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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쇄'를 핵심으로 하는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 초안이 나왔다. 사진은 지난 6월 30일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보리 회의 모습.
ⓒ 유엔 포토
북한 핵실험에 대한 대응으로 유엔(UN)은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결의안을 준비중이다. 경제적 제재·비군사적 제재가 주된 내용이다. 근거는 UN헌장 제7장 41조. 우리들이 염려하는 군사적 제재는 제42조이다. 정부의 공식입장은 제42조의 군사적 제재에 대해서는 반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일본과 미국이 중심이 되어 준비 중인 결의안 초안은 제41조와 제42조의 절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41조의 비군사적이 아닌, 그렇다고 42조가 말하는 전면적인 군사적 제재도 아닌 이 둘의 중간 단계인 '준'군사적 제재라는 것이 필자의 입장이다.

왜냐하면 이번 결의안의 핵심내용이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을 담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이번 결의안의 고갱이는 PSI라는, '일종의 사실적 측면에서의 군사적 조치'가 핵심일 수 있다. 그래서 논쟁이 시작된다.

핵실험 이전에 PSI가 있었다

핵실험에 대한 대응으로 우리 정부나 미국 정부가 PSI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인가. 일부 언론들은 그런 식으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것은 오해다. 근거를 제시한다.

필자는 이미 지난 1월 24일 '한국 PSI 참여, 지난해 말 이미 결정'이라는 제목의 글을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바 있다. 2005년 8월 17일 미국정부가 한국정부에 공식으로 PSI 참여를 요청해 온 사실과 이에 따라 그 해 12월 29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PSI에 참여키로 공식결정한 사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국민에게 공표하지 않고 '비밀'이라고 차마 표현할 수 없는 '보안'에 부친 사실을 '알 권리' 차원에서 국민들에게 알린 바 있다. 당시 필자의 소속 상임위는 법제사법위원회였다.

당시 필자는 이러한 결정이 참여정부의 대북외교안보정책의 완전한 '유(U)턴'이라는 점을 지적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사실상 미국의 대북압박전략, 미국의 대북제재전략에 동참하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지적했었다.

올 1월 19일 미국 워싱턴에서 제1차 한미고위급전략대화가 있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이제서야 진실이 알려지는 '전략적 유연성' 합의가 있었고, 또 한 가지 PSI에 대한 공동참여결정 합의도 있었다.

먼저 전략적 유연성이 쟁점이 됐다. 하지만 이는 곧 필자의 '폭로 파문'으로 이어지면서 진보진영과 보수진영 양쪽으로부터 협공을 당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바람에 진실이 묻히고 말았다. 당시 또 하나 정부의 '과실 은폐의혹'을 지적했던 것이 바로 'PSI에 대한 공식참여결정'부분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1월 24일 기고문이었다.

다음날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비공식 브리핑을 통해 "한국은 PSI에 '참관'하는 것이지 '참가'하는 것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PSI는 많은 나라들이 참가하고 있으며 우리는 브리핑 청취, 역외훈련 참관 등 총 8개 항목 중 5개만 실행하는 것으로서 참관인(observer)과 참가인(participant)는 다르다"고 강변한 것이다.

하지만 전략대화 공동선언문의 내용은 이와 분명히 달랐다. '이행'(implementation)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원문은 이렇다.

"테러와의 전쟁에 있어서의 협력강화와 대량살상무기와 그 운반수단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국제 안보협력체제의 준수와 이행을 위한 공동노력을 경주"(Strengthened cooperation on fighting terrorism, and exerting common efforts for the observance and implementation of international security cooperation regimes for the prevention of the proliferation of Weapons of Mass Destruction and their delivery means)

이것은 다른 해석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 국제법적 용어이다. PSI의 '이행'을 따르겠다는 것, 그리고 그 '이행'을 전면적으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1월 27일 이런 내용을 담아 반박했다. 그 이후론 대답이 없었다.

이제와서 유엔 협의 따르겠다고 하는 외교부

▲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왼쪽)과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1월 19일 워싱턴 국무부에서 제1차 한·미 장관급 전략대화를 갖기에 앞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로부터 아홉달이 흐른 지난 10일, 유명환 외교통상부 제1차관은 "PSI에 부분적으로, 사안별로 하려 한다"고 말했다. 다음날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PSI 참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협의를 봐가면서 정부의 입장을 정할 것"이라고 했다.

외교통상부의 입장을 그대로 '번역'하자면, '지금까지는 PSI에 참가한 적이 없지만, 지금부터 참여할 것이고 UN의 협의를 따르겠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필자는 분노한다. 이 나라는 '우리' 나라이지 '외교부 관료들'의 나라가 아니다.

이것이 참여정부 외교안보정책의 실상이다. 용산기지이전협정이 그랬고, 반환기지 환경오염치유협정이 그랬고, 전략적 유연성 인정이 그랬고, PSI도 역시 그랬다. 정부가 이런 사실을 숨길 만한, 아니 속일 만한 이유는 전혀 없었다.

첫째, 5월 26일자 노틸러스 연구소의 보고서 '미국의 PSI 추진실태'('The Proliferation Security Initiative in Perspective: 2006. 5. 26')를 보면 PSI에 참가한 80여개국의 대부분이 우리나라처럼 '부분적으로 참가'하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참가'건 '참여'건, '부분참가'건 '전면참가'건 결론은 참가다. 다른 나라도 대부분 그렇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여기에다 우리는 고위급전략대화에서 공식참가를 전면적으로 확인해 주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둘째, UN 안보리 협의에 따라 PSI 참여를 결정하겠다는 말은 미국의 'PSI 공식화 전략'에 따라 '이행'(implementation)을 실천하는 것이고, 그간 정부가 '이행'이라는 용어의 중요성을 회피했다는 점에서 일종의 기만이다. 사실 정부는 고위급 전략대화 이후 PSI라는 용어가 정면으로 들어가 있지 않고, 그 용어의 개념을 풀어사용했기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아예 이 부분에 대한 부연설명을 생략하고 말았다. 그래서 언론들조차도 올 1월 고위급 전략대화에서 PSI에 대한 공식합의가 있었는지조차도 기억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작년 8월 미국의 요구가 있었고, 12월에 참가를 결정했고, 1월 전략대화 공동선언문을 통해 공식화시켰다면 우리 정부의 PSI 참여는 이미 완전하게 결정되어 있었던 사실에 불과하다. 왜 이제 와서 북 핵실험의 결과로 PSI가 논의되고 있는 것처럼 일종의 거짓말을 해대고 있는 것일까?

셋째, 무엇보다도 문제는 이런 사실을 정부 관료들은 다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지난 11일 이규형 외교통상부 제2차관은 기자들과의 비공식 오찬을 겸한 브리핑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문제는) PSI 관련 미 측의 8개 요구 중 5개에는 우리가 '참가'하고 있고 3개 남은 걸 어떻게 할까이다"

필자는 이 발언록을 입수하게 됐다. 참으로 한탄스러운 일이다. 국민만 모를 뿐, 관료들은 다 알고 있다. PSI 에 대한 참여 거부는 이제 있을 수 없는 기왕의 사실이 되어있는 것이다.

PSI에 대한 북한의 반응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정전협정 14~16항 위반"(조선인민군 판문점 대표부 담화, 2003년 3월), "궁극적인 전쟁행위"(조선중앙통신, 2004년 10월 25일), "조선반도에 전쟁의 불구름을 몰아오는 도화선"(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성명, 2006년 2월 9일) 등의 발언들을 보라.

섬뜩하기만한 북한의 반응

▲ 지난 2004년 10월 26일 일본 사가미만에서 펼쳐진 미국-일본-호주-프랑스 4개국 대량살상무기해상압수기동훈련중 일본 해상보안청 헬기한대가 해골마크가 그려진 가상 대량살상무기 운반선위로 줄사다라를 내려 정예 대테러요원을 낙하시킬 준비를 하고있다.
ⓒ AP·연합뉴스
필자는 줄곧 남북한 사이의 신뢰부족을 이야기했고, 참여정부의 대북정책이 일관성을 결여했음을 지적해 왔다. 또 제대로 된 햇볕정책을 해 본 적도 없다고 비판해 왔다. 물론 과장된 비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북 핵실험의 결과로 PSI를 당하는 것과 PSI를 당하게 된 것을 비관하여 남한을 불신하게 된 것, 이것은 원인과 결과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이런 것들이 차곡차곡 모여 북한의 남한 불신을 초래했다는 이야기다.

일본과 미국이 중심이 되어 제출한 안보리 대북결의안 초안은 결국 PSI를 UN이 공식화하기를 바라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초안에는 "회원국들은 북한의 미사일 또는 대량살상무기(WMD) 프로그램, 위폐제작과 돈세탁, 마약 등과 관련된 금융자산이나 자원이 자국민이나 자국영토 내 사람들, 자국 영토로 출입하지 못하게 한다"는 문구가 삽입됐다.

10월 12일까지의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의 공식입장은 아직까지 PSI 확대참여를 결정한 바 없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공식입장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지 장담할 수는 없다.

그 이유는 첫째, 한미간에 이미 지난해 8월에서 올 1월 19일까지에 걸쳐 PSI에 대한 참여를 공식적으로 합의해주었기 때문에 이제 와서 부분참여만을 하겠다고 더이상 거절할 수 없는 형편 때문이다.(물론 여전히 부분참여를 주장할 수는 있겠지만, 이미 전략대화 공동선언 내용이 부분참여를 유보해 놓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 와서 그 부분을 주장하면 과연 미국이 받아들여 줄 수 있겠는가. 예를 들어 '땅을 팔았다'고 계약서를 썼다가 이제 와서 '그 중 40%는 팔지 않기로 했었다'고 주장한다면 어느 계약당사자가 이걸 수용할 수 있겠는가?)

둘째, 우리 정부는 UN 회원국으로서 UN 안보리 결의안을 존중하겠다고 이미 공식적으로 천명했다. 그리고 12일 당정협의도 안보리 결의에 따라 조치하겠다고 확인했다. 이제 와서 이런 총론적 결의를 뒤집고 우리에게 불리하니까 '부분 참가'하겠다고 얘기하면 국제사회로부터 어떤 신뢰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인가. 한편 어제 최성 열린우리당 의원도 국회본회의 긴급현안질문에서 "유엔제재안에 참여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PSI에 참여하는 것을 공식화하는 것"이라는 지적을 한 바 있다.

셋째, 미사일 발사에 따른 대북제재 결의의 내용 속에 이미 PSI가 제재의 한 내용으로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미국은 이미 지난 8월, 6자회담 유관국들 사이에 이 부분을 회람시켰다. 이 때 우리 정부는 그 내용에 대해서는 큰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다만 한미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다는 측면, 그리고 한미정상회담에서 합의된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을 북측에 제시해 보고 그 다음에 제재를 수용하기로 사실상 합의해 준 상태이다. 따라서 이런 한미 정상회담에 따른 합의라는 관점에서도 이 부분을 회피할 수 없다. 더이상 미국의 요구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유엔 결의안에 담길 미국의 노림수

이런 관점에 비추어 볼 때 미국은 PSI의 국제법적 흠결을 이번 기회에 UN헌장 제41조의 해석론에 포함시키거나, 이번 결의안의 핵심내용이 되게 함으로써 안보리 결의라는 공식적이고 국제법적인 판례를 획득할 수 있게 된다.

이제 PSI는 미국과 다른 나라 사이의 양자간 혹은 다자간 협력체제가 아니라 UN결의상의 또는 UN 헌장 해석상의 국제법적 근거를 확실히 확보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미국은 대 북한 측면 뿐만 아니라 대 테러전쟁을 수행함에 있어 엄청난 논리적 근거를 확보하게 된다.

남은 길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국민에게 이제라도 PSI 참여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에 대한 정부 내 절차와 논의 과정들을 공개할 필요가 있다. 또 하나는 UN 헌장 제41조의 조치내용이 '전부 또는 일부의 중단'이라고 표현되어 있음을 들어 최대한 우리에게 유리한 해석, 즉 일부에 대한 제재로 해석을 끌어내는 방법이 있고 여기에 중국의 동참을 호소하는 길이다.

한민족 운명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외교의 임무는 중하다. 하지만 갈 길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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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영남대, 전남대 로스쿨 및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중입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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