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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홀로 피면 외로워 함께 피었는지도 모르겠다.
홀로 피면 외로워 함께 피었는지도 모르겠다. ⓒ 김민수
서울에 살 때에는 화분에 심겨진 자주색달개비만 보아왔다. 어머님께서도 화분에 자주색달개비를 심으셨는데 얼마나 실하게 퍼지는지 화분을 주체할 수가 없어 간혹 솎아주시곤 했었다.

그런데 제주로 이사를 한 후 제법 큰 화단이 생긴 후 절로 자란 닭의장풀도 예쁘지만 자주색달개비와 자주달개비도 좀 있으면 잘 어우러지겠다 싶었는데 지인 한 분이 자주달개비는 심어주었고, 자주색달개비는 산책을 하다 누군가 베어버린 것을 주어다 심었는데 일년이 못 되어 솎아버리지 않으면 안될 만큼 무성하게 자랐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간혹 비온 뒤 화단을 정리하다 보면 물을 잔뜩 먹은 자주색달개비가 뚝뚝 끊어지기도 했다. 워낙 퍼졌으니 그냥 내버려두었다. 뜨거운 여름 햇살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마디에서 뿌리를 내리고 또 꽃을 피운다. 베이고 뽑혀도 마침내 꽃을 피우고야마는 생명력, 그를 보면서 생명이란 참으로 질기고도 질긴 것이라는 경외감에 빠져든다.

손님이 찾아오면 언제든지 환하게 맞이한다.
손님이 찾아오면 언제든지 환하게 맞이한다. ⓒ 김민수
아침 뉴스에서 '동반자살'에 관한 뉴스를 들었다. 인터넷 자살사이트를 통해서 만난 남녀가 동반자살을 시도했다는 보도였는데, 내가 알지 못하는 사연이 있겠지만 자신의 생명을 너무 쉽게 끊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그렇게 자기의 목숨을 끊을 만큼의 절실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면 못할 일이 없을 터인데 안타까웠다. 사회 전반적으로 생명경시가 편만하게 이뤄지고 있으니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조차도 쉽게 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매일 뉴스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죽음'의 소식을 접한다. 우리가 소식을 접하지 못한다고 해도 전쟁과 질병과 기아로 죽어가는 수없이 많은 이들이 있으니 우리는 죽음의 그림자와 더불어 산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오늘을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죽음을 향해 하루를 다가갔다는 이야기이고 보면 '죽음'은 늘 우리 곁에 있다. 결국 그것은 우리 삶의 여정의 한 단계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 셈이다. 그러나 그 여정을 스스로 끊어버리는 일, 그것은 자신의 삶에 대해 너무도 무책임한 일인 것이다.

이슬에 촉촉하게 젖어있는 모습을 싱그러움 그 자체다.
이슬에 촉촉하게 젖어있는 모습을 싱그러움 그 자체다. ⓒ 김민수
80년대는 암울한 시대였다. 그 시대는 젊은 청년들이 독재정권의 폭력 앞에서 꽃다운 젊음을 빼앗겼고, 분신자살을 하는 이들도 참으로 많았던 시대였다. 그 시절 문익환 목사의 강연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여러분, 절대로 스스로 목숨을 버리지 마십시오.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하고 싸우십시오. 독재권력에 의해 목숨을 빼앗길지언정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랬다. 타살과 자살은 같은 죽음이 아니었다. 민주주의의 역사는 타살 당한 이들의 아픔, 그들의 피 흘림을 통해서 꽃을 피웠던 것이다.

자주색달개비 곁에 사촌격인 달개비(닭의장풀)이 피었다.
자주색달개비 곁에 사촌격인 달개비(닭의장풀)이 피었다. ⓒ 김민수
자주색달개비가 피어 있는 곳에 닭의장풀(달개비)도 피어 있다. 그들의 생명력은 닮았다. 누군가 닭의장풀을 잘 말려 차로 마시면 좋다고 하여 텃밭이나 길가에 지천인 닭의장풀을 뜯어 그늘에 말렸다. 그러나 이내 포기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뽑혀져 뜨거운 여름 햇살에 나뒹구는 닭의장풀조차도 끝내는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는데 그늘에서 말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줄에 엮어 매달아 놓으면 못 말릴 일도 없겠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닭의장풀차를 마시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싶어 텃밭 한 구석에 쌓아두었다. 그랬더니 그 곳이 닭의장풀밭이 되었다.

지구 곳곳에는 전쟁과 기아와 질병으로 죽어 가는 이들이 있다. 그들의 아픔과 함께 하지 못할지언정 그들의 죽음에 일조를 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불행한 삶이다. 그런데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런 일에 일조를 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더러운 전쟁으로 불리워지는 이라크전에 아직도 미국의 꼭두각시가 되어 파병을 철회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탄식하는 사도 바울의 탄식이 나의 탄식이 되는 시대를 살아간다.

자주색달개비는 꽃보다도 더 진한 자줏빛 이파리와 줄기를 가지고 있다.
자주색달개비는 꽃보다도 더 진한 자줏빛 이파리와 줄기를 가지고 있다. ⓒ 김민수
산다는 일은 진지한 일입니다.
어쩔 수 없이 밀리고 밀려서 산다해도
산다는 일만큼 진지한 일이 또 있을라구요.
아프지 않은 삶이 어디에 있을까요?
웃으며 산다고 슬프지 않은 삶은 또 어디 있을까요?
산다는 일, 그것은 너무도 진지한 일이라
울고 웃으며 살아가는 것 아닌가요?
단지 죽음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살아있는 것은 너무 아름답고 진지하기 때문에
살아있는 한 살아가는 것이지요.
산다는 일은 진지한 일입니다.
어쩔 수 없이 밀리고 밀려서 산다해도 말입니다.

(자작시 '달개비')

덧붙이는 글 | 닭의장풀(달개비)과 자주달개비와 자주색달개비는 사촌격으로 서로 다른 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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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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