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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은 9일 오전 11시30분 대국민특별담화를 통해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를 4년 연임제로 바꾸는 헌법개정 논의를 제안하면서 추후 이 같은 방향으로의 개헌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어제(9일) 점심때 식사를 하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연임제 개헌 발의를 하겠다고 발표했다는 것이다. 참으로 의아하고 암담했다. "이제는 이 정권이 개헌문제까지도 진지한 논의를 하기 어렵게 만드는구나" 라는 솔직한 생각이 들었다.

개헌문제는 일반 시민들 입장에서는 뜬금없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일부 학계와 시민사회에서 개헌과 관련한 논의가 시작된 지는 오래 되었다. 그러나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미래를 위해 진지한 논의를 해야 할 개헌문제까지도 정략적 논쟁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일부 학계와 시민사회에서 개헌, 즉 헌법개정의 필요성과 방향에 대한 논의는 몇 년째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일치된 방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직까지는 충분한 논의가 더 필요하다. 대통령 5년 단임제를 연임제나 중임제로 바꾸는 문제에 대해서도 의견들이 엇갈리고 있다. 본래 하나의 제도는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5년 단임제가 민주적 정권교체의 정착에 기여해 왔다는 평가도 있다. 연임제로 갈 경우에는 공무원들의 선거개입 등 과거의 아픈 경험들이 되살아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있다. 그래서 원칙적으로 반대는 아니지만 아직은 이 부분에 손댈 때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대통령선거와 총선을 동시에 치르는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정답이 없는 문제이다. 대통령선거와 총선을 동시에 치를 때에는 대통령의 소속정당과 국회 다수당이 동일해져서 오히려 독선적인 국정운영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만약에 대통령 선거에서 어느 정당 후보가 압승하면서 국회에서 개헌 필요의석인 3분의2이상의 의석도 획득할 경우에는 일당독재가 될 우려도 있다. 이처럼 헌법상 제도를 바꾸는 것은 고려해야 할 문제들이 많다.

더구나 개헌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만 공감대가 있다고 될 문제가 아니다. 시민들 사이에서도 논의가 공유되고 사회적 합의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오랜 시일이 걸리는 문제이다. 충분한 정보공유와 토론을 할 시간이 필요하다. 법상의 절차만 거친다고 될 문제가 아니다.

개헌, 법상의 절차만 거친다고 될 문제 아니다

@BRI@한편 어제 노대통령의 발표를 보면서 가장 우울하게 만든 것은 권력구조 문제를 중심으로 한 소위 '원포인트 개헌'식의 접근을 한 것이다. 개인적 의견으로, 지금 대통령 단임제냐 아니냐는 것은 우리 헌법의 중요 문제가 아니다. 일반 국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각각 장단점이 있는 단임제냐 연임제냐 하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시민들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다. 양극화는 심화되고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은 실질적으로 보장되지 않고 있고, 비민주적인 정치권력과 행정, 사법부의 문제는 여전하고, 미래 세대들이 겪을 환경문제(에너지 문제, 기후변화 등)들에 대한 정치권과 관료기구들의 책임성있는 대처는 매우 미흡하다.

따라서 이런 문제들을 헤쳐 나가면서 우리 사회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더 발전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는 개헌의 방향은 어떤 것인지가 중요하다. 당장의 정치적 이익이 아니라 시민들의 삶과 미래를 위한 개헌의 방향은 무엇인지가 중요하다. 그런데 어제 노대통령은 권력구조 중심의 개헌발표를 함으로써 개헌논의의 지평을 아주 좁게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개헌논의는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개헌논의의 초점은 인권과 민주주의, 그리고 미래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보장을 위한 기본권적 요구들을 중심으로 현행 헌법의 기본권 조항도 손을 봐야 한다. 또한 국민소환, 국민발안, 실질적인 배심재판과 같은 새로운 참여제도들이 도입되기 위해서는 헌법에 근거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

최근 이용훈 대법원장 문제에서 드러난 것처럼, 더 이상 고위법관들이 퇴임 후에 변호사 개업을 하는 것은 허용해서는 안 된다. 대법관으로 근무한 사람이 그 경력을 이용해서 수십억원의 수익을 올리는 것은 사법부의 독립성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것이다. 그러나 헌법상 근거가 없으면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논란이 일 것이므로, 헌법에서 아예 대법관은 퇴임 후에 변호사개업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해야 한다. 그래도 연금을 통해 노후생활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권력구조 중심 개헌 발표, 문제 있다

그 이외에도 권력을 민주화하고 정부의 투명성ㆍ책임성을 강화하기 위해, 그리고 국민들의 감시권, 참여권을 보장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논의들이 필요할 것이다. 지방분권을 추진하면서, 헌법에 있는 지방자치 관련 조항들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들이 많이 나왔다.

앞에서 언급한 내용들은 작은 문제들이 아니다. 하나하나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문제들이다.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진전시키고 국민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중요한 과제들이다. 오히려 대통령 단임제냐 연임제냐 하는 것은 덜 중요한 논의라고 생각한다.

이런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충분히 논의하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일정에 서둘러서도 안 되고, 정략적으로 접근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어제 노대통령의 발표는 그 진의가 무엇이었든 간에 정략적 논의만 부추길 뿐이다. 이래서는 국민의 입장에서 개헌문제를 논의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번 정권하에서 정략적이지 않은 개헌논의가 정치권에서 이루어지기는 어렵다고 본다. 따라서 당장에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노대통령의 발상은 타당하지 않다. 그런 발상은 포기하는 것이 좋다. 더구나 대통령 단임제냐 연임제냐 하는 식의 권력구조 중심의 개헌논의는 이후에 이루어질 개헌논의의 지평을 좁히고 혼란만 부추길 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개헌의 필요성과 방향에 대해 민간차원의 열린 논의와 토론들을 더욱 진전시키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이 아니라 시민들 사이에서 87년 헌법의 의미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열린 논의들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언론과 시민사회가 노력할 필요가 있다.

태그:#개헌, #4년 연임제, #노무현, #권력구조, #개헌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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