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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을 일삼는 남편을 살해한 여성한테 2심에서도 1심과 마찬가지로 집행유예가 선고되었다.

부산고등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조희대)는 5일 오전 301호 법정에서 살인 혐의로 기소된 Y(40·마산)씨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을 열고 검찰 측 항소를 기각했다. 조희대 재판장은 판결문을 통해 가정폭력을 인정하면서 Y씨가 우발적으로 저지른 범행이라고 보았다.

이번 항소심은 지난 4월 11일 창원지법 제3형사부가 Y씨에 대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과 사회봉사 240시간을 선고하자, 검찰 측에서 죽은 남편의 형제자매들과 협의해 형이 가볍다고 해서 항소해 재판이 진행되어 왔다.

이날 항소심 재판부는 "사정이야 어찌되었든 인명을 빼앗는 행위는 어떤 명분으로도 받아들일 수 없고, 엄중처벌되어야 마땅하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피고인이 결혼한 뒤 10년간 가정폭력과 협박, 강요에 시달리면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피폐해졌다"고 밝혔다.

또 조희대 재판장은 "범행 당일 피해자는 술에 취해 들어와 각목으로 무자비하게 구타하고, 생리기간 중인데도 성관계를 강요했다"면서 "피고인은 그런 직후에 순간적으로 증오심과 두려움에 우발적으로 범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 재판장은 이어 "피해자의 형제자매들이 항소심이 열리는 동안 탄원서를 내면서 선처를 호소했고, 피고인은 두 딸을 보호해야 할 처지이며, 초범인데다 자수한 점 등을 고려해 검찰의 항소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이날 법정에는 Y씨의 오빠와 마산가정폭력사건대책위원회 백정희 위원장 등 관계자 10여명이 나와 선고를 지켜보기도 했다.

선고 뒤 백정희 위원장은 "가정폭력을 바라보는 법원의 시각 변화가 느껴진다"면서 "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한 번 더 실감한다"고 말했다.

Y씨 오빠는 "그래도 동생은 죄인인데, 시댁 가족들이 탄원서를 내주고 해서 좋은 결과가 나왔다"면서 "여성단체에서 고생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Y씨 남편의 형제자매들은 항소심 재판부에 항소할 때와 달리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백정희 위원장은 "기일날 Y씨가 두 딸과 함께 남편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는 납골당에 갔는데 거기서 시댁 식구들을 만나 대성통곡하면서 서로 끌어안고 울었던 모양이다"면서 "그 뒤 Y씨는 시댁에도 가면서 화해를 했고, 시누이가 '아이들 하고 잘 살아라'는 말을 하면서 탄원서를 쓴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결혼 후 10여년간 남편으로부터 폭력을 당해온 Y씨는 지난해 6월 11일 새벽, 닷새 동안 외박한 뒤 술을 먹고 귀가해 폭력을 휘두른 남편을 자고 있을 때 넥타이로 목을 졸라 살해했다.

창원지검은 사건 이후 "상습적인 가정폭력 피해자에 의한 살인사건으로 보고, 정상적인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해줘야 한다"고 판단해 Y씨를 불구속 기소했고, 지난 3월 1심 결심공판 때 징역 5년을 구형한 바 있다.

Y씨 변론을 맡았던 손명숙 변호사는 "잘 됐다고 생각하며, 가정폭력에 장기간 노출되다 보면 합리적으로 대응하기가 곤란하다는 점을 재판부가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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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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