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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을 할까, 해야 할 말은 많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적지 않지만. 하, 보름달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말하기'를 잊게 될 정도로.

어제(7일) 저녁의 촛불행사를 위해 도두리에서 대추리로 논 사이 길을 삐걱거리며 달린 주민대책위 버스, 마을버스를 비춘 그 보름달이다. 대추리 도두리 황새울 들판 위에 희망처럼 크고 밝게 풍성하게 뜬 그 보름달은 내가 예전에 본 어떤 보름달보다 아름다웠다.

그리고, 버스가 대추리 평화공원 앞에 도착하고, 수십 개의 촛불이 켜지고, 모였다. 이 불빛은 이 밤의 보름달 빛보다, 아니, 내가 아는 그 어느 불빛보다 아름다운 빛이다. 그 어느 불빛보다 부드러운 평화의 빛이다.

들판에서는 벼는 벼대로, 피는 피대로…. 그래야 하듯, 대추리의 저녁에는 촛불은 촛불대로 모인다. 이 촛불들이 모여 서로를 밝히고 서로의 심지를 돋워 온지도 2년이 지났다. 이 촛불들이 얼마나 더 오래 켜있어야 될까? 이 촛불들이 며칠을 더 켜있어야 이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기쁘게 촛불을 끌 날, 더 이상 촛불을 켜지 않아도 될 날은….

얼마나 더 촛불의 밤을 지내야 맞이할 수 있을까. 저녁 바람에 꺼질 듯 흔들리는 작은 촛불들, 다음주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에 불어올 것이라는 사악한 바람을 맞고 이 촛불들 중에 몇 개가 꺼지게 되지는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이런 말을 과연 해도 되는 것일까….

잠을 설쳤다. 창을 넘어오는 새벽공기가 차가워서였을까, 험한 꿈도 꾼 것 같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 눈을 비비는 아침, 도두리 우리 집 넓은 채광창 밖으로 전투경찰이 탄 버스와 어린이집 승합차가 교차해 지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그래, 속이 쓰리다. 저 요란한 버스는 아름답지 않다. 추하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

도두2리 마을길을 지나는 버스는, 15번 평택 시내버스와 학교 통학버스, 어린이집 승합차 정도로 충분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달리는, 철망을 튼튼하게 두른 저 괴물버스는 이곳 '사람들'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저 버스는 도두리 대추리에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아, 사람들 뿐만 아니라, 우리 강아지 두리와 별이에게도, 우리 닭들에게도-닭장차라고 불리는 버스라지만-저런 흉한 버스는 소용 닿는 일이 없다.

전경버스 외벽에 "폴리스라인-질서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크게 적혀있다. 누구를 위한 폴리스라인이며 무엇을 위한 질서일까. 그 질서는 과연 어떤 질서일까. 곧, 전경버스보다 더 요란한 소리를 내며 군용 헬기가 저공비행으로 지나간다.

도두리 마을회관에서 점심으로 호박죽 두 그릇을 얻어먹고 '우리집'으로 돌아가는 길. 오늘도 대추리 입구 쪽 원정삼거리에는 누군가 이 '육지의 섬'으로 들어오려다가 검문에 막혀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길 옆으로 멀지도 않게 보이는 철조망은 벼는 벼대로, 벼는 벼끼리 살지 못하도록 날카롭고 잔혹하게 땅을 가르고 기어 다닌다. 철조망과 검문소는 '대한민국'과 대추리 도두2리를 잔혹하게 갈라놓는다.

여기가 어디지? 군사분계선 영역이던가? 이곳은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되고 철조망이 둘러쳐진 땅. 그러나 '북'의 장사정포의 사정거리 영역 밖이라는 곳. 그래서 미군 전폭기는 유연하고 날렵하게 날아올라서 동아시아 어느 지역이라도 두들기고 파괴하고 돌아와 다시 유연하게 착륙할 수 있다는 땅. 그렇게 될 거라는, 그렇게 만들 거라는 땅. 여기가 어디지? 혹시 아메리카 합중국의 영토인 것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그래서는 안 된다. '나'를 포함한 '우리'는, 그렇게 되면 안 됨을 알고 있기에 이곳에 왔다.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기에 이곳에 살고 있다. 이곳에 살기 위하여, 우리는 흙을 만지고 땀을 흘리고 촛불을 켠다.

대추리, 도두2리… 우리의 마을은 살아있다. 이민강 할아버지의 끝없는 애창곡 메들리와 함께, 김월주 아주머니의 반할 정도로 순수한 웃음과 함께, 도두리 마을회관에서 심심찮게 얻어먹는 호박죽 그릇과 함께, 미군기지 확장반대! 펄럭이는 깃발과 함께, 마을은 살아 있다. 대추리 도두리, 마을은 살아있을 것이다. 끝내 저녁바람을 버텨내고 어둠을 밝히는 촛불처럼.

덧붙이는 글 | 다음주 월,화,수 9월 11,12,13일 사흘간. 촛불을 끄려는 사악한 바람이 불어올 것이라 합니다. 이곳에 살고 있는 지킴이들을 '솎아내고' 마을 주민들에게 심리적인 압박과 타격을 주려는 "빈집철거"가 있을 것이라 합니다. 

이래서는 안 됨을 알고 있는 당신께,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음을 느끼는 당신께 지지와 연대를, 관심과 도움을 요청합니다. 대추리 도두리에서, 혹은 대추리 도두리와 함께 촛불을 들어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 도두2리에서 살고 있는 지킴이 '미카엘'

아직 '양심의 명령'을 지킬 시간은 소멸되지 않았습니다. 오는 9월 24일에는 '사람을 먹여 살려온 들녘을, 사람 죽이는 전쟁기지로 만들지 않기 위한' 4차 평화대행진이 서울에서 열립니다. 황새울의 평화를 위해 힘과 뜻을 모아주십시오.

여러분을 9.24 평화대행진 ‘10만 준비위원’으로 모시고자 합니다.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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