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곳에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작업을 한다기보다는 조금씩 배워간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네요. 이곳에서 상주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주 오게 된 것은 같은 사무실의 일건형의 작업을 돕기 위해서 4월 즈음부터입니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고립된 상황도 아니었고, 건답직파로 영농작업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표정도 어둡지만은 않았고 동네가 활기차 보였습니다. 하지만 5월 4일 이 후 대추리와 도두리에 사는 사람들의 얼굴은 왠지 모를 미안함에 쳐다볼 수도 없었습니다.
아직도 저는 그때의 상황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4일 새벽부터 울렸던 마을 사이렌과 곧이어 미군부대 안쪽에서 저 멀리까지 줄줄이 이어지던 전경버스, 그리고 바깥 경계로 해서 행렬을 지어 부산하게 뛰어가던 학생과 노동자들, 그 사이로 연신 셔터를 눌러대는 사진기자들과 카메라로 촬영하던 방송국 사람들까지. 곧이어 마을 입구를 막고 있던 사람들과 그 저지선을 뚫고 들어오려는 전경들이 충돌했고, 그 이후 저는 카메라를 계속 켠 채로 이리저리 정신없이 뛰어다녔습니다.
5월 4일 저는 대추리에 있었습니다. 그때 정부는 '여명의 황새울'이라는 군경 합동작전으로 평택 미군기지 확장을 반대하여 이곳을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을 토끼몰이식으로 연행했고, 끝내는 주민들과 지킴이들의 터전이었고 투쟁의 중심이었던 대추 초등학교를 무자비하게 무너뜨리고, 볍씨를 뿌려놓은 논 위에 군사작전처럼 철조망을 빙 둘러쳤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큰 마음의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 이후 정부는 미군기지 확장으로 수용되는 대추리와 도두리 일대를 철저하게 고립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던 사람들은 일종의 우울증과 무기력증에 삶의 의욕을 잃은 채 힘들어 했고, 대추리에서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작업을 해야만 했었던 저 또한 5월 4일의 기억들과 이후 평화공원 언덕에서 하염없이 황새울을 바라보던 사람들의 모습 때문에 현재의 삶이 혼란스러워지고 그곳에서 또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고 자꾸 불안해지곤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이곳에서 일컬어지는 대추리병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정말 즐겁고 열심히 작업에 임하고 있습니다. 비록 논에 철조망이 쳐지고 농수로가 파괴되었어도 철조망 바깥쪽의 논에서는 몇몇 할아버지들이 지속적으로 농사를 짓고 계셨고, 지킴이들도 조금씩 이곳에서 자신들의 삶을 만들어나가고 있습니다. 물론 그동안 많은 오해도 있었고 사람들 사이에 갈등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정부에 의해서 고립된 대추리나 도두리의 상황에 때문이었습니다. 저 또한 그런 복잡한 문제들 때문에 작업에 회의가 들기도 했지만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서 자신들의 논과 밭을 가꾸며 삶을 꾸려나가는 마을 주민들과 달랑 엽서 한 장으로 국익을 위해서 나가라는 통보를 받은 주민들을 보며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자신들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이곳에 들어온 여러 다양한 지킴이들의 의미 있는 생활을 보면서 작업하는 데 힘을 받습니다.
도시에서 보면 이곳의 삶은 불편하기도 하고 힘들 수도 있겠지만 제가 서울에 갈 때마다 느끼는 이곳에 대한 그리움은 단순히 여기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서울에서 미디어 교육을 가다가 차도 옆 보도블록에서 낮잠을 자고 계시던, 폐지를 수집하시던 아저씨 한 분을 보았습니다.
누워계신 바로 옆으로 무심히 지나가는 사람들과 차들을 보면서 과연 이곳이 대추리나 도두리였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봤습니다. 아마 어르신이 아침 일찍부터 일하시고 맛있게 낮잠을 청하시는구나 하고 넘겼을 일이지만 도시에서는 누워 있는 분이 어떤 분이고 어떻게 생활하시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어쩌면 도시의 쾌적함이나 안락함 뒤에는 그런 삭막한 이야기들이 있지 않을까 싶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은 오히려 자급자족 할 수 있는 시골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서는 길 가다가도 잠깐 일 도와드리면서 술 한 잔 얻어 마시고, 원두막 지나가다가 하드 하나 얻어먹고 또 대추리에 밥집이 있는데 거기 밥이 남으면 가서 남은 밥도 먹고, 제 나름대로 작업도 하면서 안락하게 보낼 수 있기에 이곳이 편하고 좋습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가끔씩 나타나서 마을 상황을 쭉 둘러보고 나가는 용역과 형사들, 그리고 늘 시끄러운 미군 헬기나 비행기 소리, 혹은 마을길이나 농로 위에서 철조망을 지킨다며 근무 서는 경찰들만 아니면 더욱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것입니다.
아, 그리고 왜곡된 기사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조선일보>도 포함시켜야겠습니다. 얼마 전 <조선일보> 1면에 전시작전통제권과 관련하여 정부를 압박할 요량으로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전면 보류라는 기사가 났습니다. 마치 미군기지를 확장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추측을 과장해서 내보낸 기사였습니다. 그 기사가 이곳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와 허탈감을 주었는지를 기사를 쓴 사람이나 편집하는 사람들이 정말 뼈저리게 반성 좀 했으면 합니다.
얼마 전 방효태 할아버지와 함께 논두렁 위를 거닐면서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워낙 덥고 찝찝하던 때에 바람이 불기에 할아버지에게 시원하다고 했더니 할아버지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면서 "이게 동부새여. 동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라 해서 그리 부르는데 이 바람은 한창 자라는 곡식에게는 해롭고 지나가는 행인에게는 좋은 바람이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곧 있을 빈집 강제철거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기득권을 확고히 하고자 하는 권력자들에게는 개개인의 구체적인 삶을 담보로 저지르는 그와 같은 행위가 득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농사를 업으로 평생을 살아온 주민들이나 이곳에서 새로운 꿈을 안고 살아가는 지킴이들에게는 큰 아픔이 될 일입니다. 저는 그 아픔을 생각하면서 앞으로도 끝까지 이곳에 집중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는 다큐멘터리 제작 공동체인 '푸른영상'에서 수습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 가옥 강제철거가 임박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대추리 도두리에는 애타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습니다. 온 생애를 들녘에 바쳐 온 늙은 농부들의 삶이 이대로 파괴된다면, 우리사회의 미래는 암울하기만 할 것입니다.
아직 '양심의 명령'을 지킬 시간은 소멸되지 않았습니다. 오는 9월 24일에는 '사람을 먹여 살려온 들녘을, 사람 죽이는 전쟁기지로 만들지 않기 위한' 4차 평화대행진이 서울에서 열립니다. 황새울의 평화를 위해 힘과 뜻을 모아주십시오.
여러분을 9.24 평화대행진 ‘10만 준비위원’으로 모시고자 합니다.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