명 선수들의 힘찬 숨소리와 그라운드 밖 또 하나의 선수인 '붉은악마'의 함성으로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뤄냈다.

이제 2006년 독일월드컵이다. 지난 6월 13일 토고와 가진 경기에서, 또 19일 새벽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한반도는 '붉은악마'의 함성으로 물결쳤다. 그 함성의 힘과 대한민국 전 국민의 응원의 결과인지 우리의 선수들은 정말 잘 싸웠다.

그런데 토고 전 다음날인 14일 오전 각종 인터넷 뉴스에는 '길거리 응원전'을 염려하고 안타까워하는 기사가 연달아 올라왔다. 무질서한 난폭한 행위, 쓰레기장을 방불케 한 응원 뒤의 현장, 남녀의 무례한 행동을 비판하는 뉴스를 보면서 나는 몹시도 안타까웠다. 그래서 나는 책꽂이에 있는 책 한 권을 다시 뽑아들었다.

2003년 새해 벽두 도서출판 화남에서 펴낸 <김지하의 화두>가 그것이다. 이 책의 부제는 '붉은악마'와 '촛불'이다. 그러니까 <김지하의 화두>는 2002년 대한민국의 길거리를 뜨겁게 또 감동적으로 달궈낸 월드컵의 붉은악마와 미군장갑차에 억울하게 죽어간 여중생의 죽음을 위무하고 소파재개정을 요구하는 평화적 촛불 시위에 대한 사상가 김지하 시인의 응답이다. 작가의 말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붉은악마'는 들끓는 불이요 태양이고, '촛불'은 달빛이며 고요한 물이다. 그런데 붉은악마가 바로 촛불이다. 유월의 젊은 그들이 곧 십이월의 젊은 그들이다. 불이 물이 되고 양(陽)이 음(陰)이 되었다. 결국 그들은 양이면서 음이었다. 놀라운 일이다. 가만히 생각해 본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이 세대가 무엇인가를 할 것 같다. 그것은 무엇일까? 혼돈과 황폐와 재앙에 빠진 인류 및 지구의 뭇 생명에게 새 삶, 새 문화, 새 문명의 원형을 제시할 것 같다. 그들이 세계사의 방향에 나침반이 되어 주는 한, 이 민족은 그 누군가 예언한 바 있는 성배(聖杯)의 민족이 될 것이다."


이처럼 김지하 시인은 우리 젊은 세대들에게 무한한 애정과 희망을 갖고 있다. <김지하의 화두>에는 모두 11개의 글로 이루어져 있는데 첫 번째 글과 마지막 글이 '붉은악마'와 '촛불'이다.

저자는 2002년 유월의 붉은악마가 이뤄낸 일을 '유월개벽'이라 부른다. 그는 이 문채(文彩)·문화의 핵심을 '대~한 민국'이라는 연호와 '짝짝짝 짝짝'의 박수, '치우천황'의 로고 그리고 우리 태극기의 '태극'의 상징으로 풀어내고 있다.

'대~한 민국'은 3박자(대~한) 더하기 2박자(민국)이다. 3박자가 역동·변화·혼돈·움직임, 즉 양이요 남성이며 하늘이고 붉은빛이다. 2자박는 안정·균형·고요와 질서, 즉 음이요 푸른빛이며 여성이요 땅이고 물이다.

이 3박자 더하기 2박자는 다시 말하면 '혼돈박'인데 이것이 음과 양이 하나가 되는 역동적 균형으로서 민족문화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이에 기초하여 민요풍으로 복잡화한 것이 곧 아리랑이고, 록으로 복잡화한 것이 '오 필승 코리아'인 것이다. 이 박자로 전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만들고 운동장을 뛰는 태극전사들에게 엄청난 에너지를 전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붉은악마 응원단의 로고가 지금으로부터 4500년 전에 살았다는 배달국 제14대 천황 자오지, 즉 전쟁의 신 '치우(蚩尤) 천황'의 얼굴 모습으로 등장했다는 것이 놀랍다는 것이다.

남방계 농경정착문명의 화화족의 황제와 74회에 걸친 전쟁을 승리로 이끈 동이족 치우는 북방계 유목이동문명과 남방계 농경정착문명을 조화·통합하려 했다. 그리고 유목적 영성의 세계관과 농경적 이성의 세계관을 혼융하려 했다.

이러한 통합적 문명이 앞으로 우리 인류가 지향해야할 문명의 꼴이 아니겠는가. 이것을 모두 담고 있는 것이 바로 태극(太極)이다. 천지음양의 대립과 통일로서 태극기는 현대적 상황 속의 인류와 지구, 우주 그리고 뭇 생명의 미래의 출구로써 신생의 철학적 깃발이다.

김지하 시인은 "문제는 이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한 달이라는 긴 기간 내내 보여준 그 어마어마한 열광과 역동에도 불구하고 단 한 건의 폭력 사건이나 불미스러운 사고 없이 질서를 지켜주었고 단 한 오리의 국수주의적 오만함이나 민족적 편견 따위의 노출 없이 돈독한 국제주의적 예절과 주최국으로서의 세계인다운 반듯함과 의젓함을 애써 지켰다"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래서 글의 끝 부분에서 "유월개벽의 주인공들에게 다함없는 사랑과 모심의 박수를 보내는 바"라고 적고 있다.

2006년 독일월드컵 두 번째 경기 프랑스와의 경기 때 보여준 길거리 응원은 첫날과는 달리 질서 있고 힘있는 응원이 되었다고 각 언론매체들은 전하고 있다. 그렇다. 김지하 시인이 그렇게 칭찬해 마지않던 2002년 월드컵 정신으로 돌아가자. 그 붉은 함성의 물결로 태극의 새 문명을 우리가 열어가자.

김지하의 화두 - 붉은악마와 촛불

김지하 지음, 화남출판사(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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