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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0년부터 매년 7월 초 열리고 있는 대전산내희생자 위령제. 올해로 7번째를 맞는다.
ⓒ 심규상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사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으나, 대전지역 자치단체는 여전히 남의 일 보듯 하고 있어 유가족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진실화해위의 민간인학살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는 지난해 4월 여야의 합의로 국회에서 법률안이 전격 통과됨에 따라 올 들어 조사착수 대상지를 선정하고 사업을 본격화 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이같은 움직임과는 달리 자치단체의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전 산내사건 희생자 유가족회는 오는 8일 대전 산내 학살 암매장지 등에서 희생자 위령제를 열 예정이다. 이에 따라 유가족 모임은 지난 달 대전광역시와 관할 대전동구청 등에 각각 시장 및 구청장의 추도사 및 참석을 공식 요청했다.

이에 대해 박성효 대전시장은 유가족 모임에 불참을 통보해 왔다.

대전시 복지정책과 관계자는 불참이유에 대해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결과에 따라 조치할 예정"이라며 "아직 조사가 시작되지도 않고 밝혀진 것도 없는 시점에서 단체장이 위령제에 참석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는 시장님의 의견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대전 산내 학살사건은 공개된 미국립문서 및 각종 자료와 증언 등을 통해 한국전쟁 발발직후인 1950년 7월 초부터 중순경까지 당시 대전형무소에 수감 중이던 정치범과 인근 민간인 등 7천여명이 군경에 의해 희생당한 것으로 실증되고 있다.

그동안 대전시는 유가족들의 위령제 참가요청에 대해 '특별법이 통과된 후'로 미뤄오다, 지난해 특별법이 제정됐지만 참석하지 않았다. 또 지난해 10월 대전시를 상대로 한 국정감사에서 당시 염홍철 대전시장은 산내 사건과 관련 진상규명과 유골수습 및 위령사업을 위해 적극 나서겠다고 답변한 바 있다.

암매장지가 있는 관할 대전 동구청은 행사를 3일 앞둔 현재까지 구청장에게 보고조차 하지 않은 상태다.

동구청 관계자는 "지난 달 관련단체로 부터 위령제 참가 요청을 받았지만 아직 구청장께 보고조차 하지 못했다"고 5일 오후 밝혔다.

대전 동구청장 또한 단 한 번도 산내 위령제에 참석하지 않았고, 지난 2001년에는 암매장지 한복판에 건축허가를 내줘 물의를 빚기도 했다. 지난 2004년에는 박병호 전 구청장이 위령제에 참석하겠다고 약속했다가 '구청 공무원들이 하나같이 참석을 만류했다'는 이유로 예고없이 불참한 바 있다.

▲ 위닝턴 기자는 영국 일간신문 <데일리 워커>의 편집자이자 특파원으로 활동했던 위닝턴 기자가 1950년 당사 대전 산내 학살 현장에 암매장된 희생자들의 드러난 시신을 모습을 촬영한 모습.
ⓒ 심규상
대전시와 대전 동구청이 민간인학살 사건 희생자를 대하는 이같은 태도는 다른 자치단체의 적극적인 진상규명 노력 및 위령사업 참여와 대별된다.

김태환 제주특별자치도지사는 산내에서 희생된 제주 4·3관련 희생자와 관련 미리 작성한 추도사를 통해 "대전을 비롯한 육지부 형무소 암매장지 유해발굴과 유적지 복원을 진상규명 사업의 일환으로 적극 벌여 나갈 것"이라며 유가족들을 위로 했다. 제주도지사는 지난 2001년에도 대전동구청에 공문을 보내 암매장지에 대한 건축 신축공사를 중단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박준영 전남도지사도 이날 유가족모임 측에 위령제에 직접 참여 또는 다른 사람을 대신 참석시키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대전 산내에는 여수순천사건 관련 희생자도 다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확인돼고 있다.

대전 산내 사건 희생자 유족회 회장 김종현씨는 "부모형제를 잃고 수십년 동안 고통 속에 살아온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일마저 게을리 하는 대전지역 단체장들의 행태를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위령제 행사를 주관하고 있는 대전참여자치연대 금홍섭 국장은 "대전시가 특별법이 제정되면 진상규명 및 위령제에 참가한다고 했다가 이번에는 정부차원의 조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참가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말장난에 다름아니다"며 "지역의 역사문제를 대하는 반복적인 무소신에 할 말을 잃었다"고 비난했다.

한편 대전 산내 학살 현장은 한국전쟁 당시 군경에 의해 제주 4·3 관련자 등 대전형무소 수감 정치범과 보도연맹 관련 민간인 등 7000여명이 집단학살 후 암매장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또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찾아낸 미군 제25 CIC 분견대의 활동보고서에는 "50년 7월 1일 한국 정부의 지시로 경찰이 대전과 그 인접지역에서 민간인을 집단 살해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와 관련 대전 산내 사건 희생자 유족회, 제주도4·3희생자 유족회, 여순사건 희생자 유족회 등 주최로 오는 8일 오전 10시 대전 산내초등학교에서 일곱 번째 위령제를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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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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